“시끌벅적하고 반짝반짝”… 라틴과 LA 사이에 자리잡은 캔버스

광양=김민 기자 2025. 3.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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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샐 틈 없이 꽉 찬 캔버스, 여러 장의 그림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어지러운 형상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떠들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림.

첫 번째 전시장은 작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표현한 '사념체(思念體)' 연작으로 구성됐다.

"저더러 좋은 기술의 도움을 왜 받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아는데, 내 손으로 했을 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는걸요." 6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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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래리 피트먼, 광양서 개인전
겹겹이 쌓은 도시의 형상들
한꺼번에 떠들어 대는 사람들
“매력적인 라틴의 이야기 그려”
미국 작가 래리 피트먼의 2022년 작품 ‘알 기념비가 있는 반짝이는 도시’. 피트먼은 1980년대 중반부터 ‘알’을 실내나 도시 풍경, 야경 속에 그려 넣었다. 이는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 잠재력을 뜻한다. 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물 샐 틈 없이 꽉 찬 캔버스, 여러 장의 그림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어지러운 형상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떠들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림. 18일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작가 래리 피트먼(사진)은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태어난 미국의 앵글로·색슨 백인 문화권에서는 장식이 내용 전달을 방해하는 군더더기로 여겨져요. 그런데 제가 자란 라틴 문화권에서는 장식 그 자체가 이야기이자 콘텐츠죠. 이 점을 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피트먼은 군더더기를 없애는 미니멀리즘 예술이나 물건을 가져다 놓는 설치 미술이 유행한 1960, 70년대 미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인이지만 콜롬비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낸 그는 스페인어가 ‘모국어(母國語)’다. 작품은 멕시코시티를 걷는 듯한 시끌벅적함에 손이 미끄러질 듯 매끄러운 마감이 더해져 미국과 남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 40여 점이 이날 개막한 개인전 ‘래리 피트먼: 거울 & 은유’에서 공개됐다.

전시는 작가가 최근 14년간 만든 작품들을 크게 네 가지 주제별로 엮었다. 첫 번째 전시장은 작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표현한 ‘사념체(思念體)’ 연작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전시장은 ‘녹턴’과 ‘카프리초스’ 연작이 전시된다. ‘카프리초스’ 연작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인간사의 어두움을 표현한 동명 연작을 미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엮었다. 피트먼은 “디킨슨이라고 하면 로맨틱한 시로 알려졌는데, 여기서는 그의 어둡고 강한 시를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전시장에선 시끌벅적한 도시를 향한 애정이 펼쳐진다. ‘알 기념비가 있는 도시’ 연작을 볼 수 있는데 폭 10m가 넘는 대작도 있다. 작가는 “사람들은 흔히 시골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도시가 더 포용적이고 즐겁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도시의 형태는 낡아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쾌한 색채가 이 광경을 즐겁게 만든다. 도시 사이사이에 동그랗고 밝은 알들이 가로등처럼 반짝인다. 피트먼은 “알은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도시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마지막 전시장에선 팬데믹 시기 어두운 곳에서 밝은 희망을 기대하는 연작 ‘아이리스 숏’ 등이 소개된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복잡한 그림들을 작가 혼자 컴퓨터 도움도 없이 아날로그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피트먼은 “보통 작가들은 제목을 나중에 붙이지만, 나는 제목부터 시작한다. ‘이걸 그리자’라고 나와의 계약을 맺고 그다음 즉흥적으로 화면을 채워 나간다”고 했다. 저 넓은 화면을 혼자서 채우는 게 힘들진 않을까.

“저더러 좋은 기술의 도움을 왜 받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아는데, 내 손으로 했을 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는걸요.” 6월 15일까지.

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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