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들 잃고도 만선 꿈꾸는 곰치… 2025년에도 전해지는 사회 부조리

김유진 기자 2025. 3. 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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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어부 곰치의 꿈은 '만선'이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만선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도삼과 연철이 죽은 채 곰치만 홀로 돌아온다.

또 곰치는 세 아들을 잃고도 또다시 도삼을 바다로 내보내는데, 이를 말리지 않는 구포댁의 수동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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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 연극 ‘만선’
연철과 슬슬이 연애 장면 추가
女 주체성 살려 원작과 차별화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서 공연

“대체 믓이 만선이여? 누구를 위한 만선이여? 대체 믓이 만선이란 말이여!”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어부 곰치의 꿈은 ‘만선’이다. 부서(생선) 떼가 가득하다는 소식에 기쁨도 잠시, 선주 임제순에게 빚을 진 곰치는 돈을 갚기 전에는 출항도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전 재산을 걸고 무모하게 바다로 나간 곰치. 그러나 그와 가족에겐 비극만이 기다리고 있다.

연극 ‘만선’(원작 천승세)이 돌아왔다. 1964년 7월 초연 이후 2020년 국립극단 7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오른 ‘만선’은 2021년, 2023년을 거쳐 사실상 국립극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문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정수’라고 평가받는다.

2025년의 ‘만선’은 시대상에 걸맞은 변화가 특징이다. 윤미현 작가가 윤색을 맡았다. 우선 작품 중반부에 있던 굿 장면을 프롤로그로 옮겼다. 구포댁은 바다로 나간 남편 곰치와 그들의 아들 도삼, 그리고 딸 슬슬이의 연인 연철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만선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도삼과 연철이 죽은 채 곰치만 홀로 돌아온다. 이 장면을 작품 맨 앞으로 배치해 이후 인물들에게 닥칠 비극을 극대화했다.

원작과 달리,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도 부각했다. 슬슬이가 자신을 희롱하는 범쇠를 죽이는 장면은 원래 원작에는 없는 대목이다. 슬슬이와 연철의 풋풋한 사랑을 담은 대사도 더해졌다. 당차면서도 서툰, 요즘 세대 아이들 같다. 윤 작가는 “비극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젊은이들에게 꿈과 의지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연애 장면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고유한 분위기를 유지한 부분도 많다. 질펀한 남도 사투리다. 사투리가 너무 생생해 초반에는 알아듣기조차 쉽지 않지만 이내 그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국립극단은 프로그램북에 ‘만선 사전’을 추가해 이해를 도왔다. 윤 작가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언어라고 생각해 그것을 오롯이 지키고 싶었다”며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도시에서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느 한적한 바닷가의 마을에 사는 이들이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5t의 물을 사용해 비바람 치는 날씨를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객석까지 춥고 섬뜩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역시 원작에는 없는 장면으로 극적 연출을 위해 추가됐다.

1960년대 시골 마을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윤 작가는 “‘만선’ 속 사회의 부조리함이 오늘날에도 존재하기에 관객이 공감하는 것”이라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선’을 고집하는 곰치의 모습은 애처롭기보다는 고집에 가까워 보였다. 또 곰치는 세 아들을 잃고도 또다시 도삼을 바다로 내보내는데, 이를 말리지 않는 구포댁의 수동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30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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