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 박수받은 교수 더 멀어진 해결
강희경 교수 등 서울의대 비대위 출신 교수 4명이 어제(17일) 성명을 내고 지난해 의정갈등 이후 병원 떠난 전공의와 학교에 돌아가지 않은 의대생더러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장기간 이어진 의정갈등 피로가 쌓여가고 해법은 요원한 터라 "대안 없이 드러눕기"에 대한 이들의 문제 제기는 일부 사회적 공감을 얻었다. 아마 근거 없는 정책으로 의료 시스템 망가뜨린 거로 모자라, 의사 수급 감소나 의대생 수업권 침해 앞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 하나 없이 전공의·의대생만 쳐다보는 정부로서도 지난해 10월 대통령실이 대놓고 정부 입장 홍보할 수 있게 판을 깔아준 데 이어 이번에도 정부와 똑같은 입장에 선 강 교수에게 다시 한번 고마워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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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갈등, 의정갈등 장기화 한축
전공의, 수련 뒷전 교수 불신 팽배
제자 '훼방꾼' 낙인, 골만 깊어져
」
하지만 난 이들 교수 4인의 메시지 전달 방식이나 세부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전체 서울의대 교수 850여 명이 모인 단톡방 논의나 보직자 워크숍에서의 합의와도 사뭇 다른 이들 4인의 돌발 행동은 문제 해결 가능성을 더 좁혀버린 측면이 있다고 보여서다. 강 교수에 앞서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을 지낸 방재승 교수가 “전체 서울의대 교수 뜻이 아닌 교수 4명의 입장”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런 이유일 거다.
누구든 의견을 내고 비판할 자유가 있다. 하물며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선택 자유를 볼모로 잡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든다면 교수가 학생을, 선배가 후배를 얼마든지 야단치고 훈계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자·후배라는 두루뭉술한 통칭으로 정작 본인과 아무 관계 없는 전체 전공의·의대생을 향해 '오만'이나 '훼방꾼' 같은 원색적이고 감정적 비난을 개인 SNS도 아니고 성명서라는 공적 수단을 통해 쏟아내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이런 자극적 표현이 의정갈등 해결에 도움된다면 모를까 현실은 정반대다. 가뜩이나 심각한 의료계 내 세대갈등을 증폭시켜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의대생의 반발만 불러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빅5를 비롯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고, 그런 선배를 보며 3월 전국 의대생이 수업에 불참한 가장 큰 이유는 무리한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였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1년 넘게 장기화한 데는 이른바 MZ 세대 전공의·의대생의 교수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의료계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교수와 전공의·의대생의 수직적 갑을관계가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의료정책을 계기로 세대갈등으로 바뀌어 표면 위에 드러났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세대갈등이 작금의 의료 위기 장기화의 한축이다.
의정갈등 와중에 박단 의협 부회장(대전협 비대위원장) 등 직책 맡은 전공의 말고 일면식 없던 평범한 전공의들 얘기를 들으려고 가끔 만나 밥 먹고 술도 먹었다. 인상적 대화가 많았지만, 특히 교수에 대한 깊은 불신은 의외였다. 이들은 "교수 중에 빌런(악인)은 소수"라면서도 "진료 잘 보고 연구 성과 뛰어나 존경받는 분들도 진짜 교육은 소홀히 하고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잡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교수의 주된 역할이 교육·진료·연구 셋인데 비정상적 의료 시스템 탓에 뭔가 포기해야 할 땐 교육부터 버린다"라고도 했다. 단순히 긴 수련 시간이 아니라 지금 교수 세대와 달리 제대로 수련 받지 못하고 병원 내 저임금 노동자로 취급받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런 전공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 교수 등은 어제 입장문에서 "지금 교수들은 전공의 시절 140~150시간 일하며 한국 의료 기반을 만들었는데 (훨씬 적게 일하는 전공의가) 그 과정을 착취로 매도한다"고 억울해했다. 또 "솔직해지라"고도 했다. "(전공의는) 응급 구조사와 간호사에게 술기를 배우지 않았느냐"면서.
본인은 좋은 스승에게 잘 배워놓고 젊은 전공의 수련은 간호사와 나눠도 좋다는 현실 인식도 놀랍지만, 내 뜻 안 따른다고 그걸 공식 문서에 담아 제자와 후배 비난에 활용하는 교수 모습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이렇게 선을 넘는 감정적 표현으로 골만 더 깊어지면 사태 해결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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