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백종만 (12) 아끼고 믿었던 직원의 배신… 뼈가 녹을 듯한 고통

이현성 2025. 3.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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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든 거래처든 사업을 하려면 사람을 믿어야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

회사 기술 영업 사업 대부분을 A가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 A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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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술자였지만 영업직으로 전환
영업 노하우 전수, 핵심 인재로 성장
사표 내고 사업 아이템 빼내가서 창업
전 매출 60% 달하는 사업 분야 증발
영풍물산 재직 시절 업무를 보고 있는 백종만 YPP 회장. 백 회장 제공


직원이든 거래처든 사업을 하려면 사람을 믿어야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 서로서로 믿는 신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질 때가 있다. 바로 배신당할 때다.

1980년대 중반 남산 H호텔에서 열린 GE 제품 기술 세미나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전기 업계의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다 퇴사한 A였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의 진지한 태도와 기술에 대한 열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A는 원래 기술자였지만, 내 눈에 기술 영업을 하면 더 능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그를 영업직으로 전환시키고, 내가 경험한 기술 영업 노하우를 그에게 전수하는 한편 각종 교육도 받게 했다.

당시 A가 하고 있던 기술 영업 분야는 거대 공장 시설의 중요 설비에 폭발 화재 사고가 나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보호하는 장비에 관한 업무였다. 지금은 모든 발전소, 특히 원자력발전소 대부분에 이 장비가 들어가 있다. 미국 트라이코넥스사에서 만든 제품인데 내가 싼값에 들여오며 시장의 문을 열었다. A는 그 점유율을 100%까지 끌어올리며 회사의 핵심 인재로 성장해갔다.

입사 10년 차 영업부 이사까지 승진한 A가 사표를 냈다. 큰일이다 싶었다. 회사 기술 영업 사업 대부분을 A가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는 사표를 던지기까지 1년간 몰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끝내 A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나갔다. 전체 매출의 60%에 달하는 사업 분야가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배신을 당하면 뼈가 녹는다는 옛말이 사실이었다. 살아갈 기력이 없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는 건 나중 문제였다. 배신감을 견디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여러 날이었다.

하지만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하던 습관은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다. 기도하던 중 성경의 ‘탕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A가 내 아들은 아니지만, 아끼고 챙긴 마음은 부모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나도 그를 용서하고 그의 앞날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A가 회사를 떠난 뒤 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한 직원이 A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가 망했다는 얘기였다. 듣고도 믿기지 않아 사실인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독과점인데 어떻게 망할 수 있겠어요. 진짜인지 제대로 확인 한 번 해보세요.” 그런데 진짜 망했다고 한다. 사채까지 끌어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매출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아 다른 업체로 회사가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A는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유사 제품이 있었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고 우리나라엔 경쟁사가 없어 시장점유율이 100%에 가까웠는데, 이 사업권까지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의 상황을 전해 들은 업계 고객들은 내게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백 회장님, 혹시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와도 절대 받아주지 마세요.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합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한 번은 그를 만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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