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원맨팀서 '원팀'된 우리은행, 박지수 없어도 끈끈한 KB

이준목 2025. 3. 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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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4강 PO 5차전] 우리은행 53-45 KB스타즈

[이준목 기자]

 10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5차전 우리은행과 KB 스타즈의 경기. 우리은행 김단비가 3점 슛에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이 청주 KB 스타즈의 '끝장승부'를 이겨내고 다시 한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우리은행은 10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5차전 최종전에서 KB를 53-45로 제압했다.

이로써 우리은행은 시리즈 전적 3승2패를 기록,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구단 통산 17번째이자 4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이다. 우리은행은 올시즌을 포함해 정규리그 우승 15회, 챔프전 우승 13회를 차지했다. 이번 시즌에도 정상에 오른다면 2022-23, 2023-24시즌에 이어 3년 연속이자 통산 11번째 정규리그-챔프전 통합우승이 된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던 우리은행의 결승 진출은 결과적으로 당연해보이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정규리그 4위에 그쳤던 KB 스타즈를 상대로 시리즈 최종전까지 가는 의외의 접전을 치렀다. 여자농구 4강 플레이오프 사상 5전 3선승제에서 최종 5차전까지 치르게 된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두 팀의 대결은 빈공이라는 아쉬움만 빼면, 여자농구 역대 PO 역사에 손꼽힐 명승부였다. 정규리그 상대 전적에서는 우리은행이 KB를 5승 1패로 압도했지만, 4강플레이오프에서는 KB가 끈끈한 수비와 뒷심을 앞세워 우리은행을 마지막까지 괴롭혔다. 매경기가 4쿼터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이었고, 특히 2-4차전은 모두 한 골차 이내로 승부가 갈렸다. 5차전에서 기록한 8점차가, 정규시즌까지 통틀어 올시즌 양팀이 치른 11번의 대결에서 가장 큰 점수차였다.

우리은행의 에이스이자 정규리그 MVP 김단비는, PO에서도 5경기에서 평균 38분을 소화하며 평균 17.2점 12.4리바운드 4.4어시스트 1.2스틸 1.4블록슛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전 경기에서 더블-더블(득점-리바운드)을 올렸고,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까지 양팀 PO 출전 선수를 통틀어 모두 1위였다.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특히 우리은행이 패배한 2차전과 4차전에서는 막판 승부처에서 김단비가 연이어 아쉬운 실책과 공격 실패를 저지르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단비만의 잘못이었다기보다는, 김단비에게 집중된 역할과 부담이 너무 과도했다는 게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미 정규시즌부터 지적받은 우리은행의 고질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김단비를 받쳐줄 안정적인 2옵션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김단비가 득점과 리바운드는 물론이고 수비와 게임리딩까지 혼자 주도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다. 김단비가 MVP 포함 정규리그 8관왕을 휩쓴 것은, 개인의 대단한 활약 이면에 그만큼 우리은행이 챔피언임에도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이 정규시즌 1위였음에도 에이스 김단비가 부진하거나 막히면 종종 어이없는 졸전을 펼치곤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 KB는 우리은행의 이러한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김단비의 전반적인 활약상과 스탯 자체는 꾸준했지만, 4쿼터에는 KB의 트랩수비와 집중견제에 고전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장면이 많았다. 3차전까지는 마치 김단비와 KB의 1대 5 대결같은 양상으로 진행됐다. 최종전에서도 이런 흐름이 반복됐다면, 우리은행은 자칫 정규리그 1위팀이 4위팀에게 업셋을 당하며 챔프전도 나가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최대 고비였던 4.5차전에서 뒤늦게나마 김단비의 '도우미'들이 적재적소에 나타났다. 4차전에서 우리은행은 KB에게 비록 1점차로 석패했지만 4쿼터에만 3점슛 6개를 터뜨리며 한때 15점차까지 끌려가던 점수차를 역전시키는 뒷심을 발휘했다. 13득점으로 묶인 김단비가 평소보다 부진했음에도 스나가와 나츠키(14점 3점슛 4개), 심성영(12점, 3점슛 3개), 김예진(6점, 3점슛 2개) 등의 외곽슛이 살아난게 큰 힘이 됐다.

5차전에서는 김단비가 15점 12리바운드를 기록했으나 야투는 22개를 던져 고작 6개를 적중시키는 데 그칠만큼 슛감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심성영과 박혜미가 2.3쿼터 공격을 주도하며 김단비의 득점 부담을 덜어줬다.

가드 심성영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13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으로 우리은행이 초반 기선을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포워드 박혜미도 3점슛 3개와 함께 14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양 팀 모두 득점이 저조했던 4쿼터에선 박혜미가 53-43으로 사실상 승리를 결정짓는 쐐기 3점슛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츠키도 3점슛 2개 포함 9득점으로 지원 사격했다.

우리은행은 4강 PO에서 총 34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중 절반이 넘는 19개를 4.5차전에서 몰아쳤다. 우리은행은 마지막 5차전에서 3쿼터 종료까지 이미 10점차 우세로 승기를 잡으며, 막판까지 진땀승부를 펼쳐야 했던 2-4차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덕분에 김단비도 4쿼터에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득점 부담을 덜고, 막판까지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5차전의 주역인 심성영과 박혜미는 다른 팀에서 뛰다가 주전경쟁에서 밀려 올시즌 우리은행으로 이적해온 선수들이다. 이들은 우리은행에서는 위성우 감독의 시스템 농구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활약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큰 경기와 우승 경험이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챔프전에서도 제몫을 다해준다면 우리은행의 3연패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한편으로 KB와 최종전까지 가는 의외의 혈전을 치른 것은, 챔프전을 앞두고 우리은행에 큰 자극이 될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냉정히 말해 타 구단과의 실질적인 전력차는 순위만큼 크지는 않다는 사실을 이번 4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냈다.

5차전에서도 KB가 막판까지 수많은 오픈찬스를 만들었음에도 슛 난조로 사실상 자멸하지 않았다면, 우리은행의 승리는 결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챔프전에서도 김단비 중심으로 쏠린 경기 운영 의존도와 체력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우리은행의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편 패배한 KB도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패자'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명승부를 선보였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국보센터' 박지수가 해외 무대로 진출하면서 전력의 80% 이상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KB가, 플레이오프에서 이 정도로 선전할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 KB는 염윤아, 나윤정, 김소담 등 주요 선수들 다수가 부상으로 아웃되며 전력누수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체 자원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주며 빈 자리를 메웠다. 주득점원 강이슬과 허예은을 중심으로 아시아쿼터 나가타 모에가 살림꾼이자 승부처의 해결사로 맹활약했다. 마지막까지 강이슬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야투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사실상 7인 로테이션으로 9일간 5경기를 치러야 했던 강행군 속에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올시즌에 축적한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언젠가 박지수가 한국무대로 복귀한다면 KB가 언제든 다시 우승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 한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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