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팔로 부품 잡고 다른 팔로 조립·포장… 고난도 스냅도 척척
지난달 20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로봇 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 두 팔 달린 로봇 ‘RB-Y1′이 천천히 다가와 상체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 회사에서 개발해 지난 5월부터 국내에서 처음 상업 판매한 이동형 양팔 로봇이다. 로봇은 이후 몸을 돌려 책상을 향해 움직였다. 책상 위 비닐을 한쪽 집게로 잡고, 다른 쪽 집게로 그 사이 공간을 벌렸다. 이어 비닐 사이를 벌린 집게가 부품을 집어 올리더니 비닐 속에 넣었다. 이 로봇은 보통의 외팔 로봇보다 관절을 한 개씩 더 지녀 사람에 가까운 팔 움직임이 가능하고, 몸통도 상하 50cm 이상 움직일 수 있다. 회사 창업자이자 CTO(최고기술책임자)인 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이동형 양팔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특정 물건을 집어 옮기거나, 양 손을 모두 사용해야 해서 사람만 할 수 있던 공정을 대체할 수 있다”며 “기존 외팔 로봇은 여러 대를 놓더라도 서로 협동해 하나의 작업을 하는 것이 어려운데, 양팔 로봇은 다르다”고 했다.
요즘 국내외 산업 로봇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이동형 양팔 로봇’이다. 현대차·기아가 최근 서울대·포스텍·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손잡고 공동 연구에 들어갔고, 미국·유럽·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에서도 잇따라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각 기업이 사람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한창이지만, 작은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산업 현장에 투입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이 많다. 상체는 사람과 같지만, 하체에는 다리 대신 지지대와 바퀴를 달아 정확성을 높인 점이 이동형 양팔 로봇이 주목받는 이유다.
◇고난도 조립·물류 분야서 인간 대체
업계에선 이동형 양팔 로봇이 산업 현장의 조립과 물류, 그리고 인간에게 유독한 R&D(연구·개발) 분야에 먼저 투입될 거라고 본다. 반도채 패키징에서 특정 부품을 필요한 곳에 가져다 주는 ‘픽 앤드 플레이스(pick & place)’가 대표적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의 경우 최종 단계인 조립 공정은 여전히 사람에 의해 대부분 이뤄지고 있는데, 향후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학습이 진전된다면 이 같은 조립 공정에도 로봇이 투입될 전망이다.
물류 현장도 예상되는 분야다. 물류 센터에서는 무인 로봇이 실은 물건을 사람이 꺼내 일일이 배송지를 구분해야 하는데, 이동형 양팔 로봇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팔로는 상자를 잡고, 다른 팔로 포장을 뜯는 것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유독한 작업에서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이동형 양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관계자는 “단순하지만 위험한 일, 반복적이고 몸에 해로운 일들이 이동형 양팔 로봇의 서비스 대상”이라며 “특히 이동형 양팔 로봇은 하나의 로봇으로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 로봇의 적용처를 확대할 수 있다. 이는 로봇 가격 경쟁력 달성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노르웨이·중국·미국 등도 앞다퉈 가세
글로벌 업체들은 앞다퉈 이동형 양팔 로봇을 내놓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작년 오픈 AI가 투자한 원엑스 테크놀로지가 ‘이브’를 내놨다. 키패드를 조작하고 출입문을 제어해 미국 등 공장에서 경비 업무를 비롯한 분야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푸두로보틱스도 최근 ‘푸두 D7′을 공개, 내년부터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생산 현장에서 물품 운반이나 분류 작업에 투입될 수 있다고 한다.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통 로봇 강호들이 한발 앞서 나가는 가운데 값싼 부품 생태계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중국 기업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다. 시장조사 업체 VMR에 따르면, 이동형 양팔 로봇의 시장 규모는 2022년 25억달러(약 3조6000억원)에서 2030년 60억달러(약 8조6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해외 주요 로봇 선진국에 비해 다소 뒤처친 생태계 조성 등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급망 생태계에서 미국·일본·중국 대비 영세하기 때문에 최근 국내 대학들과 공동 연구실을 설립했다”며 “향후 산업용 로봇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라도 보다 강력한 국내 생태계를 조성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형 양팔 로봇
사람처럼 자유롭게 양팔을 사용하고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가는 징검다리로도 불린다. 상체는 사람 형태와 유사하지만, 하체엔 다리 대신 지지대와 바퀴를 달아 안정성과 정확도를 높였다. 기존 로봇이 할 수 없었던 고난도 조립 및 물류 처리 등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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