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이코노믹스] 버블 터지기 직전 성장주 강세…과거 사례 잊지 말아야

2024. 9. 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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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미국 주식 시장 쏠림 현상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투자자에게 회자되는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한국 증시가 장기 횡보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는 강세를 나타내면서 한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는 코로나 팬데믹 직후 초저금리 투자 환경이 만들어졌던 2020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한국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총 604억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약 81조원에 달하고 있다.

지능이 뛰어난 사람부터 해외 주식을 매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느 나라 투자자나 ‘자국 자산에 대한 편향적 투자(Home bias)’가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여기 머물지 않고 해외 자산을 편입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 투자 성과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글로벌 경제의 중추 국가 반열에 올랐지만 한국 너머의 세상은 넓고, 투자할 곳도 많다. 2023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그치고, 2024년 7월 말 기준 세계 주요 증시 시가총액에서 한국 증시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4%에 불과하다.

「 2011년 이후 코스피 31% 오를 때
S&P500 347%, 나스닥 569%

국내 투자자 해외 주식 순매수 중
미국 주식이 94%인 76조원 차지

2000년대 초반 닷컴 주식 약진은
역사상 최대 증시 버블로 이어져

가계 자산 중 해외 비중 여전히 낮아
최근 해외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전체 가계금융자산에서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절대 비중은 여전히 낮다. 2023년 말 기준 한국 가계가 보유 중인 해외금융자산은 원화로 환산하면 99조원이다. 이 중 해외 주식이 88조원, 해외 채권이 11조원으로 주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해외금융자산은 2020년 이후 연평균 44.6%라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아직 전체 가계금융자산(5204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글로벌 자산 배분을 실행한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4월 말 기준 40.6%에 달하고 있다. 가계가 전문적 투자기관인 국민연금 수준으로 해외 자산 보유를 늘릴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

대부분의 투자 행위가 그렇듯이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도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자산에 대한 극심한 쏠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요즘과 비교하면 투자 규모는 적지만 2014~15년에도 홍콩 증시를 통해 중국 본토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후강퉁(滬港通·상하이-홍콩 증시 교차거래)제도가 도입되면서 한국 개인투자자의 중국 주식 투자 붐이 나타난 바 있었다. 2014~15년 전체 해외주식 순매수 4억7000만 달러의 93%인 4억4000만 달러가 홍콩 주식에 대한 순매수였다.

미국 증시 불패란 맹신 버려야
요즘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투자처는 단연 미국 주식이다. 2020년 이후 전체 해외 주식 순매수 금액 604억 달러 중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은 571억 달러(약 76조원)로 9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돈은 수익률을 따라 흐른다. 한국 증시의 장기 성과 부진에 지친 개인투자자가 미국 증시로 투자의 물꼬를 돌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는 2011년 이후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은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한국이 그 영향을 받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2010년 말 이후 2024년 8월 27일까지 코스피는 31% 상승에 그치고 있는 반면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 상승률은 347%나 된다. 이 기간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이 거래되는 나스닥 지수의 상승률은 569%에 달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최근 십수 년 미국 증시의 성과가 압도적으로 좋기도 하지만, 한국인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확고한 재산권 보호와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의 주도권, 기업의 혁신, 주주친화적인 투자 문화 등 미국 증시가 가진 장점은 많다. 미국 증시로 투자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미국 증시가 늘 불패라는 맹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어떤 자산 가격이건 오르내리는 사이클을 가지게 마련이고, 많이 오른 자산은 가격의 운동 방향이 바뀔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곤 한다. 이는 자산의 절대적 퀄리티에 대한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훌륭한 자산일수록 투자자의 몰입이 생기면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고평가 혹은 버블이 생기는 것이다. 고평가된 자산 가격은 언젠가는 제 자리로 돌아온다. 2025년 예상 실적 기준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23.7배, 33.0배에 달하고 있다(8월27일 종가 기준). 미국 증시 130년 역사상 IT 버블 국면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미국 증시의 성과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맞물렸던 1940년대 내내 시장이 박스권에 머물렀고(1937년 3월~1950년 5월, S&P500 지수 연평균 등락률 +0.29%), 인플레이션이 엄습했던 1970년대(1968년 12월~1982년 7월, -0.08%)와 IT 버블이 붕괴됐던 2000년대 초반의 10여 년(2000년 4월~2013년 1월, -0.01%)도 장기 성과가 부진했다. 최근 십수 년의 한국 증시가 보여주고 있는 박스권 장세와 비슷한 사례를 미국 증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증시의 장기 횡보장은 미국 경제와 주식 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극단으로 치달은 직후에 나타났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엿볼 수 있는 ‘열광의 1920년대’가 지난 뒤 장기 횡보장이 나타났고,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렸던 1950~60년대 장기 호황이 끝난 뒤 1970년대의 부진한 장세가 이어졌다. 또한 ‘인터넷 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낙관론이 득세했던 1990년대가 끝난 직후 미국 증시는 장기 횡보 장세에 접어들었다. 미국증시의 장기 사이클은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해준다.

김주원 기자

한편 낙관론이 팽배했던 장기 강세장의 막바지 국면에서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 강세가 나타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공황으로 주식 시장이 붕괴하기 직전이었던 1920년대 미국 증시를 풍미했던 종목들은 당시의 첨단기술주였던 자동차와 라디오 주식들이었다. 이들은 매우 비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고평가)으로 거래됐다.

강세장 막바지엔 성장주 잘 나가
1970년대 주식 시장의 장기 횡보세에 접어들기 직전에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매력적인 50개 종목)’로 불렸던 우량주가 득세했다. 맥도널드와 IBM, 제록스 등 비즈니스 모델이 좋은 우량주가 ‘니프티 피프티’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이들 종목은 ‘원 디시전 스탁(one decision stock)’으로 불리기도 했다. 워낙 좋은 회사들이기 때문에 주식을 일단 사기만 하면 평생 팔 필요가 없다는 칭송이 담긴 표현이었다. 투자자의 열광이 지나치다 보니 ‘니프티 피프티’ 종목은 PER 60~80배의 고평가된 가격으로 거래됐다.

2000년대 초반 장기 횡보 장세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역사상 가장 큰 버블이었던 닷컴 주식의 약진이 있었다. 요즘 미국 증시에서도 우리 시대의 혁신기업이라 부를 수 있는 ‘매그니피선트7(M7,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애플·알파벳·아마존·메타·테슬라 등을 지칭)’의 강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도 이들 성장주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 개인투자자의 총 해외 주식 보유 금액은 970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데, 이 중 엔비디아(126억 달러)와 테슬라(125억 달러)가 근소한 차이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뒤를 이어 애플(50억 달러)과 마이크로소프트(34억 달러)가 3위와 4위를 차지하고 있고, 알파벳(22억 달러)이 7위, 아마존(14억 달러)이 9위다. ‘M7’ 종목 중 보유금액 순위 20위(7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메타플랫폼스를 제외한 6개 종목이 보유 상위 10대 종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상위 10대 종목 중 나머지 4개는 상장지수펀드(ETF)인데, 이들 중 3개가 나스닥 시장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M7’ 종목군 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3개의 나스닥 추종 펀드 중 2개가 나스닥 100지수 등락 폭의 3배를 반영하는 레버리지 펀드라는 사실이다. 상위 10대 종목 중 마지막 10위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미국 장기채 ETF 역시 채권 가격 변동의 3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다. 만기가 긴 장기 채권은 상품명에 ‘채권’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을 뿐이지, 가격 변동이 매우 커 사실상 ‘주식’에 가까운 상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미국 빅테크주 집중 투자 우려스러워
한국인의 미국 주식 투자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미국 빅테크주, 지수 변동 폭의 3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에 집중돼 있다. 기대수익률은 높지만, 동시에 높은 위험도 감내해야 할 종목에 대한 쏠림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걱정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은 탁월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도 그 기업의 미래 가치를 주가가 이미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국면에서 나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여년이 지난 요즘에도 나스닥 시가총액 1위를 다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기업도 닷컴 버블 붕괴 국면에서 주가가 65%나 급락한 이후 10년이 넘는 횡보기를 거쳤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좋을 투자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당겨와 주가에 투영하고 있는 성장주에 대한 한국 투자자의 쏠림은 장기적으로 또 다른 걱정거리를 잉태하고 있다고 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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