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도 폭염, 14살 노견 '옥상'에…학대 아니랍니다
서귀포시청에선 "학대 아니다" 판단, 경찰 수사 중
동물보호법엔 '더위 피할 공간 제공' 의무만 명시, 구체적인 학대 기준 세울 필요
수의사 "아이 상태로 봤을 땐 방치 맞아"
14살 노견(老犬)이 제주도 서귀포시 한 건물 옥상에서 살고 있었다. 진돗개 믹스로 추정되는 개였다.
강아지 나이 14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설채현 수의사가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한 계산법이 있다. UC샌디에이고 의학팀과 암센터가 DNA를 토대로 연구한 결과, 강아지 나이 14살은 사람 나이 73세였다.
누군가 그 광경을 봤고 사진을 찍었다. 삽시간에 논란이 됐다.
꾀죄죄하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있는 모습. 무기력하게 한쪽으로 누워 있던 개. 발바닥은 발갛게 보였다.
이를 본 누군가는 사진을 보자마자 소리 질렀다고 했다. 너무 말랐다고, 어떻게 옥상에서 저렇게 키우느냐고 했다. 견주와 '긴급 분리' 해달란 요청도 있었다. 어떻게든 구조해달란 얘기가 가장 많았다.
나이든 개의 이름은 '초롱이'였다. 그날 한낮 온도는 30도였단다. 개가 살고 있는 건물 옥상엔 주거침입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근 건물 옥상에 갔단다. 바닥 온도를 쟀다. 서형진 쿰다 대표가 말했다.
"인근 다른 건물 옥상의 '바닥 온도'를 재봤습니다. 52도가 나오더라고요. 오후 6시가 넘도록 4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의사 소견에 따르면 발바닥을 40도 이상 온도에 장시간 접촉할 시 저온화상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개가 사는 건물 옥상엔 그늘이 있긴 했으나 뻥 뚫린 형태였다. 거기에 밥과 물을 놓는 곳, 잠잘 곳이 있었다.
다만 옆쪽에, 에어컨 실외기 4대가 놓여 있어 더운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고. 서 대표는, 초롱이가 그런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없었을 거라 했다.
초롱이 견주는 "원래는 집안에서 키우다가, 대변과 소변을 못 가려서 문을 열어두고 2~3년 전부터 옥상에서 키웠다"고 했다.
살이 빠져 마른 부분에 대해서는 "동네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해서 몰랐고, 먹는 건 잘 먹어서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매일 초롱이를 봐서 (살이 빠진 걸) 인지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진드기에 물린 적이 있었는데, 그 후유증인가 생각했다"고도 했다.
더위에 방치했단 것에 대해선 "에어컨 실외기도 (논란이 될 당시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며 "초롱이 발바닥도 저온 화상이 아닌 걸로 병원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초롱이가 악성 종양이 있는 걸 확인한 뒤, 현재 상황에 대해선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체크하고 있다"며 "아프니까 맘이 안 좋다. 같이 살던 짐승이고 식구나 마찬가지니까 케어를 잘 해보겠다"고 했다.
당시 파악한 내용이 어땠는지 동물보호팀장에게 물었다.
"현장에 갔을 때 기온이 28.9도였습니다. (건물 옥상) 그늘은 거의 비슷하게 나왔고, 한가운데는 32도 정도 나왔습니다. 사료와 물을 주고 있고, 그늘 밑에 집이 있었어요. 병원도 꾸준히 다니고 있어서, 저희가 학대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동물 학대로 보기 힘들단 얘기였다. 동물보호팀장은 "학대 여부를 확인할 때는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 학대인지 아닌지 판단한다"고 했다. 학대로 인해 질병과 상해를 유발했는지 확인한단 거였다.
노견이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다. 팀장은 "견주에게 확인해보니, 나이가 많아 살이 빠진 걸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관련해서 초롱이를 큰 병원에 데려간 결과 '악성종양', 암이 있었다. 그동안 다닌 병원이 아닌, 정밀 검사가 가능한 곳으로 가서 처음 발견한 거였단다.
14살 노견, 암까지 걸려 있었던 초롱이. 폭염에서 살던 곳은 건물 옥상. 이후 견주는 초롱이를 실내로 데려갔다고 했다.
'소유자들은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 공간 및 먹이 제공, 적정한 길이의 목줄, 위생ㆍ건강 관리를 위한 사항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육ㆍ관리 또는 보호 의무를 위반하여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
중요한 건 문장의 끝부분이다.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
아무리 열악한 사육 환경이어도, 그로 인해 다치거나 아프지 않으면 학대로 간주하지 않겠단 걸로 비춰지는. 이 조항 때문에, 어떤 동물이 혹한, 혹서에 노출돼 무진장 고통받아도 처벌할 수 없단 지적이 계속돼왔다.
이에 기동민 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9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상해나 질병뿐 아니라 '고통'을 유발하는 것까지 동물 학대로 볼 수 있게 포함시켰다.
또 동물보호법 제9조, '소유자 등은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에서 '노력하여야 한다'를 '보장하여야 한다'로 바꿨다. 노력이 아니라 제대로 보장하도록 강제성을 부여한 거다.
하지만 기 전 의원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임기 내 통과되지 못해 폐기됐다.
이와 관련해선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6조 제5항에 명시돼 있는데, 이리 나와 있다.
'동물을 실외에서 사육하는 경우 사육공간 내에 더위, 추위, 눈, 비 및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할 것'
더위는 몇도 이상인지, 휴식 공간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대개 사육 환경 관련 동물 학대 신고가 들어갈 경우, 지자체 공무원에 따라 판단이 달라졌고, 소극적으로 학대가 아니라고 결론내리는 일이 빈번했다.
서형진 쿰다 대표 말이 이랬다.
"반려 동물 사육 공간이란 게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더위, 직사광선 이렇게만 나와 있고요. 사료나 깨끗한 물을 급여하는 것마저도 기준이 애매모호해요. 어떤 지자체 팀장은 하루 두 번, 다른 팀장은 하루 한 번이라 합니다. 동물보호팀에서 판단하기 부담스러워 합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해요."
법이 구체적이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서귀포시 동물보호팀장도 "당연하다. 학대 기준에 대해서 적정한 사료 기준이 뭔지, 온도는 몇 도인지, 장소는 몇 평이어야 하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면 처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설채현 놀로 수의사(원장)는 "아이 상태로 봤을 땐 방치 되어 있긴 하다"고 했다. 이어 이리 말했다.
"통상 개가 '실내'에 있을 땐 섭씨 16도에서 28도 정도를 적정 온도로 보고 있어요. 구체적인 기준을 세우는 게 정말 힘들긴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 학대 혐의와 관련해 서귀포경찰서에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 대표는 "불행 중 다행인 게 경찰관 중 한 분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사건을 접수했다고 했다"며 "현장 조사한 모든 자료와 상황을 빠짐없이 전달했다"고 했다.
이어 "밥그릇 주변에 생선 뼈가 굴러다니고 옥상이라 새똥도 많았다. 청결 관리도 보호자 의무"라고, 제대로 된 수사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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