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리 유적 발굴 42년…사비왕궁 정전 찾을까”

송인걸 기자 2024. 5. 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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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중심은 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정전입니다. 의례 등이 열리던 건물 터가 발굴된 만큼 정전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관북리 유적지 건물 터에는 660년 사비백제의 마지막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으로 발굴팀은 기대한다.

김영규 부여군 백제왕도팀장은 "건물 터 발굴 보고서를 보면 대들보가 내려앉으면서 불 먹은 기와와 수막새 등이 쏟아진 상태 그대로 무더기를 이룬다"며 "지난해 발견된 칠피갑옷도 누군가 훗날을 위해 구덩이를 파고 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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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시작해 16차 발굴, 고대 동아시아 왕궁 배치와 유사
시내 메우고 곡식창고터에 건물, 계획 따라 왕궁 증축 흔적
사비백제 왕궁지로 알려진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지, 1982년부터 42년간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왕궁의 중심은 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정전입니다. 의례 등이 열리던 건물 터가 발굴된 만큼 정전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충남 부여에서 40년 넘게 진행돼온 백제의 마지막 왕궁지 발굴이 2단계 사업에 접어들었다. 부여는 웅진성(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한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던 곳이다. 사비성은 부여읍 부소산성과 나성 일대를 가리킨다.

지난 29일 아침 부소산 자락 관북리 유적지에서 만난 심상육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16차 발굴지를 가리키며 “정전 발굴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16차 발굴지에선 지난해 백제 멸망 직전 마지막 전투의 흔적으로 여겨진 칠피갑옷들과 함께 왕이 정무·의례를 주관하던 건물 터와 연화문전 등이 확인됐다. 발굴된 건물 규모는 남북 방향으로 60m에 이르는데, 주변에선 폭 8~9m의 도로와 교차로, 상수도 유적도 발견됐다.

발굴 실무자들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진행되는 2단계 발굴을 하면 사비왕궁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전망한다. 부소산 자락과 왕궁은 담으로 경계를 이루고 경사면을 깎아 남쪽으로 터를 조성했다. 현재 부소산성으로 오르는 입구 구실을 하는 사비문의 오른쪽 평지는 관청들이 즐비했을 것으로 발굴팀은 추정하고 있다.

관북리 발굴 책임자인 심상육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선임연구원(왼쪽 셋째)이 지난 29일 사비문 누각에서 관북리 유적지의 특징과 발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백제는 538년 사비로 수도를 옮기고 541년 가야부흥회의를 개최하는 등 국력을 과시했다. 왕궁 터가 있는 관북리는 백마강이 부소산을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휘감아 도는 천혜의 요새였다. 심상육 선임연구원은 “관북리는 각 건물을 기능에 따라 배치한 계획도시다. 서당 지하 창고 유적은 백제가 사비로 수도를 이전한 뒤 왕궁을 대규모로 증축한 흔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남조, 경주 동궁과 월지, 일본 아스카 궁과 일본 전기 나니와 궁 등 고대 동아시아 왕궁들의 건물 배치 형태로 미뤄 보면, 백제는 서당과 동당 사이, 조당의 북쪽 교차점쯤에 정전을 지었을 것”이라며 “정전이 확인되고 왕의 사적 공간인 내조가 발굴되면 6세기 중반 이래의 백제 관직제도인 22부사의 실체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북리 유적지 건물 터에는 660년 사비백제의 마지막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으로 발굴팀은 기대한다. 김영규 부여군 백제왕도팀장은 “건물 터 발굴 보고서를 보면 대들보가 내려앉으면서 불 먹은 기와와 수막새 등이 쏟아진 상태 그대로 무더기를 이룬다”며 “지난해 발견된 칠피갑옷도 누군가 훗날을 위해 구덩이를 파고 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당시 왕궁은 불바다였던 듯하다”며 “건물들은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차례차례 무너졌을 것이고, 궁인들은 주요 유물을 주변에 파묻고 탈출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문화재청과 부여군 관계자들이 관북리 유적지 발굴·복원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붉은색 건물들은 매입해 철거할 예정이다. 송인걸 기자

관북리 유적지는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왕흥사지 등 12개 핵심 백제유적과 함께 발굴이 본격화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왕도추진단과 부여군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1단계 사업을 마치고 올해부터 2028년까지 2단계, 2038년까지 3단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산은 관북리 2412억원 등 모두 7092억원이다.

관북리 유적지는 토지 매입, 발굴, 학술 고증, 정비가 사업 순서인데 사유지 매입부터 어려움이 많다. 김영규 팀장은 “매장문화재 특성상 금동대향로 발굴 같은 구체적인 성과가 자주 있는 사건이 아니어서 지역민 협력이나 국민 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발굴 대신 보전해야 한다는 학계의 이견도 적지 않고 조직과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며 “관북리 유적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내년까지 사유지를 매입해 건물을 철거하고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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