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대파’ 막았더니 패러디 봇물…딜레마 빠진 선관위
“특정 물품 제한 아닌 선거 공정성 위한 조치”
전문가들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제한 기준 애매”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4·10 총선 본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투표소 내 대파 반입 금지' 후폭풍을 맞고 있다. 선관위 결정에 반발한 시민들이 SNS에 각종 대파 패러디물을 앞다퉈 올리고, 대파 상징물을 직접 만들거나 구매해 본투표장에 나서겠다는 '각오'도 넘쳐난다. 대파가 '정치적 표현물'로 분류되면서 여야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다른 물품 소지에 대한 후속 문의도 빗발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표현물'에 대한 분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관위의 반입 금지 결정이 혼선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선관위는 9일 사전투표에 이어 본투표에서도 대파를 투표소 내 반입 제한 품목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선관위 측은 투표소 내 대파 반입 금지 조치와 관련해 "기존 조치와 바뀐 점은 없다"며 "투표소의 질서와 자유, 비밀 보장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실상 현장에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물품을 소지했는지 전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만 안내 차원에서 소지품을 밖에 보관하고 입장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표소 안은 표현의 자유보다 선거의 공정성이 더 중시되는 공간"이라며 "국민들도 이 점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선관위가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분류하면서 유권자들은 대파를 형상화 한 물건을 만드는 등 '우회로'를 찾거나 패러디물을 만들어 이번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지난 5일과 6일 진행된 사전투표 당시 투표소에 대파를 들고 들어가다 제지 당한 사례나 대파 모형 물품을 들고 간 '인증샷'이 잇달아 게재됐다. 실제 대파를 들고 갔던 유권자들은 투표소 바깥에 잠시 대파를 두고 '대파 발렛 중'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대파가 그려진 가방이나 뜨개질로 만든 대파, 대파 모양 볼펜·열쇠고리 등을 지참하고 투표소로 갔다는 사연도 쏟아졌다.
지난 6일 사전투표에 참여한 40대 박정(가명)씨는 "대파 반입 금지같은 조치가 없었다면 그냥 투표하러 갔을텐데 듣도보도 못한 대파 금지 규정에 가방에 대파를 들고 가봤다"며 "제지하는 공무원도 좀 어이없어 하는거 같은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대파 금지 여파가 커지면서 온오프라인 상에서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을 지적하며 '디올백은 괜찮나' 등 질의도 이어졌다. 실제로 해당 브랜드명을 적은 종이백을 사전투표소에 들고간 유권자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정치적 표현물' 기준은?…"선관위 직원도 모를 것"
선관위는 대파 반입금지 논란이 확산되자 6일 보도자료를 통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투표소 내 특정 물품을 본래 용도를 벗어나 정치적 의사 표현의 도구로 사용할 경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매우 크다"며 "공직선거법상 (사전)투표소 안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동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지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이번 결정을 내린 배경에 '윤석열 정부에 항의하려는 의미로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도 되느냐'는 유권자 문의가 있었고 이에 따라 내용을 검토, 공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파에 이어 각종 물품 반입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면서 선관위는 곤혹스런 상황이 됐다. '정치적 표현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번 결정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선거법에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애매한 규정이 굉장히 많다"며 "선관위 직원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질문하면 제대로 답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평론가는 "선관위가 이러한 영역에 자체적인 잣대를 들이대려고 하는 순간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아예 해석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선관위의 섣부른 대응이 오히려 논란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평론가는 "대파 반입을 규제함으로써 오히려 유권자들의 관심이 대파에만 쏠린 셈"이라며 "과잉대응에 따른 역효과"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대파 반입 행위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규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료품인 생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짚었다.
신 교수는 규제의 일관성이 없어 혼선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며 "선관위가 규제 기준을 굳이 정한다면 일관성 있게 조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파를 규제할 거면 대파와 유사한 물품까지도 규제하는 게 맞다"며 "식료품인 대파와 달리 명품가방 등은 사실상 소지품이기에 정치적 표현물로 해석하더도 단속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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