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조회가 기업 평판을 떨어트린다? 절차 어겼다가…졸지에 ‘스토커’ 되겠네 [경영전략노트]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3.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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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조회가 기업 평판을 떨어트린다?

# 이직을 준비 중인 직장인 김 모 씨(34)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직장에 이직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왜 회사를 나가려고 하냐며 연락이 빗발친 것. 모두에게 비밀로 하려던 사실이 갑자기 밝혀지자 당황한 김 씨는 유출 원인을 급히 조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똑같았다. 동료들 모두 “김 씨가 이직하려 했던 A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답했다. A회사는 채용 플랫폼인 ‘링크드인’을 통해, 김 씨 동료에게 접촉, 김 씨의 평판을 조회했다. 김 씨는 면접 당시 평판조회가 이뤄진다는 말을 아예 듣지 못한 상태였다. A회사 인사 담당자는 “김 씨가 우리 회사에 오려고 면접까지 마친 상태다. 혹시 김 씨의 태도, 업무 능력 등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냐”고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화가 난 김 씨는 A회사에 따지려 전화했지만, A회사는 사과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 씨는 “몰래 뒷조사하는 회사에 차마 갈 수 없어 지원을 철회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직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퍼져 눈치 보며 다니는 게 일상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채용 과정에서 평판조회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직장인 불만도 덩달아 커지는 분위기다.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정보를 조회하거나, 뒷조사하듯 사생활까지 모두 캐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평판조회를 무리하게 진행하면 기업에 오히려 불이익이 된다고 경고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침해로 인한 법적 처벌의 소지가 있는 데다, 기업 이미지를 떨어트리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평판조회, 코로나 유행 거치며 급증

직장인 10명 중 1명 불이익 받았다

평판조회, 흔히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로 불리는 과정이다. 직원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기존 직장에서 업무 능력이 어땠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 질문하는 까닭에 ‘소리 없는 면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회사에 들어올 직원 성향을 점검하는 작업이다. 주로 경력직 직원을 채용할 때 활발히 이용된다. 과거 공채 출신 선호도가 높고, 경력 채용이 많지 않았던 국내 기업들은 평판조회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 적어도 임원급 직원을 채용할 때만 주로 조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이후 채용 트렌드가 변하며 흐름이 바뀌었다. 신입 채용 대신 경력직 직원을 선호하는 풍토가 생기며 경력직 직원들이 조직 내 핵심 인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조직을 책임질 직원 평판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작업이 됐다. 조직 내 평판은 채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펙으로 변신했다. 평판조회 대상은 임원급에서 과장·대리 등 일반직급으로 확대됐다. 채용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인크루트가 직장인, 인사 담당자 7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5%가 평판조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평판조회가 채용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동시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동의 없는 조회, 뒷조사하듯 사생활까지 캐는 조사 행태다. 인크루트 조사 결과 동의 없는 평판조회로 재직 중인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은 직장인이 적잖았다. 설문조사에서 실제로 직접 불이익을 당한 직장인은 10.6%, 이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31.4%에 달했다. 회사의 무리한 조사로 인한 우려도 상당했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평판조회 시 가장 걱정된 점으로 ‘이직 시도가 재직 중인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라는 답이 37%로 가장 높았다. ‘타인에게 개인 정보가 알려지는 점’을 꺼리는 직장인도 많았다. 응답자 28.5%가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평판조회를 채용 과정에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부작용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동의 없는 무단 평판조회로 인한 인재들의 반발이 적잖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동의 없는 평판조회는 불법

기업 이미지 하락도 불가피

전문가들은 무리한 평판조회는 회사에도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 당사자의 동의 없는 평판조회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타인의 개인 정보를 조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의 없는 정보 조회는 불가능하다. 평판조회 시 수집하는 업무 능력, 근태 등의 정보는 사실상 ‘개인 정보’에 해당한다. 조회하려면 당연히 당사자 동의가 필수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최소 5000만원 이상 벌금형에 처해진다.

홍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회사가 평판조회를 통해 습득하는 정보는 개인 정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위반하면 형사 처벌의 가능성도 큰 만큼, 동의 없는 무단 평판조회는 피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둘째,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 직원 평판을 중요시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만큼, 기업의 평판을 중요시하는 직장인 수도 증가하고 있다. 잡플래닛, 블라인드 등에서 기업의 문화, 회사 임원의 인성 등이 모두 공유되는 시대다. 뒷조사하듯 무리하게 평판을 조회하다가는, 지원자 사이에서 ‘스토커’ 같은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이는 곧 지원자 감소로 떨어진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를 뽑지 못하게 된다. 헤드헌팅 업체 커리어케어의 이영미 사장은 “지원자들은 회사에 돈만 보고 가는 게 아니다. 회사의 비전, 조직문화, 처우, 인사 제도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뒷조사하는 기업이라고 소문이 나는 순간, 좋은 인재를 뽑는 기회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식이라도 동의서 꼭 받아야

플러스알파가 아닌 ‘필수’라고 인식

평판조회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 동의와 소통이 필수라는 조언이 나온다. 알음알음 평판을 조회하지 말고, 채용 과정의 단계로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다.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과거부터 평판조회를 많이 했던 채용 업체의 경우 반드시 평판조회 동의서를 받는다. 홍성 변호사는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약식이라도 개인 정보 조회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자와 소통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일부 기업은 평판조회를 여전히 채용의 부수적인 절차로 인식한다. 지원자에게 ‘평판조회 절차가 남았다’고 통보하지 않는 사례도 상당하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평판조회가 들어오면 뒤통수를 맞는 셈이다. 당연히 해당 기업의 이미지는 악화된다.

“평판조회를 과거와 같은 세평 수집 수준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미 채용 여부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제대로 평판을 조회하려면, 채용 전에 미리 고지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원자들도 평판조회가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잘 안다. 오히려 환영하는 지원자도 있다. 뒷조사하듯이 캐지 말고 사전에 설명만 잘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영미 사장의 진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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