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백질은 왜 ‘왼손잡이’일까...실험으로 재현했다
같은 거울상 분자끼리 만들어진 펩티드가 더 풍부해져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구조상 ‘왼손잡이(L형)’거나 ‘오른손잡이(D형)’다. L형 분자와 D형 분자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분자식과 구조는 똑같지만, 마치 서로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방향이 반대인 ‘거울상 분자(키랄구조이성질체)’다. 이 때문에 L형 아미노산을 왼손형 아미노산, D형 아미노산을 오른손형 아미노산이라 비유적으로 부른다. 이중 살아있는 생명체를 이루는 자연상 모든 아미노산은 L형이다.
최근 과학자들이 원시 지구에서는 아미노산이 L형과 D형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지만 어떤 계기로 L형만 남아 생명체를 구성하게 됐는지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8일(현지 시각)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연구진은 아미노산과 아미노산이 연결된 디펩티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같은 방향을 띄는 아미노산으로만 이뤄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거울상 분자는 구성 성분과 구조가 같아도 방향이 반대이므로 물리적, 화학적 특성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리모넨 분자는 방향에 따라 레몬향 또는 오렌지향이 난다. 케타민 분자는 방향에 따라 마취제로 쓰이거나, 또는 환각이나 불안을 일으키는 환각 성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거울상 분자를 만들어 향수나 제약, 식료품 산업에서 쓰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생체 아미노산은 모두 L형이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여러가지 가설을 내놨다. 원시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면서 L형인 아미노산을 뿌렸다거나, 지구 자기장이 초기 생체분자를 변형시켜 L형으로 통일시켰다는 것 등이었다.
연구진은 매튜 포너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화학과 교수팀이 2019년 네이처에 낸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당시 연구진은 원시 지구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황 분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분자가 물속에서 아미노산 전구체인 아미노니트릴을 서로 연결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혔다. 결국 이것이 나중에 최초의 단백질이 되고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연구진은 이들 아미노산이 거울상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도나 블랙먼드 스트립트연구소 화학과 교수팀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연구팀이 했던 실험을 재현하며, 이 촉매가 디펩티드를 만들 때 거울상 어떤 특성을 띠게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실험 결과, 초기에는 같은 거울상 분자로만 이뤄진 디펩티드(호모키랄)보다 반대인 거울상 분자끼리 이뤄진 것(헤테로키랄)이 4배나 더 많았다. 연구진은 원시 지구에서 아미노산이 이미 거울상을 띄고 있었다 하더라도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 헤테로키랄 형태로 뒤섞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헤테로키랄 디펩티드가 물속으로 침전됐다. 결국 호모키랄로만 이뤄진 디펩티드가 훨씬 풍부해졌다. 또한 L형이 60%, D형이 40%로 L형이 좀 더 우세하게 많이 생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즉, L형 분자로만 이뤄진 디펩티드가 훨씬 많이 남았다.
연구진은 왜 이런 편향 효과가 일어나는지 구체적인 원인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자연적으로 호모키랄 디펩티드가 헤테로키랄 디펩티드보다, 또 L형 단백질이 D형 단백질보다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져 결국 생명체도 L형 단백질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아미노산이 3개 이상 연결된 폴리펩티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블랙먼드 교수는 “예비 연구를 거친 결과 역시 황 촉매를 사용해 폴리펩티드를 합성할 때도 L형 호모키랄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유전체를 이루는 DNA와 RNA 역시 키랄성을 띠고 있으며 모두 ‘오른손잡이(D형)’다. 연구진은 아미노산뿐 아니라 DNA와 RNA가 유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연구 결과는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참고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05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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