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車 창피해서 못타겠다”…요즘 20대, 돈 없어도 싫다는 경차의 ‘반란’ [세상만車]
경차=싼차=창피한 차, 체면 때문?
자존감 높은 욜로족 “경차면 어때”
한국인의 자동차 구매 성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신분차별제인 카스트(caste)처럼 ‘크기=가격=신분’으로 구성된 자동차 ‘카(car)스트’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남자는 명차에, 여자는 명품에 미친다”는 말처럼 여성보다는 남성이 카스트 최하층 신분인 경차와 소형차를 더 무시하는 분위기도 형성됐습니다.
지난해 남성이 선호한 국산차 톱5에는 경차와 소형차가 단 한 개 차종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임원차로 인기를 끌면서 ‘성공하면 타는 차’로 자리잡은 준대형세단인 현대차 그랜저(6만2250대)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족용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인기높은 중형 SUV인 기아 쏘렌토(5만4164대)와 준중형 SUV인 기아 스포티지(3만9518대)가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습니다.
쏘렌토와 ‘아빠차’ 자리를 놓고 다투는 현대차 싼타페(3만2648대), 국가대표 미니밴으로 불리는 기아 카니발(3만1205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소형 SUV이지만 준중형급에 버금가고 가격도 경쟁차종보다 비싼 기아 셀토스(2만2296대)가 1위를 달성했습니다.
준중형 세단으로 ‘오빠차’ 대명사였던 현대차 아반떼(2만918대)는 2위를 기록했죠. 오빠차에서 ‘누나차·엄마차’로 변신하고 과정에 있다는 뜻이죠.
현대차 캐스퍼(1만8917대)가 경차로서는 유일하게 톱5에 포함됐습니다. 남성들이 가장 선호한 그랜저(1만7914대)도 4위를 기록했죠. 남성 선호차종인 스포티지(1만7167대)도 5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둬들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돈이 부족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20대 남녀에게 추천하는 생애 첫차는 가격이 저렴하고 운전하기 편하고 유지비도 적은 경차와 소형차입니다.
자동차 브랜드가 경차를 내놓을 때도 20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광고도 역시 20대를 타깃으로 삼았죠.
실상은 달랐습니다. 기아 모닝과 레이의 경우 20대 비중은 각각 8%와 7%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모닝 구매자 10명 중 6명은 30~40대였습니다. 레이 구매자 10명 중 8명은 40대 이상이었죠.
30대 남성은 더 큰 차를 더 많이 구입했습니다. 쏘렌토, 스포티지, 그랜저, 싼타페, KG모빌리티 토레스 순이었습니다.
40대 남성도 30대 남성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지만 레이도 많이 샀습니다.
쏘렌토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그 뒤를 카니발, 그랜저, 대형 SUV인 현대차 팰리세이드, 레이가 이었습니다. 레이가 40대 이상에게 인기가 높은 것도 남성 덕분인 셈이죠.
50대 남성은 그랜저, 쏘렌토, 싼타페, 스포티지, 제네시스 G80 순으로 많이 샀습니다. 60대 남성도 그랜저를 가장 선호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쏘렌토, 싼타페, 투싼, 스포티지 순이었습니다.
20대 여성은 셀토스, 아반떼, 캐스퍼, 현대차 코나, 스포티지 순으로 많이 샀습니다.
30~40대 여성은 경차 주요 구매자입니다. 30대 여성이 가장 선호한 차종은 캐스퍼입니다. 셀토스, 스포티지, 아반떼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레이도 5위에 합류했습니다.
40대 여성 구매 1순위는 레이로 나왔습니다. 그랜저, 셀토스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캐스퍼는 4위, 스포티지는 5위를 기록했습니다.
50대 여성은 좀 더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랜저가 1위 자리를 차지했죠. 아반떼, 셀토스, 스포티지, 코나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경차는 한 개 차종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60대 여성 구매 1~3위는 50대 여성과 같습니다. 대신 모닝과 캐스퍼가 4위와 5위를 기록하며 다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단시간 빌려 타는 카셰어링과 할부나 리스 등 자동차 금융 확산도 경차 외면 현상에 영향을 줬다고 풀이하죠. 카셰어링 주력 차종은 경차입니다.
‘소유’보다는 ‘공유’에 익숙한 20대는 카세어링을 통해 경차를 경험합니다. 쉽게 빌려 탈 수 있기에 경차 구매욕구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자는 비싸지만 목돈 부담을 줄여주는 자동차 금융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30~40대의 경우 1가구2차량 시대를 맞아 30·40대는 출퇴근용이나 가벼운 나들이용 세컨드카로 경차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큰 차가 필요 없어진 50대 이상도 20대보다는 경차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하네요.
아울러 가격이 소형차·준중형차 수준으로 비싸진 대신 안전·편의사양이 향상된데다 레이·캐스퍼처럼 공간 활용성이 우수한 경차가 등장한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작아서 불안하고 불편해 불만이다’는 경차의 ‘3불 단점’이 상쇄됐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들은 자신이 우수한 씨앗을 가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천적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암컷들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남성들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차를 그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작고 저렴한 차는 자신도 왜소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여기는 셈이죠. “오빠차 창피해서 못 타겠다”는 말을 들을까 겁을 냅니다. 모닝 사러 갔다가 벤츠 차량을 사는 일도 발생합니다.
반대로 많은 남성들은 이성의 사회적 지위를 상대적으로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모닝을 타든, 벤츠 E클래스를 타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크고 비싼 차를 살 필요성을 덜 느낀다는 뜻입니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포르쉐 카이엔 등 수입 명차 수요를 확산시키는 파노플리 효과도 작고 저렴한 차를 외면하는 현상에 한몫합니다.
파노플리 효과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해 해당 계층에 자신도 속한다고 여기는 현상을 뜻합니다.
상품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하죠. 특정 계층이 구입하는 차를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신분을 아주 낮게 평가받을 싼 차는 피하게 합니다. ‘꿩 대신 닭’을 선택하게 하죠.
한국인들은 작은 차를 타면 무시당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합니다. 무리해서라도 크고 비싸고 좋은 차를 타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동차 카스트가 유별나게 득세하는 이유는 ‘체면 중시’ 문화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프로불편러’ 성향도 불편·불안·불만 ‘3불 경차’ 외면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관련된 질환으로 미국정신의학협회 서적에 ‘hwa-byung’이라고 한국식 표기로 등재되기도 한 ‘화병’도 자동차 카스트를 등장하게 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심하면 화병이 나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화병에 걸리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원인을 찾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계기로 만드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특히 낮은 사람들은 심각하지 않는 화병에 ‘허세’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합니다.
자기만족보다는 과시·과장을 위해 ‘플렉스(flex)’ 소비를 하고 ‘이왕이면 큰 차’를 사게 되죠.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무시하고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는 비굴해지는 경향으로도 변질됩니다. ‘경차에는 빵빵, 포르쉐에는 벌벌’입니다.
한때 오빠·누나차였던 경차를 엄마·아빠가 타는 ‘엄빠차’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욜로족은 나이와 상관없이 미래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합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취미생활, 자기개발 등을 중시합니다.
욜로는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제품이라면 다른 비용을 아껴서라도 지갑을 엽니다.
‘작은 차, 큰 기쁨’을 원하면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차를 삽니다.
대신 디자인·편의·안전에 신경 씁니다. 중형차를 살 돈으로 안전·편의 사양이 풍부한 경차나 소형차를 선택합니다.
20대를 겨냥했던 작은 차에 30~60대가 주머니를 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차 안을 보지 않은 남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는 경차를 운전하며 산동네 봉사활동을 펼치는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국산 중고차를 구입해 타고 다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자기주도 삶을 사는 욜로족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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