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별세…‘이산자’의 치열한 삶 마쳤다
소수자 눈으로 보편 윤리 탐구한 ‘반난민’
재일조선인 2세로서 고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변경인 또는 이산자(디아스포라)로서 한일 양국에 국가주의·식민주의를 넘어서기를 촉구해온 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72.
19일 오후 서경식 교수의 가족은 서 교수가 전날 저녁 일본의 한 온천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서경식의 할아버지는 1928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서경식은 1951년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재일조선인치고는 비교적 가난한 편이 아닌” 집이었던 터라 충분히 교육을 받았던 서경식은 와세다대학에 진학해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 다니던 1971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에서 유학 중이던 그의 두 형 서승, 서준식이 군사정권이 조작한 간첩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되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벌어진다. 서경식은 일본에서 두 형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명 운동을 펼쳤는데, 그의 발언은 필연적으로 고국의 민주화뿐 아니라 전후 일본의 책임 문제 등과도 연관되었다. 이때 그의 구명 운동에는 후지타 쇼조, 와다 하루키 등 일본의 리버럴·좌파 지식인들도 연대했다. 서경식은 일본 사회에서 장기수 가족으로서 ‘길고도 험한 여정: 서씨 형제 옥중의 삶’(1988) 같은 저작으로도 발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서양미술을 탐구하고자 했으나, 재일조선인인 그는 한국 정부가 발급한 여권 없이는 국외에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일본 사회에 갇혀 별다른 희망이나 기약 없이 두 형의 구명 운동을 하다 양친까지 떠나보낸 뒤인 1983년, 뜻밖에도 유럽에 갈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 3개월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온갖 미술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관’한 경험은 그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인도한다. 1991년 일본에서 출간된 ‘서양미술 순례기’는 이듬해 한국에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면서 한일 양국에서 널리 읽히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나 미술평론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틀어 “차별과 박해에 짓눌린 증거, 이것에 저항하다 죽어간 증언”과 마주한 자신의 ‘고통스러운 독백’을 담고 있다.
두 형은 냉전이 끝나고 한국의 민주화에 진전이 있던 1988년, 1990년에야 출옥하는데, 구명 운동을 벌이며 이미 마흔이 다 된 서경식은 일본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다. 1990년대에 서경식은 비평가로서 일본의 보수 우파뿐 아니라, 국가주의에 반대한다는 핑계로 역사적 책임을 소홀히 여기는 리버럴 지식인들의 ‘퇴락’에도 맞서 적극적인 발언을 했다. 재일조선인, 곧 경계에 선 소수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감각으로 출발해 보편적으로 가 닿을 수 있는 윤리를 고민한 그의 발언들은 탈냉전 시기에 되레 국가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빠져들며 차별을 일상화하고 있는 한일 양국에 경종을 울렸다. ‘난민’도 ‘국민’도 아닌 ‘반(半)난민’이라 자처하는 그의 용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사유를 여행 속에 담은 ‘디아스포라 기행’(2006)은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며, 국내에서 디아스포라 개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 서경식의 저작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2006), ‘고뇌의 원근법’(2009), ‘나의 서양음악 순례’(2011), ‘나의 조선미술 순례’(2014),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2017) 등이 있다.
2000년 도쿄경제대학 상근 교수가 된 뒤, 서경식은 무엇보다 ‘예술’을 매개로 삼아 학생들에게 ‘교양’ 교육을 펴는 데 주력해 왔다. 강단에서뿐 아니라 심포지엄이나 전시 등을 통해 스스로 여러 아티스트나 연구자, 활동가들을 잇는 가교가 되고자 했다. 2006년부터는 2년 동안 우리나라 성공회대에서도 연구교수로 일했다. 그는 2021년 정년 퇴임했는데, 퇴임 기념 문집에서 편집자들은 서경식의 이 시기를 ‘교육자·문화 운동의 시대’라 의미 부여한 바 있다. 도쿄경제대학에는 해마다 재일조선인 학생이 서경식의 제자로 입학해 그의 후학으로서 재일조선인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경식은 2005년부터 무려 18년 동안 ‘한겨레’에 꾸준히 칼럼을 썼다. 올해 7월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그는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우리도 승산이 있든 없든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혹한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얼굴을 들고, ‘진실’을 계속 얘기하자. (…) 세계 곳곳에서 천박함이나 비속함과는 거리가 먼, 진실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벗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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