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전쟁”…미 전역으로 번지는 텍사스 ‘게리맨더링’

“이건 전쟁이다.”
미국 텍사스주가 연방 하원 공화당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시도 중인 선거구 재조정, 이른바 ‘게리맨더링’이 전국 대결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주 캐시 호컬 주지사는 4일(현지시각) 연방 하원 선거구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또다른 ‘민주당 주’와 ‘공화당 주’들도 동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컬 주지사는 이날 뉴욕주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발이 묶인 채 싸울 수 없다”며 기존의 독립적이고 비당파적인 선거구 재조정 원칙을 폐기할 뜻을 밝혔다. 그는 “뉴욕은 이 싸움에서 뒤로 빠져 조용히 지켜보는 주가 아니다”며 “이제 정면 승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호컬 주지사는 텍사스를 비롯한 공화당 주들이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선거구를 재조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사실상 의회를 겨냥한 합법적 반란”이라며 “이건 전쟁이다. 공화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규칙을 바꾸려 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달 말 주의회의 특별회기를 소집하고, 연방 하원 선거구 조정안을 주요 의제로 상정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오스틴, 휴스턴, 댈러스 등 대도시권을 분산시켜 공화당 우세 지역과 결합하는 방식의 조정안이다. 해당 안이 통과되면 공화당은 현재 25석을 30석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텍사스주에 배정된 연방 하원 의석수는 38석이다. 공화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국적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텍사스 주하원 150석 중 62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은 개의정족수 100석을 무력화하기 위해 모두 텍사스를 떠난 상태다. 주하원 규정에 따르면 개의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무단 결석 의원을 체포할 수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체포영장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한 것이다.
애벗 주지사는 이날 오후까지 의회에 복귀하지 않으면 이들의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참 의원들에게 텍사스 하원 내규에 따라 하루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도 밝혔다. 일부 의원들이 벌금 납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자 뇌물로 간주해 수사하겠다고도 경고했다. 주하원은 주를 떠난 민주당 의원들을 체포할 수 있도록 하원 경위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안건을 이날 85대 6으로 통과시켰다. 특별 회기가 끝나는 이달 말까지 개의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법안 표결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지만 주지사는 또 한 번 특별 회기를 소집할 수 있다.
공화당의 선거구 조정 움직임에 뉴욕주뿐 아니라 다른 ‘민주당 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맞불을 놓겠다”며 특별 회기를 통한 선거구 조정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텍사스에서 하는 모든 시도는 캘리포니아에서 무력화될 것이며,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 주지사 프리츠커도 “이건 단순히 텍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전역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미주리,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다른 ‘공화당 주’들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조정하는 ‘게리맨더링 경쟁’은 2019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대법원은 “정당 편향적 선거구 재조정 문제는 연방법원의 관할을 벗어난 정치적 사안”이라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한 다수의견은 “연방법 판사들이 양당 간 정치 권력을 재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선거구 편향성이 민주주의 원칙과 어긋나더라도 그 해법은 사법부가 아닌 다른 주체가 찾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판결 기조는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인종 편향적 선거구 조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당시 다수의견을 낸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정치적 게리맨더링이 인종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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