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당신은 끝났어!”…이스라엘 국민 76% “총리 사임해야”
(시사저널=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11월3일 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위기 때마다 정부를 중심으로 결속해 왔던 이스라엘 국민이지만 '누가 앞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에, 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27%의 지지율에 그친 반면 제2 야당 대표 베니 간츠는 49%의 지지율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이스라엘 민심은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와 그의 정당 리쿠드당을 떠나고 있는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짙은 예루살렘의 전통시장 마하네 예후다 상인들의 입에서 최근 들어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Bibi's finished(비비는 끝났어)."
뇌물·배임 재판 중…"면책특권 때문에 총리직·무리한 연정에 집착"
지난해 재선 당시 네타냐후가 한 제일 큰 약속은 '흔들림 없는 안보'였다. 정치권에서는 'Mr. Security'(안보맨)로 불리기까지 했지만 이번 사태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해 보인다.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1400명의 이스라엘 시민이 죽었고 240명의 인질이 한 달이 넘도록 붙들려 있다.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 '신베트'가 이번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프랑스 주간지 '오리앙 XXI'에 따르면 신베트는 하마스 수뇌부가 매일 아침에 어떤 커피 혹은 어떤 차를 마시는지조차 다 알 정도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거수일투족 모니터링한다고 한다.
프랑스 시앙스포 정치대학의 지정학 교수 프레데릭 앙셀은 이스라엘 안보에 공백이 생긴 이유에 대해 '무능한 극우' 인사들을 정부 주요직에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네타냐후가 6번째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헌정 사상 유례없는 우파 연정 덕분이었다. 특히 극우 보수정당들과의 연정으로 권력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네타냐후는 정부 주요직에 '자신의 말에 반대하지 않을' 극우 인사들을 배치했다.
지난 3월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 철회를 요구하자 바로 경질시킨 게 단적인 예다. 이에 이스라엘 현역 군인과 예비역까지 사법 개혁 철회 시위에 참여하면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지난 4월 결국 해임을 연기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 여당 인사는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네타냐후가 지난 2년간 했던 사법 개혁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나쁜 결정들"이었다고 자신의 당대표를 맹비난했다. 여당인 리쿠드당 내부에서조차 네타냐후를 둘러싼 분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함을 보여준다. 앙셀 교수는 네타냐후가 무리한 연정을 이어가면서도 정권을 쥐려고 하는 이유를 면책특권 때문이라고 보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재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직까지 직접 나서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하아레츠는 최근 기사를 통해 "네타냐후 자신은 책임을 회피한 채 군 수뇌부와 군사 정보국, 신베트 보안국에 책임을 전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쿠드당 출신 한 장관은 하아레츠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네타냐후의 꼬인 생각을 잘 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번 일을 면밀히 검토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권력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인터넷 X(옛 트위트) 계정을 통해 이집트로부터 어떠한 경고도 받지 못했고 군과 정보기관들로부터 하마스가 '억제'되어 있어 임박한 보안 위협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책임을 군에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이집트가 하마스 공격 3일 전에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심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지도자에게서 이미 마음이 떠난 듯하다.
지난 10월 환경부 장관 이디트 실만이 부상자들을 만나러 한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관계자가 "당신들이 이 나라를 망쳤어! 여기서 떠나라!"라며 장관을 쫓아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경제부 장관 니르 바르카트도 텔아비브에 위치한 한 병원을 방문하던 중 피해자 가족들에게서 "당신들이 어떤 상황을 초래했는지 이해하라"는 호통을 듣는 장면이 SNS를 통해 전파됐다. 들끓어 오르는 분위기 때문인지 피해자들의 장례에 네타냐후 총리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전시 상황임에도 이스라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 공권력이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11월4일 토요일 이스라엘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하아레츠에 따르면 시위대는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와라" "총리, 당신은 10월7일 우리를 포기했지만 인질들까지 포기하게 하지 않겠다" "지금 감옥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쟁 중단 등을 요구했다.
현지 전문가 "네타냐후 회생 가능성 제로"
같은 시간, 예루살렘에 있는 네타냐후 총리 관저 앞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경찰이 무력으로 해산시켰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해 왔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책임을 꼭 묻겠다는 정치권의 입장과는 다르게 시민들은 벌써 네타냐후의 구속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11월4일 이스라엘 지상파 방송 '13 채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 76%는 네타냐후가 총리직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언론 '플러스972 매거진'은 현재 전쟁을 비판하는 시민들에게 폭력과 탄압이 가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고 논평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치 전문가들은 네타냐후의 회생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보고 있다. 이스라엘 바르일란대학의 정치학 교수 토비 그린은 "현 정부 지지율은 10월7일 이전에도 고갈됐고 전쟁 발발 이후 더 폭락했다. 지금 선거가 치러진다면 크게 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앙셀 교수도 과거 안보 공백이 생길 때마다 이스라엘의 총리들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 이후 이스라엘 사회가 예전과 똑같을 순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네타냐후 사법 개혁에 대한 반대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조쉬 드릴은 "전쟁이 끝나면 우리 모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16년이라는 기나긴 네타냐후 통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은 파리 이날코대학에서 아랍·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현재 파리 팡테온 소르본1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에 재학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교환학생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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