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98] 햇빛 냄새 나는 빨래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9.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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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와이어스, 가벼운 빨래, 1961년, 종이에 수채, 76.8×55.8㎝, 미국 잭슨빌 커머 미술관 소장.

맑고 쨍한 가을 햇볕에 옥양목 이불을 널어 말리면 며칠 동안 잠자리에서 햇빛 냄새가 났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1917~2009)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도 틀림없이 태양 아래 바싹 말린 이불의 냄새와 촉감을 떠올렸을 것이다. 초목이 짙푸른 늦여름, 해가 좋은 날 빨래 한 바구니를 널어 두자, 기다렸다는 듯 그 아래서 개가 잠들었다. 가벼운 바람에 빨래가 퍼덕이고, 따뜻한 햇살에 달궈진 비누 냄새가 주위로 퍼지면,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도 쉽게 잠이 들 것이다. 화가가 붙인 제목은 ‘라이트 워시(Light Wash),’ 즉 ‘가벼운 빨래’라는 뜻이지만, 빨래의 완벽한 마무리로 ‘빛’을 생각해 붙인 제목일 게다.

그의 아버지는 당대 미국 최고의 삽화가로 ‘보물섬’을 비롯한 수많은 베스트셀러의 표지화와 삽화를 도맡았던 N. C. 와이어스다. 그의 다섯 자녀는 모두 예술인으로 성장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건 막내 앤드루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앤드루는 병약했던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그 덕에 아버지의 유일한 학생이 됐다. 물론 앤드루에게도 선생은 평생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는 아들 와이어스에게 예술가로서 작품 밖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예술을 향한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는 창작 안에만 머물러야지, 이후의 성공까지 바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사실적인 앤드루의 회화는 추상화를 높이 사던 평론가들 눈에 늘 이류였다. 그럼에도 와이어스는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을 탐한 적 없고 고향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풍경화에는 같은 곳을 아끼며 오래 본 사람만 그릴 수 있는 깊은 감정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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