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휴대폰 속 보고 '덜덜'... 대통령님, 이거 정상 아닙니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2023. 9.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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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중국의 7나노 반도체 개발의 의미... 그리고 우리의 대책

[이봉렬 기자]

 지난 8월 31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화웨이 매장의 대형 스크린이 신규 프리미엄 스마트폰 mate 60을 광고하고 있는 모습. mate 60 pro는 중국 SMIC가 7나노미터 공정으로 자체 생산한 반도체가 사용됐다고 해서 이슈가 됐다.
ⓒ 연합뉴스/EPA
지난달 29일, 중국 화웨이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해당 제품은 중국 SMIC가 7나노미터 공정으로 자체 생산한 반도체가 사용됐다고 해서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이제까지는 중국의 반도체 미세화 기술 수준이 14나노 정도라고 알고 있었고, 미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도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반도체의 경우 14나노 이하에 대해서만 이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회사가 7나노 공정을 사용한 반도체로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으니, 미국의 규제와 상관없이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게 아닌가 하고 다들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통령님께 SMIC가 개발에 성공한 7나노 공정 반도체가 뭔지,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 출시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7나노 공정에 7나노짜리 회선은 없다

일단 7나노 공정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부터 설명하겠습니다. 7나노미터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언론은 "반도체 속 미세 회로의 선폭이 7나노미터"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반도체 속 그 수많은 미세 회로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까요? 기술적인 내용은 빼고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면 반도체는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작은 칩 위에 집적한 것인데, 그 개별 트랜지스터의 기본 구성이 소스, 드레인, 게이트입니다. 여기서 게이트의 최소 선폭을 기준으로 공정의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 7나노 공정으로 개발한 SMIC 칩을 열어 봐도 게이트의 선폭이 7나노가 아닐 겁니다. 실제 선폭은 이보다 더 큽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제품 개발 시 사용하는 '14나노, 10나노, 7나노…' 모두 마케팅 용어일 뿐이니까요. 이런 오해 때문에 인텔 같은 경우는 자사의 공정 명칭에서 나노미터를 아예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냥 "인텔 7"이 되는 거죠.

반도체 업계에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의 주장으로 반도체의 성능이 약 2년마다 2배씩 좋아진다는 겁니다. 반도체의 성능이란 결국 같은 면적에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느냐 하는 건데, 트랜지스터를 2배 더 넣으려면 선폭을 약 30% 정도 줄이면 됩니다.

그래서 국제반도체로드맵(ITRS)은 반도체 공정이 전 세대 대비 30%씩 계속 줄어드는 걸 기준으로 이름을 지어 놨습니다. 그래서 14나노 다음이 10나노가 되고 10나노 다음이 7나노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선폭을 줄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성능이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재를 바꾸거나 3D 설계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 선폭이 30% 줄지 않아도 성능이 두 배로 향상되면 10나노급, 7나노급이라고 해서 발표를 하는 겁니다.

SMIC의 7나노 공정 반도체 역시 실제 회선 폭이 7나노라는 게 아니라, 타사의 7나노 공정 반도체와 비슷한 성능의 반도체라는 의미입니다. 2018년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 XS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고 합니다. 이번에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 15가 TSMC의 3나노 공정을 이용한다고 하니 두 세대 이상 뒤떨어진 기술입니다.

중국의 7나노 반도체 개발의 의미
 
 ASML EUV 노광장비. 간단해 보이는 이 장비 한대 가격이 2천억원이 넘습니다.
ⓒ ASML
 
그러면 왜 SMIC의 7나노 반도체 개발에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그건 14나노 수준에서 중국의 반도체 개발을 멈추게 하려고 했던 미국의 각종 규제가 의미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10나노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적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네덜란드 회사인 ASML에게 EUV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ASML의 EUV 장비 없이도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한 것입니다.

반도체의 여러 공정 중 핵심은 반도체 회선을 웨이퍼에 그리는 노광 공정입니다. 노광 공정의 발전이 곧 반도체 회로의 미세화와 직결됩니다. EUV와 DUV 모두 노광장비인데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이용하는 EUV 장비가 훨씬 더 정밀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심자외선을 사용하는 DUV 장비는 ASML과 니콘 등 몇몇 회사에서 생산을 하고 있지만, EUV 장비는 현재 ASML만 생산이 가능합니다. 언론들은 SMIC가 ASML의 EUV 장비를 몰래 들여와서 사용했을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ASML의 EUV 장비는 대당 가격이 2천억 원대인데도 없어서 못 팔고 있습니다. ASML의 연간 생산 대수는 30대 수준으로 지금까지 생산한 EUV 장비는 모두 이력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설령 장비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더라도 ASML의 기술 협력 없이는 설치 및 관리, 교정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EUV 장비 없이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DUV 노광장비를 이용하면 됩니다. EUV 장비로 한 번에 작업할 걸, DUV 장비로 여러 번으로 나눠 작업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미세 회로 구현이 가능합니다. 이를 멀티 패터닝이라고 부르고 실제로 EUV 장비 도입 이전에는 이 방식을 많이 썼습니다. TSMC의 7나노 초기 제품 역시 DUV 장비로 멀티 패터닝 하여 생산한 것입니다.

기존에 없던 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이지만 EUV 등장 이후 가성비 때문에 대체되었던 기술을 어쩔 수 없이 이용한 것일 뿐입니다. (7나노 제품 안에서도 특정 레이어만 EUV를 쓰고, 선폭이 넓은 레이어는 DUV를 씁니다) 동일 조건에서 EUV 대신 DUV를 사용하면 노광 공정의 횟수가 두 배에서 네 배까지 늘어납니다.

이때 노광 공정뿐만 아니라 전후의 증착과 식각 공정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비용이 크게 증가합니다. 공정이 추가될수록 불량률은 높아지고 생산성은 떨어지기 마련이기에 결과적으로 타사 대비 가격 및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DUV와 EUV의 공정 진행 방식 차이. EUV는 한 레이어를 한번의 작업으로 끝낼 수가 있습니다.
ⓒ 삼성전자
 
그래서 이번 SMIC의 7나노 반도체 양산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국 내에서 필요한 제품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공급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추가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자급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휴대폰이지만 중국이 인공지능이나 군사용으로 필요한 첨단 반도체를 해당 기술로 생산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입니다.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SMIC가 7나노 공정을 이용해서 반도체를 생산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해 7월, SMIC는 이미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장비업체인 마이너바 반도체에 비트코인 채굴 시스템온칩(SoC)을 공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언론 보도만 있었고 제품이 실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미중 반도체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의 선택은?
 
 중국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C2F 공장 전경
ⓒ SK 하이닉스
  
이번에 발표된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가 사용된 걸로 알려지면서 우리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도 고민해 봐야 합니다. 미국은 지난 2020년부터 미국 기술을 사용 중인 기업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SK 하이닉스가 미국 규제를 무시하고 직접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실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제품으로 근처 전자상가에만 가도 살 수 있습니다. 반도체 중간도매상 또는 중국 내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를 통해 화웨이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SK하이닉스는 자사 제품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대통령님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자사의 제품이 중국 휴대폰에 사용됐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미국 정부에 신고를 하고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현 상황을 바꾸는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투고, 반도체 등 특정 제품을 두고 규제를 주고받는 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미국의 기술이 중국에 의해 쓰이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생산한 반도체 완제품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까지 일일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건 명백한 주권 침해에 해당됩니다.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생산 물량은 낸드플래시 20%, D램 40%에 이릅니다. 수조 원을 투자해서 중국에 지어 놓은 우리의 반도체 공장들이 미국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금 상황은 어떻게든 바꿔야 합니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미국 내 반도체 산업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가져오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미 투자한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미국의 규제 예외를 보장받고,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도 전면 폐지하라는 요구를 해야 합니다. 이게 대통령님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중국의 휴대폰에서 우리 기업의 반도체가 발견됐다고 온 나라가 미국의 제재를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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