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부자가 미국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9. 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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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통치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재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감산을 통해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그들의 전술이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지난 6월 이후 25% 상승한 유가는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가 다시 감산을 동시에 연장하면서 배럴당 9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FT는 유가를 올리려는 사우디의 움직임은 미국과 상당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유라시아 그룹의 분석가인 라드 알카디리는 "지금 워싱턴에는 사우디의 친구가 많지 않다"며 "워싱턴이 석유 가격이 높거나 경제가 둔화되는 것에 대해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건 사우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존심 내린 바이든, 뒤통수 친 빈살만
오일시추
사우디의 감산은 사실 바이든의 노력을 정면으로 배신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양국관계가 냉각된 가운데서도 먼저 사우디를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전까지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납치 및 피살한 배후에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계가 틀어졌지만 경제살리기를 위해 왕족과의 대면을 거부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 빈살만은 냉담하게 요청을 거부했고, 이번에는 러시아와 연합해 감산 조치를 연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삭감 연장은 백악관이 국내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는데 미국 내에서는 이제 막 '바이드노믹스'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홍보하던 찰나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러시아를 비롯한 오펙 플러스(OPEC PLUS)의 긴축강화로 연말까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간신히 잡아놓은 인플레이션이 유가에 의해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이 추가로 상승하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경제를 냉각시키기 위해 올해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연준 "금리 추가인상 가능"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방 준비 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 있는 하원 금융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을 2%로 다시 낮추기 위한 과정은 갈 길이 멀다"고 밝히고 있다. 2023.06.22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UBS 이코노미스트이자 전 연준 직원이던 앨런 디트마이스터는 "휘발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다음 주 발표될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상당히 큰 상승을 보일 것"이라며 "10월에 발표될 9월 데이터도 어쩌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PI 기준 현재 3.2% 수준인 물가가 9월에는 4%대로 쉽게 다시 솟아오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재선을 막아설 공화당은 이미 민주당이 석유생산량보다는 기후정책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뉴스맥스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사람들을 파괴하기 위해 환경을 이용하고 있다"며 "나는 채굴을 할 것이고 그건 에너지 가격을 훨씬 낮추게 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바이든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격히 뛰자 전략비축유를 풀고, 셰일업체들에 증산을 요청해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최근 비축량은 198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셰일 증산은 더 어렵게 됐다. 바이든은 이 상황에서 최근 트럼프가 열어둔 알래스카 청정지역의 시추 및 탐사 개발을 영구적으로 중단시켰다.
트럼프 "나는 채굴할 것이다"
(애틀랜타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출두한 뒤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을 만나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안다”고 밝히고 있다. 2023.8.25.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바이든을 외면한 빈살만은 러시아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유가가 이미 80달러대 후반으로 충분히 상승한 상황에서 다시 감산을 단행한 것은 미국과 바이든에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치적 파트너로 바이든보다는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추측도 나온다.

특히 빈살만 왕세자는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네옴시티 건설과 축구, 골프 등 스포츠산업에서의 영향력 확대, 비전 2030 프로젝트 등 자신이 만든 정책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백악관은 사우디의 감산 조치에 전과는 다른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 바이든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G20에서 빈살만을 만날 수도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회담은 마련되지 않았다.

워싱턴 클리어뷰 에너지 파트너스의 케빈 북은 "양자가 이번에는 장기적인 게임을 하고 있으며 미국-사우디 관계를 단순한 에너지 공급 관계 이상으로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배럴당 90달러보다는 120달러일때 진척이 빠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 이외에도 미국의 군사지원과 민간 핵 프로그램 지원 등을 원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의 캐런 영은 "사우디가 현재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미국 행정부는 이제 선거 주기로 접어들고 있어 사우디는 더 많은 카드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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