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건 수의계약’ 누구의 회사입니까?…답변 거부한 군의원 [주말엔]
경남 의령군 한 민간 공원묘역에는 거대한 건설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토양 성분 검사 결과, 5가지 중금속이 오염 우려 기준치를 초과했고,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까지 검출됐습니다. 인근에 식수원인 낙동강이 있어 2차 오염이 우려됐고, 신속한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환경단체의 기자회견이 잇따랐습니다. 경남경찰청은 이곳에 폐기물을 반입한 '00환경'을 '폐기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
■ 군의회 행정사무조사가 권리 남용?
원상 복구가 지지부진하자, 지난 2월 의령군의회가 행정사무조사를 추진했습니다. 이때 한 군의원이 행정사무조사에 강하게 반대하며 회의장을 퇴장합니다.
"의회가 얼마나 불신을 안고 있습니까. 행정사무감사에 관한 조례가 왜 있겠습니까. 의회의 과도한 권리남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척 사유도 없지만, 퇴장하겠습니다."
국민의힘 3선 김봉남 군의원은 정말로 '제척 사유'가 없을까?
알고 봤더니, 이 공원묘원에 폐기물을 반입한 '00환경'의 실 소유주는 김 의원 남편 A씨였습니다.
김 의원 남편은 이 회사 지분 49%를 가진 최대주주였고, 김 의원의 친동생도 이 회사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김 의원의 친오빠는 2015년 회사 설립 때부터 올해 2월까지, 약 8년 동안 이 회사 등기 이사로 재직했습니다.
군의원이 자신의 '가족 회사'에 대한 행정사무조사를 반대한 겁니다.
■ 남편 회사에서 '법인차' 제공 받은 군의원
김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김 의원은 자신의 남편이 실소유한 ‘00환경’ 업무용 법인차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의정활동에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내가 남편 회사 법인차를 이용한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김 의원이 '일반인'이 아닌 '정치인'이라는 겁니다. 정치인이 법인차를 제공받는 건 일종의 기부 행위로, 정치자금법은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이 음성적으로 법인 이권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취지입니다.
■ 8년 동안 수의계약 370건…'이해충돌' 논란
해당 업체가 의령군과 맺은 수의계약 현황을 확인해 봤습니다.
김 의원 당선 이듬해인 2015년 설립된 '00환경'이 8년 동안 의령군으로부터 따낸 공사와 용역 수의계약은 370건, 액수로는 35억 원을 넘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관내 업체 위주로 수의계약을 줬다는 게 일부 발주 부서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까?
지방계약법에는 지방의회 의원의 배우자가 대표인 경우, 수의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00환경'의 등기부등본상 대표는 김 의원의 남편 A씨가 아닙니다. 회사 직원 B씨가 대표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굳이 배우자가 대표가 아니더라도,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지분율이 합쳐서 50% 이상이더라도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2021년 기준, 김 의원 남편 A씨의 지분은 49%입니다. 단 1% 차이로 수의계약 제재를 피해간 겁니다.
남편 A씨 외에 김 의원 친동생이 가진 지분 40%까지 합치면 전체 지분율은 89%로 50%를 넘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제재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친동생은 수의계약 제재 대상이 되는 '직계 존비속'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시행된 이해충돌방지법은 수의계약 제재 지분율 기준을 대폭 상향했습니다. 배우자 지분이 30%만 넘어도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법이 시행된 지난해 5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의령군과 20여 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액수로는 3억 원 대입니다.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뒤 이 회사 지분 관계가 변동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남편 A씨 지분율을 기존 49%에서 30% 이하로 낮췄을 가능성입니다. 이 경우, '꼼수'라는 비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위법'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분율에 대한 정보가 나와야 하는데, 비상장 회사는 상장 회사와 달리 '주식이동 변동'을 일반인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가진 비상장회사 지분율은 매년 공개하는 '재산공개' 내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의 경우, '재산공개' 내역에 '00환경' 지분에 관한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수의계약 체결 전 배우자 지분 30% 이상이 되는 지 묻는 '수의계약 체결 제한 확인서'에도 해당 업체는 "아니오"라고 표시했습니다.
제기된 의혹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해명을 반드시 들어야만 했습니다.
■ 궁도장까지 따라간 취재진…김 의원은 답변 거부
취재진은 정치자금법과 이해충돌방지법·재산공개 누락 등 김봉남 의원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김 의원과 남편 A씨·회사 대표 등에게 수십여 차례 전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취재 내용을 알리고, 반론을 듣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취재진임을 밝히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그 이후로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김 의원이 의령의 한 궁도장에서 열린 지역 행사에 참석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궁도장을 찾았습니다. 취재진의 신분을 밝히자마자 김 의원은 취재진을 피해 밖으로 나갔고,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선출직 공직자로서 다분히 실망스러운 처신이었습니다.
KBS 보도 직후 행정안전부는 지난 2일부터 경남 의령군에 대한 복무감찰 현장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370여 건의 수의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의령군 공무원들의 묵인이 있었는 지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령군과 읍면 단위 전·현직 계약 담당 공무원들을 차례로 불러, '00환경'과 김 의원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는 지를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KBS 보도 뒤 의령군 역시 해당 업체를 상대로 김 의원 배우자가 가진 지분율에 대한 공식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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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kantap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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