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중 교수가 남긴 마지막 말 “환자 상태 좋아져 안 피곤해요”
병원의 응급 호출은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도 허락하지 않았다. 잠깐의 짬이라도 나면 같이 수저를 들 수 있을까 싶어 병원 바로 옆에 잡은 음식점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호흡은 의사의 저녁 식사를 배려할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의사는 가족들의 접시가 다 비워질 때까지 음식점에 도착하지 못했다. 수술방은 16일 오전 3시에야 닫혔다
쪽잠을 자고 일어난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이날 출근길에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이 주 교수와 자전거를 삼켰다. 사고 장소도 서울아산병원 바로 앞 아파트 교차로였다. 주 교수가 과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환자 상태가 좋아져 기분이 좋다”는 말이었다.
18일 오전 9시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주 교수의 빈소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주 교수의 동료, 제자들뿐만 아니라 주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장례식장 대표번호로 환자들이 조문할 수 있는지를 아침부터 물어왔다”면서 “유족의 허락하에 여러 환자가 이미 조문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주 교수와 안면이 없었던 일반 시민도 부의금을 유족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가 주 교수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한 시민은 유족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어머님 보호자로서 선생님이 해주신 일에 너무 감사드리고 있다”면서 “선생님이 열심히 수많은 환자를 위해 걸어오신 길을 기억하면서 힘내시라”고 유족을 위로했다. 이어 “저희도 선생님이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안히 영면하시길 기도하겠다”고 했다.
유족은 주 교수를 “환자와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주 교수의 조카 A씨(32)는 “가능성이 작고 어려운 응급수술을 도맡아 하셨었다”면서 “이모부가 환자 손을 잡고 밤새워 기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빵 굽는 게 취미셨는데, 만드신 빵을 맛있게 먹으면 엄청 좋아하셨다”며 “술도, 골프도 안 하고 오직 가족과 환자가 전부셨던 분”이라고 했다. A씨의 언니 B씨(35)도 “가족들이 모이면 필름 사진으로 가족사진을 찍어 나눠주셨다”고 회고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주 교수의 환자들이 쓴 추모글이 이어지고 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엄마의 심장 인공판막 수술을 맡아주셨던 교수님의 사망소식에 가슴이 미어진다. 환자의 고통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셨던 분” “나의 목숨을 살려줬던 은인” “수술을 두려워하던 제게 많은 격려와 힘을 주셨던 분” 등의 글이 게시됐다.
198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주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했고, 1998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 근무를 시작했다.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같은 해 하버드 의대 버밍엄 여성병원 심장외과 임상 전임의를 거쳤다.
울산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이기도 한 그는 병원 근처에 거주하며 24시간 대기해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수술실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부터 대동맥질환 전담팀을 꾸려 치료한 후 수술 성공률을 98%까지 높였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주 교수의 발인은 20일이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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