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삽살개가 멸종 위기에 처했던 까닭
[김종성 기자]
일제강점기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동식물에게도 수난기였다. 식민 치하에서 한국 땅은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원료 공급지 및 상품 소비지, 더 나아가 병참기지로 전락했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인간과 동식물 전체가 그런 목적을 위해 도구화됐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땅을 얼마나 마음대로 착취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동남아 사례다. 서구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곳을 고무 생산지로 둔갑시킨 일은 제국주의의 대표적 폐해에 속한다.
캄보디아 주재 호주대사관에서도 근무하고 캄보디아에서 유엔 고문으로도 활동한 밀턴 오스본(Milton Osbrne) 동남아연구소장의 <동남아시아 입문사(Southeast Asia: an Introductory History)>는 동남아를 고무 생산기지로 뒤바꾼 일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어로 <한 권에 담은 동남아시아 역사>로 번역된 이 책은 "말레이반도·자바·수마트라·베트남·캄보디아 등의 광활한 지역들이 고무 재배를 위해 개간되었다"라며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변형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고무나무가 심겨진 이 지역들의 많은 곳들은 그 이전에는 개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18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서말레이시아(반도 지역 말레이시아)에서는 고무 플랜테이션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형태의 야생고무를 이용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 고무 플랜테이션은 모든 경작지 면적의 근 65%를 차지하며, 농업 노동력의 1/3이 고무 플랜테이션 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고무 산업과 관련이 없었던 지역이었다. 그런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간이 고무 재배에 최적화되는 쪽으로 강제 개조됐다. 이 때문에 1970년대까지도 고무농장 경영에 사용되는 토지가 65% 가까이나 됐다. 그런 경영으로 인한 이윤이 현지인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제국주의 기업과 외국 정부 쪽으로 넘어갔음은 물론이다.
제국주의 일본도 자신들의 경제적 필요에 맞게 한국 경제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일례로, 군산을 통해서는 쌀을 착취하고 목포를 통해서는 면화를 착취했다. 이것도 모자라 한반도를 대륙 침략 병참기지로 전락시켰다. 한국인들의 노동력은 그런 쪽으로 활용됐고 자연환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 tvN <구미호뎐 1938> 한 장면. |
ⓒ tvN |
그 속에서 한국의 토종개들도 수난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사극 <구미호뎐 1938>에서 언급됐다. 신과 동물들이 인간으로 변신해 한데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제5회(5월 20일) 방송이 10분쯤 흘렀을 때였다. 토종개였다가 인간 경호원으로 변신한 유재유(한건유 분)가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재유는 자신이 모시는 전직 산신인 류홍주(김소연 분)가 열차 식당칸에서 술을 권하며 "안 힘드니? 내 밑에서 일하는 거?"라고 말하자,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한옥 주택가 골목길에 진돗개가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고, 화려한 양장 차림으로 지나가던 류홍주가 잠시 멈춰 진돗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유재유는 이렇게 말했다.
"벌써 17년 전이네요. 사장님을 만난 게.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일본 순사들 몽둥이에 맞아 죽었을 겁니다. 야견 박살령으로 지금도 수많은 토종개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식민지 한국인들은 위안부·징용·징병 등의 명목으로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됐다. 한국 동물들도 이런 수난을 겪었다. 이들 역시 침략전쟁에 나선 일본 군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줘야 했다.
<구미호뎐 1938>의 시대적 배경인 1938년 그해에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는 '털짐승 공포 시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 동물들의 수난을 보도했다. 그해 1월 19일자 <동아일보> '털짐승 공포 시대! 군용 모피 대량 수요'는 군용 모피의 수요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털짐승의 공포시대가 또다시 출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개·토끼·산토끼·산고양이·고양이·양의 모피가 전 조선적으로 공출되게 되엇는데, 경기도에서도 상당한 책임 매수가 잇으므로 각 군에 그 배당 매수의 공출방을 통첩하는 일방, 도농회에서는 특히'모피 제조의 표지'를 인쇄하야 관서와 각 단체에 배부, 공출을 장려하기로 되엇다."
▲ tvN <구미호뎐 1938> 한 장면. |
ⓒ tvN |
2년 뒤에 발행된 1940년 8월 2일자 <조선일보> 5면 하단에서는 함경남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는 "개는 먹어도 가죽은 먹지 말고서 가죽대로 팔라!"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런 뒤, 함경남도 식민당국에서 나온 소식이라면서 "가죽을 활용하기 위하야서는 개는 고기만 먹고 가죽은 그냥 벗겨 피혁으로 공출시킬 방도를 취하여야 하겟다는 것이다", "도 당국에서 이가튼 귀한 자원을 식용보담도 피혁으로 살닐터로 금후 개는 반드시 가죽을 벗겨낼 것을 전제로 먹기끔 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개를 피혁으로 활용할 터이니 반드시 가죽을 벗겨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멸종위기 처했던 삽살개
이 같은 동물 학대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개였다. 개를 죽이기 위한 전문 기관이 있었을 정도다. 1994년 1월 1일자 <경향신문> "94 '개의 해' 우리 토종견 민족과 함께 달려온 용맹·끈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고유의 개들은 일제시대 모진 수난을 겪었다. 1940년을 전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피혁 및 모피를 군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를 설립, 도견부를 설치하여 등록된 진돗개를 제외하곤 모조리 때려잡았다. 이때 1년에 1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까지 떼죽음을 당해 우리 고유의 개들은 급속히 줄어들게 됐다."
이 같은 일제의 정책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품종이었던 삽살개를 멸종 직전까지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개는 털이 복슬복술한데 이것이 이들의 운명에 악영향을 끼쳤다.
삽살개를 보존하기 위한 하성진·하지홍·하지윤·김화식·탁연빈 교수의 활동과 연구를 소개한 위 기사는 "삽사리는 신라 김유신 장군이 즐겨 데리고 다녔다는 일화가 기록에 나올 정도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러져 조선시대에 와서는 '개' 하면 곧 삽사리로 통용될 정도로 아주 흔한 개였다"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던 삽사리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만주 관동군의 방한복·방한모 등의 재료로 쓰기 위해 도견부라는 특별 기구까지 설치, 연간 50만 마리 이상을 무차별 도살하는 바람에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인 못지않게 한국 동식물도 일제강점기에 지독한 고난을 겪었다. 어느 시대나 동식물은 인간으로 인해 수난을 겪지만, 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특히 심했다.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한이 한국인들의 가슴에만 응어리져 있는 게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이 땅 전체에 서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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