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뒤엔 풍납토성 가이드 해보고 싶어"
[한국의 전문기자] (15)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미디어오늘 정은경 기자] 그의 기사는 어렵다. "세종 때 능엄경 초각본 완질이 공개됐다"거나 "현종·숙종시대 '승정원사초'가 완간 됐다"는 식의 기사는 일상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문장 곳곳에 한자가 모래알처럼 박혀 있어 기사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 때로 '아는 사람들만의 기사'도 필요하다고 믿는 기자가 있다. 연합뉴스 김태식(40·사진) 문화재 전문기자다.
▲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 ||
"전문가의 입을 빌려 중·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평이하게 전달하는 일이 기자의 몫"이라고 선배들은 세뇌교육을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취재원만큼은 몰라도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망신당하지 않을 만큼은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학술이나 문화재 기사를 중·고등학생이 읽을 거라는 생각은 기자들의 오만이라고 봐요. 분야에 따라선 보편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단 한 사람이 읽을 기사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문화재 취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지난 98년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맡지 않겠다던 학술·문화재 분야를 자원했다. 그 출발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됐는지에 대한 소박한 궁금증이었다. 그는 이것을 '골동품적 취미'라고 표현한다.
뭐니뭐니해도 그의 전공은 풍납토성이다. 지난 99년 그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막 발굴되기 시작한 초기백제 시대 성곽인 풍납토성 보존운동에 '투신'했다. 그의 무기는 당연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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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로부터, 지역 주민들로부터 테러 위협까지 당해가며 100여건의 기사를 쏟아낸 결과 이 곳이 부분적으로나마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2001년 2월에는 보존운동 증언집 <풍납토성>(김영사)을 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트레이트 기사에 개인 관을 넣었으니 기사에 맹점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그 기사들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적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신념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그는 "언제까지 기자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퇴임 후에는 풍납토성 가이드를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무보수로 말이다.
■ 문화재 전문기자 누가 있나
문화재 담당 기자들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고 예용해 선생을 입 모아 이야기한다. 예 선생은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전국의 '인간문화재'를 신문에 소개하는 한편 이를 제도화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문화재 위원으로 있으면서 모은 문화재 중 290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후배들이 엮어 만든 '예용해 전집 6권'이 있다.
이밖에 경향신문,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을 거친 이구열 기자(현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 조선일보 고 서희건 기자 등이 전설로 남아 있다. 이구열 소장의 <한국 문화재 수난사>(돌베개)는 아직까지도 문화재 담당 기자들의 참고서가 되고 있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현직 기자들로는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를 포함해 조선일보 신형준, 문화일보 최영창, 한겨레 노형석 기자가 문화재 전문기자로 꼽힌다.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는 현재 노조위원장으로, 경향신문에서 일했던 최정훈 기자는 현재 미디어다음 미디어본부장으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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