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집도 가압류될 수 있다"... 정문에 철조망 친 대구 아파트
주인 못 찾은 주택 6만 가구 넘어
건설사, 할인 분양 등 살길 찾지만
기분양자, 물리력 동원에 소송까지
당신의 집도 가압류될 수 있습니다.
16일 찾아간 대구 수성구 시지라온프라이빗 아파트.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 곳곳에 붉고 노란 경고문이 내걸렸다. '경축 가압류 승인' '가압류된 분쟁 중인 아파트입니다' 등 정문부터 놀이터, 지하주차장까지 눈길 닿는 곳이라면 어김없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입주민이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시행·시공사 등 사업자가 미분양 물량을 1억 원 가까이 할인해 분양하자 입주민 일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맞섰다. 비대위는 시행사 상대로 분양대금 일부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건설사가 손 털고 빠지는 상황’을 막으려 미분양 물량 일부에 가압류를 걸었다. 비대위는 법원이 12일 담보제공명령을 내렸다며 사실상 가압류가 승인됐다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계약 조건이 변경되면 소급 적용한다’는 계약 특약을 사업자가 이행하라는 주장이다. 비대위에는 입주자 100가구 중 초기에 계약한 24가구가 참여했다. 이들은 7억 원대에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나 나머지는 추가 할인을 받았고 현재 분양가는 6억 원대 초중반이다. 아직도 전체 207가구 중 80여 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비대위 대표 이모(40대)씨는 “지난해 8월 사업자와 환급액과 지급 시기를 확정한 합의서를 완성했는데 담당자들이 바뀌더니 갑자기 도장을 못 찍겠다더라”며 “계약과 합의까지 두 번이나 속으니 입주자가 화날 수밖에 없다”고 억울해했다.
비수도권 건설사 올해만 7곳 부도
지방 건설업계가 미분양 덫에 빠졌다.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전국 미분양 주택이 6만여 가구를 넘어섰고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구조조정(CR) 리츠(부동산투자회사)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면 세금을 깎아 주는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사이 입주민과 건설사, 입주민과 입주민 사이의 갈등은 형사소송으로까지 번졌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6만4,874가구에 달한다. 1년 전보다는 1만564가구(16%) 줄었지만 그간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세에 신규 공급이 위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상당하다. 무엇보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같은 기간 8,554가구에서 1만1,867가구로 38% 늘었다. 미분양 주택의 81%가량이 비수도권에 집중됐고 이 가운데 18%(9,927가구)가 대구에 몰렸다.
이는 대구에 주택 공급이 집중된 결과다. 지난해 대구에서 지어진 아파트는 총 594동(국토부 인허가 통계)으로 전국에서 경기(1,842동) 다음으로 많았다. 대구시가 지난해 2월 미분양을 줄이려고 신규 아파트 인허가를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앞서 인허가된 물량이 많다 보니 2020년부터 올해까지 대구는 5년 연속 아파트 입주물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 과잉 지역이다. 이렇다 보니 미분양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데, 업계에선 이 같은 현상이 다른 지역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비수도권·중소 건설사는 자금줄이 말랐다.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사업비의 10%만 투입하고 금융권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따내는 배경에 시공사의 책임준공 약정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준공 약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준공한다’는 약속이다. 시행사가 분양에 실패해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해도 건설사는 준공을 책임져야 한다. 이를 어기면 시행사와 함께 PF 대출을 상환할 수도 있다.
시지라온프라이빗이 그 전형이다. 비대위와 시공사에 따르면 시행수탁사인 한국토지신탁에 시행을 위탁한 개발업체는 파행 운영 상태다. 결국 시공사가 공사비와 대여금 400억 원가량을 회수하려고 분양대행사를 고용해 미분양 털어내기에 착수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건설 불경기에 회사가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영업하려고 허리띠를 졸라맸다”며 “해당 사업장의 분양이 원만히 진행돼 수익이 발생하면 입주자들에게 환급액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수도권에서는 건설사 부도가 잇따랐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부도난 건설사(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 건설업체)는 모두 9곳으로 2019년(15곳) 이후 가장 많았다. 모두 전문건설사로 9곳 중 7곳이 비수도권 업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부도난 건설사는 3곳이었다.
주민 대 주민 다툼으로
미분양이 지역사회 갈등으로 비화한 곳도 있다. 올 초 입주한 대구 동구 호반써밋이스텔라 아파트는 상당수 가구가 창문에 ‘할인분양 결사 반대 입주 금지’ 현수막을 걸었다. 시행사가 미분양 물량 구입자에게 잔금을 5년 뒤에 납부하는 혜택이나 최대 9,000만 원대 할인을 제공하자 입주민이 반발한 것이다. 기존 입주민들은 할인 분양자에게 관리비를 20% 더 물렸다. 할인 분양자가 입주할 때 시위를 벌이던 입주민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정재호 호반써밋이스텔라 할인분양대응주민공동체 대표는 “입주자들도 대구에 미분양이 많으니 시세 하락을 감수하려 했다”며 “그러나 사업자가 입주자와 협의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과도하게 분양가를 할인해 반발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나중에 들어온 가구들도 결국 입주민”이라며 “입주민 갈등을 해결할 책임은 사업자에게도 있는데 ‘나는 팔았으니까 너네끼리 싸우든 말든 모르겠다’ 해버리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아파트 경계를 윤형 철조망으로 두른 사례도 있다. 기자가 찾아간 대구 수성구 빌리브헤리티지는 정문을 비롯해 사방에 윤형 철조망이 설치됐다. 입주민 4명이 경계를 서는 모습도 보였다. 한 입주민은 “입주 3개월 만에 사업자가 공매라는 꼼수로 분양가를 할인해 입주민마다 3억 원에서 5억 원까지 손해를 봤다”며 “입주민이 돌아가며 할인 분양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24시간 정문을 지킨다”고 전했다.
빌리브헤리티지 입주민들도 시행수탁사와 시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미분양 주택 일부를 가압류했다. 2차 가압류도 이달 법적 철자가 마무리된다. 입주민들은 할인 판매 시 기존 입주민에게 차액을 반환하도록 한 계약 특약을 이행하라는 입장이다. 빌리브헤리티지는 전용면적 178~267㎡로 구성된 고급 아파트로 조성됐으나 후분양에 실패했다. 지난해 말 PF 대출 만기를 연장하지 못해 결국 교보자산신탁이 공매를 시작했다. 다섯 차례의 공매에서 2가구만 주인을 찾았고 현재는 나머지 물량의 수의계약이 진행 중이다.
빌리브헤리티지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사업자가 일부 입주민에게 분양률 10%를 40~50%로 부풀려 분양했다’며 사업자를 사기 혐의로 형사고소할 계획이다. 정성엽 비대위 대표는 “갈등을 해결하려면 신탁이나 대주단과 대화해야 하지만 담당자가 모두 교체된 상황”이라며 “새로운 담당자들은 ‘자기 일’이 아니니 법적으로 끝까지 가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할인 분양자들도 억울한데 사업자 측이 을과 을 싸움을 붙여놓고 뒤로 빠져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구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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