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 보증 사업으로 덩치 불린 신탁사, ‘PF 부실’ 뇌관됐다[위기의 건설업]

윤지원 기자 2024. 2. 13. 21: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④ 활황기 ‘묘약’ 각광, 불황에 ‘독약’ 변질
신용등급 낮은 중소건설사에 자금줄…수탁액 17조원으로 ‘급증’
잇단 공사 중단에 PF 참여 금융사·수분양자·타 사업장까지 위험
올해 ‘책준형’ 대거 만기 도래…금감원, 대책은 모니터링 강화뿐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중소건설사를 대신해 신탁사가 공사 보증을 서는 ‘책임준공 관리형’(책준형) 토지신탁 수탁액 규모가 지난 3년간 2배 이상 급증하면서 17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탁사들은 부동산 활황기 책준형 사업을 늘리며 몸집을 키웠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잇달아 공사가 중단되면서 오히려 신탁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지난해 시공사는 물론 신탁사까지 준공기한을 못 맞춘 사업장도 4곳에 달했다. 신탁사 위기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을 댄 금융권, 수분양자, 다른 사업장에까지 부실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13일 경향신문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신탁사들의 책준형 수탁액은 2020년 12월 말(8조4000억원)에 비해 103.6% 늘어난 17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책준형 사업장은 KB부동산신탁이 180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자산신탁(167개), 무궁화신탁(139개), 하나자산신탁(119개), 코리아신탁(117개), 우리자산신탁(108개) 순이었다.

책준형은 신탁사 보증으로 부동산 PF 대출을 일으켜 필수사업비 90%가량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신탁사가 직접 사업자금을 대는 ‘차입형’ 사업보다 낮은 부담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2019년 이후 신탁사들은 책준형 사업을 빠르게 늘렸다. 책준형은 신탁사가 준공기한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약이 따르는데, 지으면 바로 팔리는 부동산 활황기에는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효자상품이던 책준형은 2022년 하반기부터 ‘독’이 되기 시작했다. 금리 상승 및 유동성 축소, 공사비 인상, 미분양 급증 등 시공사(건설사)를 위협하는 문제가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공사가 지연되거나 미완성되는 사업장이 크게 늘었다. 책준형 사업장도 대부분 1차적인 공사기한 책임은 시공사가 진다. 시공사가 도산하면 신탁사가 공사기한도 책임지고 맞춰야 한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시공사가 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해 채무인수를 받은 사업장은 26개에 달했다. 해당 사업장에 보증을 선 신탁사를 보면 하나자산신탁이 17개로 가장 많았다. 대한토지신탁 3개, KB부동산신탁 및 신한자산신탁이 각각 2개, 교보자산신탁과 대신자산신탁이 각 1개씩이었다.

시공사가 못 맞춘 공사기한을 신탁사까지 못 지킨 사업장도 지난해 4곳에 달했다. 대신자산신탁 2개 사업장, 교보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 사업장 각 1개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시공사의 책임준공기한이 먼저 도래하고 그것을 못 지키면 그 시점으로부터 6개월 뒤에 신탁사 책준기한이 설정된다”면서 “신탁사가 6개월간 시공사 교체 등 노력을 해도 공사기한을 못 맞춘 4개 사업장은 PF 대주단이 공사 지연에 대한 손실을 신탁사에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가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신탁사들의 자금 부담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신탁사가 시행사나 조합에 빌려주는 신탁계정대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4조800억원으로 2022년 12월 말(2조5833억원)보다 57.9% 급증했다. 여기에는 자금난 등으로 공사를 포기한 시공사 대신 신탁사가 자금을 투입해 공사를 이행하는 책준형 사업장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책준형 사업장이 가장 많은 KB부동산신탁은 2022년 12월 말 2423억원이던 신탁계정대가 9개월 만에 5050억원으로 108.4% 늘어났다. 이 돈은 미분양 등으로 제때 회수되지 못하면 신탁사 손실로 처리된다.

문제는 책준형 사업장 만기가 올해 대거 돌아온다는 점이다. 통상 신탁사업의 기간이 2년이고 최근 2년 새 책준형 사업장이 크게 늘었던 점을 감안하면 신탁사들 상당수가 올해 만기 예정인 사업장을 다수 갖고 있을 수 있다. 시공사 도산→신탁사 책임준공 불이행→ 신탁사 채무인수로 이어지는 위험 사업장이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신탁사의 건전성 악화는 단순히 신탁사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신탁사 리스크는 돈을 댄 PF 대주단, 수분양자, 여타 사업장으로 부실이 연쇄적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금감원도 이 문제를 의식해 지난 1일 미분양 문제가 심각한 대구 등 지역을 중심으로 책준형 사업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 시리즈 끝 >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