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했다”…존재 이유 묻기 시작한 ‘전세’의 운명은?

허인회 기자 2023. 5. 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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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피해대책 수습하고 나서 제도 자체에 손 댈 생각”
전세사기 공포 속에도 전세 거래 비중 여전히 50% 넘어
“시장수요가 있는 제도, 인위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어”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서울 종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전세 매물 등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전세제도를 대폭 개편하겠다고 나서면서 '전세'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대차 3법의 손질과 전세 보증금 예치제 등을 개편 방안으로 거론한 가운데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인위적으로 없애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던 전세 제도가 아직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16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며 '전세'의 존폐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 피해대책을 수습하고 나면 '갭투자'나 보증금을 일단 다른 데 쓰고 다음 임차인에게 돌려받는 제도 자체에 손을 댈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대차제도 대수술을 예고한 셈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부터 주택 임대차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진행하는 용역 결과는 내년 1월 이후 나온다. 국토부는 내년에 나오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임대차3법을 비롯해 전세제도 전반에 대해 손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원 장관이 '전세'에 대해 근본적인 개편 의도를 내비치자 전세제도의 존폐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단 정부의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LH는 선을 그는 모습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18일 "전세라는게 우리나라에서 주거사다리의 중요한 지름길이었는데 그 자체가 붕괴된다면 소위 말해 내 집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자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국민이 선호하는 것에 따라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세 수요는 하락하고 있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통계를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6만9444건 가운데 전세 거래는 4만125건으로, 전체의 57.8%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1년 1분기 이래 역대 최저치다. 같은 기간 빌라 전세 거래량도 전체 거래(3만221건)의 53.5%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적은 수치를 나타냈다.

전세 비중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달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까다롭게 한 것이다. 전세보증금이 집값과 같은 주택까지 보증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한다는 점을 악용해 전세사기가 발생했다는 지적에 따라 가입 문턱을 올린 것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이미 한 차례 외면 받은 '에스크로', 이번엔 다를까

하지만 역전세난 우려와 전세사기 공포 속에서도 전세 비중은 빌라와 아파트를 통틀어서 전월세 거래의 50%를 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내 집 마련을 위한 자산 형성 수단으로 전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원 장관이 대안으로 언급한 '에스크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세 에스크로 제도는 보증금을 금융기관 등 제3기관에 맡겨두는 방식이다. 일부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갭투자에 활용하다 전세 만기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의도다.

지난 2월 국토연구원도 '전세 레버리지(갭투자)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보증금을 신탁기관에서 관리하므로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현저히 감소할 수 있으며, 임대인과 임차인간 정보, 협상, 편익 등의 비대칭적인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임대인 입장에서는 목돈(보증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해두고 쓰지 못하는 에스크로 제도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에스크로 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시도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당시 국토부는 시중은행과 함께 에스크로 시범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거래 대금의 0.05%라는 낮은 상품 수수료와 별도의 권리 보험 가입 등의 이유로 임대인, 임차인, 금융기관 등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전세제도 개편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가족 단위의 주택의 경우 월세로 밀려날 경우 주거비 부담이 상당히 커지면서 자산형성에 큰 타격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사기나 역전세를 근거로, 앞으로 전세는 없어져야 하는 특이한 제도이며 선진국처럼 월세가 일반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며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고 시장수요가 있는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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