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전세사기…'이것'만 알면 막는다
[아이뉴스24 이혜진 기자] #. 빌라·오피스텔 1천139채를 임대하다가 지난 10월 돌연 사망한 '빌라왕' 김모(42)씨. 그가 등록 임대사업자로서 보증보험에 가입한 주택은 44채에 불과했다. 지난해 8월부터 모든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수백 명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같이 전세금을 날리는 사례는 아직도 미흡한 법과 제도의 틈을 파고들며 시작될 때가 많다.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양한 전세 사기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피해 구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봤다.
◆ 매맷값 웃도는 깡통전세…일반전세보다 위험하다
'깡통전세(전세금이 매맷값보다 높거나 비슷해 임대차 계약 만료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경우)'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워 일반 전세보다 위험하다. 단, 아파트는 선순위로 받는 채권과 전세금의 합산액이 공시지가 150%나 한국감정원의 시세를 넘지 않으면 가입이 가능하다.
대도시에 근접한 비규제지역이 규제지역보다 대출이 자유로워 깡통 전세 피해가 잦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으면 생기는 입주 의무가 없는 점도 '비규제지역 효과'를 키울 수 있다. 집값이 오를 기대감이 있는 지역에도 깡통 전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깡통전세는 자기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벌려는 투자자의 표적이 될 때가 많다. 전셋값과 매맷값의 차이가 적어 집을 갭 투자(전세 끼고 집을 사는 것)할 때도 소액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고의성을 떠나 자기자본이 없으면 전세 보증금 없이 자력으로 잔금을 치르기 쉽지 않다.
최선의 예방법은 선순위로 받는 채권과 전세금의 합산액이 집값의 70%를 초과하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다. 세입자가 전세금보증보험에 가입해 집주인과 계약을 해지한 뒤 전세금을 받는 방법도 있다. 단, 집주인이 도망가서 연락되지 않을 땐 내용증명이 반송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최근 '빌라왕' 사태처럼 집주인이 사망하면 세입자는 대신 상속인과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이 때 빌라왕 김 씨의 상속인처럼 HUG와 접촉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현행 규정상 HUG가 피해자에게 먼저 전세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 다시 말해 세입자가 계약을 끝내 HUG가 집주인의 새 채권자가 되기 전까진 전세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매맷값이나 전셋값을 속여 전세 보증금 가로채기
세입자 혼자 집을 분양받을 땐 매맷값이나 전셋값을 속여 보증금을 가로채는 일도 발생한다. 먼저 같은 팀을 구성해 특정 가구 한두 채의 매맷값을 시세보다 높여 등기하는 이른바 '업(UP)등기'를 하거나, 전세 보증금을 비싸게 받은 것처럼 속인 후 홍보에 돌입한다. 이후 예비 세입자에게 비싼 가격에 거래된 계약서를 제시해 이보다 보증금을 낮춰줄 것처럼 안심시킨다.
비싸게 분양한 것처럼 조작하는 이유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낮다고 오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미 거래된 전세 물건이 비싼 가격에 팔린 듯이 속이는 것도 세입자를 안심시키려는 행위다. 인허가를 받고 짓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분양가와 전세 보증금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런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변 시세를 꼼꼼히 분석한 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수밖에 없다. 집주인에 관한 자세한 정보도 세입자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집주인 신분증 등 각종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등기부등본의 소유자가 계약하러 온 집주인과 동일 인물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주민등록증·인감증명서·본인서명사실확인서와 운전면허증의 진위 확인은 각각 정부24, 경찰청 교통민원24에서 가능하다.
다만 세입자가 집주인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등기부등본의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있지만 해당 문서로 집주인의 보증금 상환 능력과 신용불량 정보, 임대차 상습 사기 여부 등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하기 전에 집주인의 동의 후 신용정보를 조회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에서 주담대를 제외한 다른 채무를 확인할 수도 없다. 법적 임대사업자는 채무를 의무적으로 공지해야 하지만 개인에겐 이를 의무화할 근거가 없어서다.
◆ 금요일에 담보대출 받고 주말에 전세 계약 체결하기
등기부등본에 대출 정보가 나오기 전 틈을 노리는 수법이다. 보통 집주인이 은행에 담보로 맡긴 주택은 세입자가 꺼려해 이 같은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출금을 전액 상환하지 않으면 집이 경매에 넘어가 세입자가 보증금을 날릴 수 있다. 보증금이 5천만원 아래인 세입자거나 다세대주택, 오피스텔에서 이런 사기가 자주 발생한다.
특정 요일을 피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 체결과 동시에 대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어느 요일에 계약을 맺어도 임차인에게 불리하다. 이에 전입신고를 빨리 서두르고 확정일자까지 받아야 보증금을 지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사기 유형은 다양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은 더딘 상황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들도 현재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실제로 이른바 '나쁜 임대인'의 명단을 공개하는 법안과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세입자가 볼 수 있는 법안, 전입신고를 하자마자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춰 보증금을 지킬 수 있게 한 법안 등이 발의만 된 채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법안들이 1년 넘게 계류돼 있는 동안 서민과 2030세대를 중심으로 보증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겠다며 임대 사업자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제2의 빌라왕을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혜진 기자(hjlee@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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