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피스텔'.. 가격이 미쳤어요
집값 떨어질 땐 '헐!피스텔'
공급확대 기조 업고 시장 과열
최초의 오피스텔이 도입된 건 1985년이다. 한국에만 있다는 이 기묘한 용어의 기원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오피스텔이 한국 주거 역사에 정식 등장한 건 훨씬 뒤인 1995년이다. 당시 정부는 오피스텔에 바닥난방이 가능하도록 법을 바꿨다. 한국 주거의 필수 조건인 바닥난방은 당시나 지금이나 주택과 비주택을 가르는 주요 잣대다.
바닥난방을 허용하면서 ‘텔’이라고 이름 붙었을 뿐 사실상 사무용으로 쓰이던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부족한 주택 공급을 늘리려는 정부의 속셈이 깔려 있었다. 필요에 따라 ‘아파트 대체상품’의 규제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4년에는 오피스텔 투기 열풍이 불었다. 정부는 바닥난방을 다시 불허했다. 이 기준은 2006년 전용면적 50㎡ 이하로 개정됐고, 2009년에는 연간 두 번(50㎡→60㎡→85㎡)이나 기준이 바뀌었다. 올해 들어 정부는 이달에 이 기준을 다시 한번 바꿨다. 바닥난방을 120㎡ 이하까지 허용키로 했다. 이번에도 목적은 주택공급 확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급을 장려하고 나선 오피스텔 시장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지난 3일 청약신청을 받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 AK 푸르지오 오피스텔’에는 96실 모집에 12만5919명이 접수했다. 평균 경쟁률은 1312대 1이나 됐다. 경기도 과천 별양동 ‘힐스테이트 과천청사역 오피스텔’은 89실 모집에 12만4426명이 신청했다. 평균 경쟁률은 1398대 1로 오피스텔 청약 경쟁률로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쟁률만 놓고 보면 ‘로또 청약’이라는 수식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정도로 수요가 몰렸다.
오피스텔 광풍은 전매를 노린 일부 단지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부동산원 월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에 서울 오피스텔 매매가격 변동률은 0.32%로 전월(0.33%) 수준의 높은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난 6월 이후 5개월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1년 사이로 범위를 넓히면, 지난해 11월과 지난 5월을 제외하고 매월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6월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거래량도 무섭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올해 들어 지난 16일까지 전국 오피스텔의 매매는 5만1597건이었다. 200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오피스텔 거래는 2019년 3만5557건에서 지난해 4만8605건으로 늘었다.
오피스텔이 뜨거운 배경에는 아파트 시장의 변화가 있다. 오피스텔은 ‘아파트 대체상품’이라 불린다. 아파트 시장의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아파트에 겹겹의 규제를 적용할수록,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오피스텔로 수요가 쏠리는 구조다.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달리 전매를 할 수 있고, 양도소득세를 매길 때 아파트보다 유리하며, 대출 규제를 덜 받는다. 그뿐만 아니다. 공급자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서 좋다.
수요가 늘면서 과거 1~2인 위주의 원룸 중심이던 오피스텔도 변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용면적 40㎡ 이하 오피스텔의 평균 매매가는 올해 1월 1억4303만원에서 9월 1억4369만원으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40~60㎡는 3.6%(2억2956만원→2억3785만원), 60~85㎡는 7.4%(3억3586만원→3억6080만원) 뛰었다. 면적이 클수록 가격 상승 폭이 컸다. 아파트와 같은 용도로 쓸 실수요자들이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공급자와 수요자, 정부 모두에 좋은 ‘아파트 대체품’처럼 보이지만 오피스텔엔 뚜렷한 단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집값 열기가 식으면 오피스텔 등 대체상품 가격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오피스텔 광풍에는 전매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많아서, 주택시장이 안정되면 오피스텔이 가장 먼저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이 시점에 전매나 판매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변덕’도 무시 못 할 변수다. 당장은 공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피스텔 시장을 독려하고 있지만, 투기가 심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규제 강화로 돌아설 수 있다. 오피스텔의 전매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투기가 몰리면 어떤 형태로든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규제를 원칙 없이 바꾼다는 비판을 유발할 수 있다. 더구나 주택 임대수요를 떠받치는 효과가 분명한 오피스텔 시장의 위축을 불러 임대차 시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크다.
더 큰 문제는 ‘변곡점’에 접어든 시장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일반적으로 상승기에는 중심지에서 외곽, 아파트에서 대체상품으로 ‘풍선효과’를 반복한다. 지난해에는 수도권 외곽까지 옮겨갔던 집값 열기가 난데없이 서울 강남과 노원 등에서 다시 불붙었다. 집값 과열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누구도 섣불리 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오피스텔 공급을 확대하고 나선 정부의 원칙 없는 행정은 실수요자 피해를 부르게 된다. 김 소장은 “주택공급을 늘리려는 정부와 수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급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떨어진 것인데, 지금은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 같지만 한번 삐끗하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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