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0대·한부모가정 사는데..LH는 '신혼희망타운'?

유준호 2021. 3. 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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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 커지는 공공주도 주택
입주민 브랜드 변경 요청에도
LH '신혼희망타운' 고집
10년뒤도 신혼부부에만 팔라?
"정책 홍보만 혈안" 불만 커져
2·4대책으로 권한 커진 LH
'공공주도개발' 폭주 불보듯
"아파트 이름에서 LH만 떼내겠다고 하더라고요. 60대 어르신도, 한부모가정도 신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혼희망타운으로 조성된 공공아파트 이름에 '신혼희망타운'이란 정책 명칭이 들어가기를 고집하면서 입주민들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신혼희망타운 입주자들은 최근 자체 투표까지 거쳐 5개 브랜드 후보군을 만들어 LH에 전달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입주자들은 "공공 사업자인 LH가 정책 홍보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신혼희망타운'이라는 이름 자체가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한다. 정부는 2·4 대책에서 공공이 직접 사업을 주도하는 역세권 개발과 재개발·재건축을 표방하면서 사실상 LH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LH는 감정평가, 분양 신청·배정, 일반 분양가 책정 등 모든 과정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공공 주도가 핵심인 2·4 대책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LH 등 공기업이 소유주들의 이해관계와 전혀 다른 사업을 진행하면 낭패를 볼 것이란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22일 전국신혼희망타운연합회에 따르면 LH는 지난 9일 '신혼희망타운'으로 아파트 명칭을 내부적으로 잠정 결정했다고 연합회 측에 통보했다. 당초 'LH신혼희망타운'에서 LH만 빠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LH와 연합회는 아파트 명칭에 대해 협의해 왔는데, 최근 LH가 내부 입장을 정리해 입주자들에게 통보했다는 것이다.

입주민들은 아파트명에 신혼희망타운을 넣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아산탕정 신혼희망타운 등 전매제한이 없는 곳에서는 이미 매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전매가 풀린 지역에서는 60~70대 노인분들도 아파트에 입주하는 상황"이라며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는 10년간 전매제한이 걸리는데, 신혼희망타운으로 브랜딩되면 매도층을 신혼부부로만 제한해 향후 주택 거래에 제약이 커진다"고 했다.

특히 신혼희망타운에는 한부모가정도 특별공급으로 입주한다. 신혼희망타운이 입주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명칭이 아니라는 얘기다. 연합회 관계자는 "신혼희망타운이라는 결혼이 전제된 명칭으로 아파트 이름을 지으면 일부 입주민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정부는 신혼희망타운을 만들면서 소셜 믹스(사회 통합)를 강조해 왔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입주자들은 직접 아파트 이름 후보를 만들어 LH에 전달하기도 했다. 5개 후보군 중 입주민이 가장 선호한 '루네드미엘(신혼여행을 뜻하는 프랑스어)'은 '신혼'이 직접 명시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끝내 LH는 신혼희망타운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연합회 관계자는 "LH는 기존 'LH신혼희망타운'에서 LH만 떼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고 입주민들에게 동의할 수 없으면 원안인 'LH신혼희망타운'으로 결정하겠다는 식"이라고 하소연했다.

LH가 강행 의지를 보이자 지난 12일 신혼희망타운 입주민들은 청와대 청원까지 올리며 대응에 나섰다. 한 청원인은 "LH와 휴먼시아는 과거에도 좋지 않은 인식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놀림감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빈부에 따른 계급 문화와 혐오 문화 형성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고 토로했다.

향후 입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공동주택 내 입주자 4분의 3이 동의하고, 관할 시군 허가만 얻으면 해당 건축물 명칭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혼희망타운은 전체 물량의 30%가 공공임대로 공급된다. 소유권이 LH에 있기 때문에 LH가 동의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주민이 동의해도 아파트명을 바꿀 수 없는 구조다.

신혼희망타운은 2017년 문재인정부의 초기 부동산 정책 공급인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공급 계획이 나왔다. 신혼부부, 예비신혼부부,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2022년까지 신혼희망타운 15만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2018년 6월 경기 군포 대야미지구를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 성남 금토지구까지 계획 수립이 마무리됐다. 올해부터 본격 조성 공사에 들어간다.

LH 관계자는 "신혼희망타운 이름 변경 건은 연합회 측에서 LH 명칭을 빼달라는 요청이 지속됐고, 이와 관련해 신혼희망타운 이미지 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LH CI를 빼는 부분을 확정했다거나 연합회 측에 확정적으로 얘기한 부분은 없다"고 해명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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