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일으켰다는 '전 정부' 부동산 담당, 연이어 국토부 차관에 올라

전성필 2020. 11. 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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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 정부 탓', 고위 공직자 임명 비판하는 꼴
집권 3년 반 지난 시점에선 정책 반성이 우선돼야 지적

박근혜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1차관 자리에 연이어 올랐다. 박선호 국토부 전 차관에 이어 1일 차관직에 오른 윤성원 차관 역시 과거 박근혜정부에서 주택 및 국토 정책 담당자로 일했었다.

하지만 청와대뿐 아니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집값 폭등 등 시장 불안이 발생한 책임을 이전 정부로 돌리고 있다. 전 정부 탓을 하면서 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만든 이들을 승진시키는 모양새다.

결국 집값 상승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이전 정권 탓’을 그만두고 시장 안정을 위한 해법을 찾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토부 1차관에 윤 전 대통령비서실 국토교통비서관을 선임했다. 윤 신임 차관은 행시 34회로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대통령비서실 국토교통비서관으로 있었다. 이에 앞서 윤 차관은 2013년 3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박근혜정부의 대통령비서실 국토교통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4년 7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도시정책관, 2015년 10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국토정책관을 역임했다. 박근혜정부 임기 동안 정부의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담당했던 정책 담당자(국장)였던 것이다.

전임인 박선호 전 차관도 박근혜정부에서 주택 정책을 담당했었다. 박근혜정부 말기와 문재인 정부 초반인 2016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박 차관은 주택토지실장으로 일했다. 국토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차관직에 연이어 박근혜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 앉은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1일 오전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차관급 12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청와대뿐 아니라 김현미 장관까지 최근의 집값 폭등, 주택 공급 부족 등을 박근혜정부 책임이라고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8일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을 “박근혜 정부 때 (경기) 부양책”이라고 꼽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대출받아서 집 사라’라고 하면서 (국민을) 집 사는 거로 거의 내몰다시피 했고, 또 임대 사업자들한테 혜택을 주면서 집값이 올라가는 결과를 이 정부가 안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규제를 완화해 2015년부터 부동산 시장 상승기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었다. 서울 내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김 장관은 “2014~2015년 인허가 물량이 적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지난 6월에도 “저희(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물려받았을 때가 전 정부에서 모든 부동산 관련 규제들이 다 풀어진 상태에서 받았기 때문에 자금이 부동산에 다 몰리는 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서울 내 주택 공급 부족과 규제 완화에 따른 투기 수요 증가 등이 모두 박근혜정부에서 추진된 정책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이런 청와대와 김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불안을 초래했던 이전 정부의 정책 담당자(윤 차관)를 각종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총괄 책임자 자리에 앉힌 게 된다. 청와대와 김 장관이 ‘전 정부 탓’을 지속할 경우 자신들의 고위직 임명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시장에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 반 지난 시점에서 부동산 시장 불안의 원인을 전 정부로 돌리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는 공급 부족이 꼽힌다. 정부의 공급 대책이 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치려면 시차가 있지만, 3년 반이라는 시간은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엔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임대차 3법의 영향으로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서 전세 매물부족 현상, 전셋값 폭등 등이 발생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몇 년 간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전세가격이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이후 크게 오르는 등 정부 정책이 시장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의 성과와 문제점을 평가하고 반성하기 보다는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정부가 그동안 내놨던 정책에 문제가 없었는지, 어떤 효과를 냈는지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향후 시장 불안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때다”고 꼬집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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