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커트라인 60점대..청포·집포 양산 부추기는 정책

2020. 9. 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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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 청약포기자, 이유 들어보니
2030 비혼·미혼 가점낮아 청약 언감생심
입주까지 길게는 10년 떠돌이 싫어 '영끌'
4050, 자녀 커가는데 대출은 9억이하만
60대, 까다로운 요건에 청약 번번이 고배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경제DB

정부가 최근 3기 신도시와 서울 공공택지 6만호에 대해 내년부터 사전청약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30대가 주도했던 ‘패닉바잉(공황매수)’이 일정 부분 누그러질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각 세대별로 ‘청포자(청약포기자)’를 양산했던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전청약으로 당장 눈 앞의 공급부족을 해소할 수 없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헤럴드경제가 2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별로 왜 스스로 청포자가 됐는지, 이에 대한 원인을 짚어봤다.

▶20대 “청약은 언감생심”, 30대 “10년 무주택 견딜 자신 없어”=“어차피 청약통장 가입기간 말고는 모두 빵점이니까요.”

29세 미혼 직장인 정윤아(가명)씨는 지난 6월 말 경기 고양시 행신동에 있는 구축 아파트를 매수했다. 전용면적 49㎡ 매물에 실거래가는 2억4000만원이었다. 집을 마련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혼인데다가, 청약가점이 20점도 안되는 정 씨가 청약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것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 만 30세가 안 돼 청약가점은 청약 통장 가입기간으로 얻은 17점이 전부다.

그는 “고양 창릉 3기 신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미혼은 특별공급 자격도 안 된다”며 “주택 매수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서(울입성)포(기)자’라고도 했다. 정 씨는 “고양에 집을 산다고 하니 주변에서 ‘한 번 서울을 벗어나면 재진입하기 어렵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도 서울을 포기하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어디든 오래 살다보면 ‘우리 동네’라고 정이 붙기 마련이죠”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서울 직장생활 6년차인 33세 김현우(가명)씨는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직후 주택 매수 마음을 굳혔다. 퇴근 후엔 노원·도봉·강북구의 아파트 임장(현장답사)에 나섰다. 그리고 7·10 대책이 나오기 직전,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전용 40㎡ 아파트를 1억8000만원에 매수했다.

두 달여가 지난 현재 해당 매물은 2억4000만원대에 거래된다. 실입주 목적으로 샀지만, 집값이 오르면 팔고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옮겨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어차피 결혼하지 않는 한 청약 당첨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요즘 같은 경제난에 결혼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얼마 전 나온 정부의 수도권 6만가구 사전청약도 실입주까지 10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데 그때까지 전세나 월세로 이집 저집 떠돌아다닐 순 없죠”라고 했다.

▶ “자녀 크는데…” 고민 깊어진 40·50대, ‘까다로운 조건에 좌절’ 60대=자녀를 둔 40대와 50대들도 ‘진퇴양난’이다. 아이들이 매년 성장하면서 기존 집이 작아지는 데 집값상승과 각종 대출 규제·높은 거래세 등으로 높은 평형으로의 이동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4050 무주택자의 경우 청약가점은 30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분양가 9억원 이상이면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분양가 9억원 아래는 대부분 소형 평수에 해당한다. 4인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43세 회사원 이정철(가명) 씨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육 환경에 따라 이사가야 하는 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가 전혀 안 돼 있는 것 같다”며 “급한대로 매매나 전세를 계속 알아보는 방법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60대의 경우 까다로운 조건에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부천시에 사는 60대 주부 희경(가명)씨는 199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1주택을 유지하고 있다. 청약통장을 일찍부터 만들긴 했으나 젊은 시절에는 자녀 뒷바라지 등으로 청약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았다.

최근에야 자녀 독립으로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기고, 이른바 ‘로또분양’으로 불리는 분양가 시세차익 등의 뉴스 기사를 보면서 청약홈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총 가점이 30점도 되지 않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노부모 부양 특별공급에 대해서도 조건을 알아봤으나 ▷만 65세 이상 부모님 3년 이상 연속으로 부양 ▷전세대 구성원 무주택 자격 유지 등 생각보다 까다로워 결국 포기했다.

그는 “돈 많은 무주택자에게 좋은 아파트가 돌아가고, 서민 1주택자는 (청약을) 엄두도 못 낸다”면서 “이사도 못 했던 장기 1주택자들에게 좀 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 아파트 당첨 커트라인 60점 시대…사전청약이 해결책 될까=한국감정원 등에 따르면 올해 7월과 8월 서울에서 분양한 12개 단지의 당첨 최저가점(커트라인)은 평균 62.7점으로 나타났다. 60점은 30대인 4인가족이 받을 수 있는 최대 청약가점인 57점을 뛰어넘는다.

상반기(6월 11일 기준) 올해 서울의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99.3대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도 40.7대 1에 달한다.

청약시장이 과열된 상황이지만 하반기 서울 신규 아파트 분양물량은 많지 않다. 지난 9일 당첨자가 발표된 양천구 신월동 ‘신목동 파라곤’은 9월의 유일한 물량이었는데, 만점(84점)짜리 통장(부양가족6인)이 등장했다.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기 신도시와 8·4 공급대책에서 나온 부지인 하남교산, 과천 과천지구,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등에서 청약 선호 지역을 묻는 질문에 ‘위 지역 중에서는 청약할 의사가 없다’라고 한 응답자가 20.9%로 나타났다. 청약 수요와 입지 공급이 엇갈리는 ‘미스매칭’이라는 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사전청약이 공급부족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사전청약은 사실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며 “본청약 및 실입주까지 남은 기간동안 청약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안아야 하고, 불안요인인 전세시장에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근·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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