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만 잡는 정책, 지금보다 더한 전세난 온다
“4400가구 넘는 은마아파트에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다네요.”
주부 김모(43)씨는 최근 하루에 십여 통씩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를 돌린다. 그는 “아이 교육 때문에 11월에 이사를 하고 싶은데 전셋집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며 “낡은 재건축 단지가 그나마 저렴한데 매물이 없고, 신축 아파트는 전셋값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 철을 앞두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가을 전세난은 ‘예고편’이고, 아파트 입주 물량이 대폭 줄어드는 내년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예정 포함) 물량은 4만8673가구로 예년보다 많지만, 내년 입주 예정 물량은 2만5021가구로 올해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단기적으로 전세 시장 불안을 잠재울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전셋집을 공급하는 집주인을 압박하는 것이어서 공급 부족과 가격 불안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전셋값 상승은 매매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은 못 잡고, 전세난만 가중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65% 올라 2015년 12월(0.7%)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아파트 전셋값도 1.03%나 올랐다. 전세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데, 시장엔 매물이 없다 보니 전·월세 계약 건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쏟아낸 각종 정책이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부메랑’이 됐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법, 실거주 요건과 보유세를 강화하는 등의 규제를 풀지 않고서는 전세 시장 불안정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부동산 담당자는 “정부가 투기 수요를 억제해 집값을 잡겠다며 실거주 강화 대책을 쏟아낸 것이 시장에 전셋집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6·17 대책에서 ‘2년 실거주’ 조합원에게만 재건축 사업 완료 때 입주권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내 한 공인중개사는 “줄곧 전세를 놓던 집주인들이 실거주 요건 때문에 세입자를 내보내려 하고 있어 전세 물건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으로 주택 취득 후 2년 이상 보유하면 9억원까지는 양도세가 전액 면제되던 것을 2년 이상 실거주까지 해야 공제받을 수 있게 했다. 지난해 12·16 대책에선 실거주 요건을 대폭 강화해 10년 이상 보유(40%)하고 10년 이상 실거주(40%)까지 해야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80% 적용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나중에 집을 팔 때 세금 폭탄을 피하려는 집주인들이 실거주를 택하면서 전세로 나오는 물량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집주인 세금 부담, 세입자에 전가”
7월 말 정부·여당이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인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시행으로 전세 시장의 ‘매물 잠김’이 심해졌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기존 세입자들은 2년마다 전셋집을 옮기거나 과도한 전세 보증금 인상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새로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들은 집주인으로부터 훨씬 비싼 보증금을 요구받는 현실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저금리로 반전세 등으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고, 임대차법 시행으로 4년 동안 전세금을 올리기 어려워진 불확실성 때문에 전세 공급은 더 줄어들 전망”이라고 했다.
정부는 10월부터 기존 4%인 전·월세 전환율을 2.5%로 내린다고 예고했다. 전세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려는 임대인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월세 전환율 인하가 전셋값을 더 올리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광석 리얼모빌리티 대표는 “임대인 입장에서는 은행 이자도 못 내는 월세를 받느니 새 세입자를 들일 때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리려 할 것”이라며 “집주인이 종부세·재산세 등 급등한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려 하는 것도 전셋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과도한 집값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전세 시장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불안 요소로 꼽힌다. 정부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의 규제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들면서 전세 수요가 줄지 않는 측면도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15억원이 넘는 집은 아예 대출이 안 되는데, 고가 전셋집에 사는 세입자들을 매매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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