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에 누구는 6억, 누구는 10억에.. 전세 이중가격 시대
"작년 1월에 6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오전에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나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입주 때는 '오래 살아도 된다'더니 임대차법 때문에 마음을 바꾼 것 같아요."
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 입주민 이모씨는 "임대차법이 시행돼 계약을 연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당황스럽다"며 "주변 전셋값이 치솟아 신규 계약하려면 10억원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보증금으로는 턱도 없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기습적으로 시행된 이후 전국 아파트 단지에선 '이중 가격'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됐다. 기존 세입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활용해 앞으로 2년간 더 살 수 있게 됐지만, 계약 갱신에 실패한 신규 세입자들은 이보다 수억원씩 비싼 가격에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특히 첫 입주 후 2년을 앞둔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재계약을 놓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기 싸움과 눈치 보기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대개 2년 전 입주를 시작해 2년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 매물이 쏟아지기 마련이지만, 최근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
2018년 12월 첫 입주를 시작한 헬리오시티는 9510가구로 현재 전국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지만, 전세 매물은 14건에 불과하다. 이 아파트는 입주 초기만 해도 33평형대 전셋값이 6억원대였지만, 현재 시세는 10억원대까지 뛰었다. 기존 세입자는 6억원에 살면서 5% 이내 인상된 금액에 더 살 수 있게 되지만, 신규 세입자는 10억원에 전세를 얻어야 하는 이중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복수의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이 단지 입주자 중 30%는 세입자다. T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세가 3억~4억원씩 치솟아 집주인의 실거주가 늘어나면서 1500가구 정도는 전세 난민처럼 떠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온갖 편법도 등장하고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 두 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4년간 임대료를 못 올리니,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2년마다 실거주를 이유로 집을 옮겨다니는 '메뚜기족(族)'이 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전셋값이 해마다 수억원씩 치솟으니 중개 수수료나 이사 비용 등을 감안해도 '메뚜기'가 되는 게 이익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세입자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태세다. 주택 정보 열람 권한을 활용해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감시하고 만약 거짓이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집을 내놔도 세입자들이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거나, 집을 보여주지 않고, 집주인들에게 '실거주하는지 증명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고 전했다.
반면 전세금을 5% 이상 올려주고, 계약갱신청구권도 활용하지 않겠다며 '읍소'하는 세입자들도 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2년째 전세를 살고 있는 최모(49)씨는 "오는 12월 전세 계약 종료를 앞두고, 지난 7월 말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1억5000만원 올려주기로 하고 재계약하기로 했는데 임대차법 시행과 동시에 집주인이 '나도 전세 들어 살고 있는 반포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됐으니 당신도 나가달라'고 했다"며 "아이 학교 때문에 더 살아야 하는데 전세난 속에서 어떻게 전셋집을 구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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