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에 유리, 후분양 민간 아파트 늘어난다
이달 말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인 서울 강남구 A아파트 공사 현장은 아직 텅 비어 있다. 아파트 뼈대를 채 올리기도 전에 분양하는 선(先)분양 단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공급되는 대부분 아파트는 이런 식의 선분양을 택해왔다. 분양대금을 받아 건설비를 충당하는 구조로, 소비자 입장에선 수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지도 못하고 사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파트를 60% 이상 짓고 나서 입주자를 모집하는 '후(後)분양' 아파트가 5000가구 넘게 공급될 예정이다. 공공주택은 물론 민영 아파트 중에서도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을 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 입주자 금융 부담이 낮아지는 등 장점이 적지 않지만,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 건설사 쏠림 현상 등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분양 아파트, 지난해 두 배 이상으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19일 강동구 고덕강일 8단지와 14단지의 1순위 청약을 받는다. 두 단지 입주 예정일은 내년 2월로, 현재 70%가량 공사가 완료됐다. 지난 2월 강서구 마곡지구에서 분양된 마곡9단지 역시 올해 말 입주가 예정돼 있다. 보통 선분양 아파트가 당첨자 선정 후 2~3년 뒤 입주하는 것에 비하면 꽤 빠른 것이다. 올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이런 식으로 분양하는 공공주택은 7개 단지 5506가구로, 지난해(2235가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 후분양 물량이 확대된 것은 정부가 2018년 발표한 '후분양 로드맵' 때문이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공공 부문에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에도 후분양제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선분양 중심의 획일적인 분양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부실시공, 분양권 투기 등을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선분양은 미국 등 선진국에선 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분양 방식이 법으로 정해져 있진 않지만, 대부분 주택을 모두 지은 후 분양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에 선분양제가 도입된 것은 1970년대로, 당시 단시간에 주택 공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택한 측면이 크다. 이후 노무현 정부 등에서 여러 차례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건설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빠른 입주 좋지만 분양가 높아질 우려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최근 후분양을 검토하는 민간 사업장도 늘고 있다. 이달 중순 청약을 받는 동작구 상도동 '상도역 롯데캐슬'이 그런 경우다. 이곳은 원래 2018년 선분양하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해 후분양을 택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도 후분양을 검토하는 곳이 늘었다. 다음 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분양가 상한제를 최대한 우회하려는 조치다. 후분양 역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만 공시지가 상승률이 토지비에 반영돼 선분양보다 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 최근 서초구 '반포1단지 3주구' 시공사로 뽑힌 삼성물산은 조합에 '100% 준공 후 분양'을 제안했다. 신반포21차, 신반포 15차 등도 후분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장에선 후분양이 선분양보다 유리하다고 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선분양은 건설사가 부담해야 할 금융 대금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후분양이 늘면 소비자 이자 비용이 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의 후분양은 공사 60~70% 시점에서 분양하기 때문에 내부 마감재까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외국처럼 '준공 후 후분양'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금 여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가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소외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확대 등 금융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자금력 있는 대형 건설사가 공사를 독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간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선분양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고 중도금과 잔금 납부 기간이 짧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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