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만으로 집사는 데 27년.. 이렇게 살 수 있나요?

2013. 8. 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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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진남영 기자]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 벌써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 4월과 7월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보수 언론에서조차 '또 알맹이가 빠졌다'(중앙일보 사설 7월 25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어 8·28 전월세 대책이 발표되었다. 발표된 세 번의 대책은 모두 현실을 외면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전월세대책은 매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빚을 빌려주겠다는 정책이다.

시한폭탄 같은 엄청난 가계부채를 끌어안고 있는 한국 상황에선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며 투기만 더욱 판칠 것이다. 이미 너무 높아져버린 집값, 과연 대출과 이자 감면을 통한 매매활성화로 지금의 주택 문제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새사연은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1인당 저축하면서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지표로 나타내보았다. 본 지표를 통해 주택 매매가 현실적인 대안인지,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물론 한국 사회의 주택 가격이 얼마나 터무니 없이 높은지를 살펴보길 바란다.

▲ 연간흑자액 기준 주택구매력 지수

각 소득분위별 저축으로 집을 사기까지 걸리는 시간 (출처 : 통계청, 국민은행 주택가격 재가공)

ⓒ 새사연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한 주택구매력 지수란?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한 주택구매력 지수"는 연간 흑자액 대비 주택가격비율(주택가격/연간 흑자액)이다. 연간 흑자액은 한 가계의 연간 소득에서 소비지출과 비소비지출을 차감한 금액으로, 저축이나 자산 구입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의 부분을 말한다.

따라서 연간 흑자액 대비 주택가격비율은 가계가 소비지출 및 비소비지출을 제하고 남은, 실제 저축 가능한 소득 부분을 이용해 주택을 구입하려고 할 때, 주택 구입에 걸리는 햇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한 주택구매력 지수가 10이면, 가계의 순수 흑자액으로 주택을 구입하는데 10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한 주택구매력 지수는 연간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 (price to income ratio, PIR)과 대비된다. PIR은 어떤 소비지출도 차감하지 않은 전체 소득을 기준으로 주택구매력을 측정한다.

저축만으로 집 사는데 걸리는 시간, 27년

통계청이 제공한 2012년 연간 가계동향조사와 국민은행이 발표한 2012년 12월 주택가격동향조사를 토대로, 연간 흑자액을 기준으로 한 주택구매력 지수를 계산한 결과, 소득 3분위에 속한 계층이 흑자액을 이용해 주택가격 3분위(전국 기준)의 주택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은 27.1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중간 소득 계층에 속한 가계가 저축만으로 중간 가격의 주택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이 27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수도권을 기준으로 할 경우 3분위에 속한 계층이 중간 가격의 주택을 사는데 40년이 걸리고, 서울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54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계층이 중간 수준보다 저렴한, 주택가격 2분위(전국 기준)의 주택을 사려한다 해도, 이에 걸리는 시간은 19.8년이나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득 2분위에 속한 계층의 경우, 흑자액으로 중간 수준보다 저렴한, 주택가격 2분위의 주택(전국 기준)을 사는데 40년이나 걸리고, 이들이 제일 가격이 낮은 1분위(전국 기준)의 주택을 사려한다 해도 꼬박 25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심지어 소득 1분위에 속한 계층은 현재의 소득으로는 평생 동안 주택구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진단과 해법

연간 흑자액 기준 주택가격비율이 높은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분모인 흑자액, 소득 - (소비지출 + 비소비지출)은 낮은 반면, 둘째, 분자인 주택가격은 높기 때문이다.

우선 가계의 흑자액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은 가계 소득 자체가 낮은데 있다. 우리나라 가계 소득은 정체상태에 있다. 우리나라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4.1% 증가하는데 그쳤고, 해당기간 동안 실질임금상승률은 최대 연 2.2%를 넘지 못했다. 이러한 소득의 정체를 반영하듯, 2012년 현재 소득 1분위의 적자가구 비율은 53.0%, 2분위는 28.4%나 되고, 9개 시중은행의 대출 신규취급액을 기준으로 할 때 생계형 대출은 56%에 이른다.

한편 소득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에도,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2000년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주택가격은 전국 기준으로 133.2%, 수도권 기준으로는 167.3% 급등하였다. 서울의 주택가격은 같은 기간 동안 182.7% 상승하였다.

가계 소득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의 가격이 이처럼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가계가 손쉽게 부채를 이용해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적으로 변화된 금융기관들의 영업형태 및 당시의 저금리 상황과 관련이 있다.

금융기관들은 당시 리스크가 높았던 기업대출이나, 수익이 낮은 저금리 채권에 대한 투자는 꺼리는 대신, 주택담보대출이 주가 되는 가계대출에 집중하였다. 이와 같은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중심 영업형태는 2000년 초부터 한자리대로 낮아진 금리수준과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 급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택가격 상승을 가져오게 되었다.

소득과 주택가격 사이의 괴리를 가져온 것이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주택수요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금융규제가 주택가격의 적정성 회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oan to Value Ratio, LTV) 규제와 총부채상환비율(Debt to Income, DTI) 규제의 강화가 필요하다.

LTV 규제는 담보 대비 과도한 대출을 억제할 수 있고, DTI 규제는 적절한 소득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조치는 앞서 지적된 부채의존적 주택수요를 낮추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또 금융회사별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정하여 강제하는 주택담보대출 총량 규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득 1분위의 경우,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상태이기 때문에 소득 흑자액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1분위를 포함한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자가보유촉진정책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주택재고의 5%에 미치지 못하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고 동시에 민간임대 부문에 규제를 강화하여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주거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새사연 부동산 정책팀은 새사연 연구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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