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경력 없는 신입 변호사들은 사지로…경기 한파 탓에 채용문 닫혔다
변시 5번 탈락한 ‘오탈자’ 매년 200명씩 발생…변호사 공급 예측 불가능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변호사 수 감축이 없다면, '인력 과공급'으로 법조 직역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A씨는 시사저널에 이같이 말했다. 변호사는 문과의 최상위 직업이라고 불리지만, 이들이 생활고를 호소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 건수는 2008년 약 7건에서 2021년 약 1건으로 급감했으며, 한 달 동안 한 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김정욱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접 자격사' 단계적 감축·통폐합한다던 정부는 어디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됐다. 변호사를 늘려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좋아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변호사들의 반발을 고려해 정부는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노무사 등 변호사 업무와 중첩되는 인접 자격사를 단계적으로 감축·통폐합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15년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변호사 시장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때부터다. 변호사들이 저가 수임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이는 곧 법률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국민 피해로 전가됐다. 학교폭력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피해자 측이 패소 확정판결을 받게 한 권경애 변호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변협에 따르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2009년. 1만 명 수준이던 국내 변호사 수는 지난해 3만6535명까지 늘었다. 변협이 우리나라 인구수와 인구 감소 추이, 법조 인접 자격사 제도의 유무를 고려한 해외 변호사 시장 수급 관련 통계 등을 반영해 자체 계산한 적정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는 약 1200명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배출된 신입 변호사 수 1745명을 고려하면, 약 500명 이상 감축해야 시장 수급 균형이 맞춰진다는 의미다.
신입 변호사들은 상황이 더 안 좋다. 업계에서 인기가 높은 중·대형 로펌과 부티크 로펌(규모보다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로펌) 등이 경기 한파를 이유로 채용문을 닫으면서다. 기업 사내변호사 취업도 쉽지 않다. 공공 기관 변호사 역시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보니, 경쟁률이 수십대 일을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선택지가 줄어든 신입 변호사들은 부족한 경력으로 개업을 택하거나, 변시를 준비할 때처럼 취업 준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형 로펌에 재직 중인 변호사 B씨는 "갈수록 신입 변호사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경기가 안 좋아지다 보니, 중·대형 로펌 취업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고 했다.
'로스쿨 결원보충제' 폐지·'변시위 구성' 재검토 대안으로 거론
정부가 2010년 당시 변시 합격자 수 결정 기준을 정할 때, 시험 재응시 비율을 예측하지 못해 오늘날의 문제가 생겼다는 비판도 있다. 변시에 다섯 번 떨어진 이른바 '오탈자'만 매년 200명 넘게 나타나고 있다 보니, 변호사 공급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욱 회장은 "변시 최소 합격 점수 공개와 로스쿨 인원 축소 등을 통해 변호사 공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 중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로스쿨 결원보충제를 폐지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원보충제란 로스쿨에 결원이 어제오늘 입학정원의 100분의 1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음 학년도에 그 인원만큼을 추가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결원보충제는 로스쿨 재정 유지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결원보충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법무부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이하 변시위) 구성도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찬성이 우세하다. 현재 변시위는 총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으나, 변호사는 3명에 그친다. 나머지 12명은 법학 교수 및 판사 등으로 현장의 실태를 체감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라는 게 변협 측 입장이다.
법조계의 오랜 숙제인 변호사 수 감축 문제 해결을 위해선 두 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법무부를 설득해야 한다. 법무부는 매년 9월경 변시 실시 계획을 공시하고, 이듬해 합격자 발표 당일 변시위 심의를 통해 합격자 수를 결정한다. 변협이 14일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변호사 배출 수 감축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민들에게 변호사 수 감축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형사 사건을 20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변호사 C씨는 "변호사 수 감축이 직역 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께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직역 보호를 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변호사의 공익적 책무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면 국민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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