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 동성로, 대구 최고 번화가로 부활하다

박세준 기자 2025. 4.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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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활력 넘치는 ‘동성로 르네상스’

●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젊음의 거리로 변신
● 버스킹 등 문화예술 공간 정비로 시민 관심↑
● 옥외광고 기준 완화로 다채로운 야경은 ‘덤’
● 대중교통 구간 해제, 주차 개선으로 접근성 확보
● 도심 캠퍼스 조성으로 대학생 즐겨 찾는 명소化

2월 24일 대구 중구 동성로를 채운 인파. 홍중식 기자
"인파로 혼잡 시 우측 보행."

서울 번화가에서나 만날 법한 안내 문구가 붙여진 곳은 서울에서 200㎞ 넘게 떨어진 대구 구시가지 동성로다. 2월 24일, 월요일 저녁인데도 대구 동성로는 '불야성'이었다. 밤 9시에도 문 닫은 가게를 찾기 어려웠다. 가게 종류도 다양했다. 직장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호프 등 가벼운 주점과 식당은 물론 오락실, 실내 스크린 야구장, 볼링장 등 가족 단위로 찾을 만한 가게도 많았다. 

동성로4길은 그야말로 젊음의 거리였다. 클럽이 밀집한 이곳에서는 주말 밤이면 음악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고 한다. 동성로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인 김모(37) 씨는 "동성로 클럽 밀집 지역에는 클럽과 헌팅포차가 여럿 있어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고 말했다.

지금은 동성로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대구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과도 같았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3분기(7~9월) 기준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9.82%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2020년 4분기(10~12월) 18.12%보다 높은 수치였다. 동성로 인근에서 10여 년간 요식업을 해왔다는 유모(52) 씨는 "동성로 임대료가 크게 올라 버티지 못한 상인이 하나둘 다른 상권으로 떠났다"며 "수성구의 수성못,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과 방천시장 등 다른 번화가로 주요 상권이 이동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구도심 동성로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동성로 르네상스'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대구 동성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 부산 서면과 함께 '한국 3대 상권'으로 각광받던 곳이다. 대구시는 과거 한국 3대 상권으로 각광받던 동성로 전성기를 재현하고, 나아가 문화·관광 중심지로 재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대구시는 동성로를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다양한 특례를 통해 동성로 재건에 나섰다.

대구 중구 동성로의 중심 광장 역할을 하는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홍중식 기자

대백 앞, 거리공연장으로 재탄생

동성로는 대구역에서 시작해 대구지하철 1호선 반월당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 중 실제 지역민들이 '동성로'라 부르는 곳은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반월당역까지다. 과거 동성로 중심은 대구백화점 동성로 본점(이하 대백)이었다. 지금은 대백 본점은 흔적만 남아 있다. 2021년 코로나19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한때 동성로의 랜드마크였던 대백은 흉물이 됐다. 백화점 건물은 불이 꺼져 초라한 외관만 남아 있다. 대구 중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47) 씨는 "지금은 국채보상로를 기점으로 대백이 있던 곳은 물론 중앙로역 지하상가에도 공실이 많다"면서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까지 가게가 가득 들어서 있었다"며 과거 화려했던 동성로 풍경을 설명했다. 

대구시는 대백 건물 인근에 새 랜드마크를 만들었다. 2022년 11월 문을 연 '동성로 28 아트스퀘어'가 그 주인공. 백화점 건물 앞 동성로 야외무대를 새 단장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동성로 28 아트스퀘어에서는 버스킹은 물론 다양한 거리공연이 열린다. 지난해에는 '2024 동성로 청년 버스킹'이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 예술가 50여 팀이 마술, 인디음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이곳에서 펼쳤다. 대구 지역 대학생도 참여했다. 경북대, 계명대, 계명문화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대구교대, 보건대, 경일대, 대경대 등 10개 대학 27개 동아리가 공연을 펼쳤다. 대구시 관계자에 따르면 일평균 410여 명의 시민이 이곳을 찾아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앞에서 만난 박모(21·여) 씨는 "대구는 물론 인근 지역 대학생들이 친구와 약속 잡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동성로 28 아트스퀘어"라며 "봄이 돼 날씨가 풀리면 이곳에서 열리는 공연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인근 지역을 옥외광고물 특정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옥외광고를 설치해 이곳을 새로운 동성로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것. 대구시가 벤치마킹한 사례는 뉴욕의 타임스퀘어다. 뉴욕 타임스퀘어처럼 다양한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주변 광고 전광판이 또 다른 볼거리가 되도록 만들 계획이다. 

트럼펫 둘, 트롬본 둘로 구성된 금관 4중주단 ‘빈 심포니 콰르텟’은 2024년 3월 18일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동성로 28 아트스퀘어에서 깜짝 버스킹 공연을 펼쳤다. 뉴스1

소규모 상가 공실률 2년 만에 3.7% 포인트 감소

동성로 28 아트스퀘어를 지나 반월당역을 향해 걸어가면 번화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거리 초입은 오락실과 볼링장, 스크린 야구장이 주를 이룬다. 늦은 시간이지만 가족 단위로 동성로를 찾은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근처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은 것으로 보이는 인형을 한두 개씩 안고 부모 손을 잡고 즐거이 길을 걸었다. 몇몇 아이들이 "조금만 더 놀고 가자"며 조르는 모습도 보였다. 

자녀와 함께 동성로에 나왔다는 정모(40) 씨는 "번화가는 취객이 많아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동성로는 다르다"며 "술집 밀집 지역과 떨어져 있어 취객을 만날 확률이 낮다"며 "대신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락장과 볼링장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옷 가게도 여럿 보였다. 국내 대형 의류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도 이 부근에 있다. 의류 브랜드 매장 앞이라 그런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동성로 인근 소규모 상가를 지원하며 상권이 살아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3년 무신사 스탠다드를 시작으로 지난해 7월에는 호텔신라와 대구시가 프리미엄 호텔의 동성로 진출 투자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대구시 집계에 따르면 동성로에 위치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2년 14.8%에서 지난해 11.1%로 3.7%포인트 줄었다.

이날 대구 동성로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 앞에서 만난 신모(25) 씨는 대구 동쪽에 위치한 경산시 주민이었다. 그는 "동네 친구들과 종종 동성로까지 외출 나온다"며 "젊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즐길 거리가 많아 거리가 멀어도 동성로를 즐겨 찾는다"고 밝혔다.

신 씨 일행 외에도 대구 외 다른 지역에서 동성로를 찾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부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대구까지 여행 왔다는 양모(32) 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동성로에) 즐길 거리가 많다"며 "다음번에 동성로를 다시 올 때는 근처에 숙소를 잡고 인근 술집에서 술을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씨를 만난 곳은 술집과 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인 '동성로 로데오 거리'였다.

동성로 28 아트스퀘어에서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음식점과 카페가 밀집한 거리가 나온다. 다채로운 음식점과 카페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거리 끝 무렵에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옥상에 놀이동산에서 자주 보던 관람차가 올라서 있다. 이곳은 동성로 실내 테마파크인 '스파크랜드'다. 이곳을 기점으로 다시 반월당역 쪽으로 방향을 틀면 동성로 로데오 거리가 나온다. 

대구 중구 동성로 로데오 거리에 위치한 ‘2030 맛의 골목’. 로데오 거리 골목마다 각양각색의 식당과 주점이 들어서 있다. 홍중식 기자

도심 캠퍼스, 청년 아지트로 동성로에 '젊은 피' 수혈

대구 중구 서문로에 위치한 ‘동성로 도심 캠퍼스 1호관’. 홍중식 기자
동성로 로데오 거리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직장인 최모(29·여) 씨는 "동성로로 오는 길이 편해졌다"며 "1~2년 전만 해도 주차할 곳이 없어 동성로보다 다른 곳에서 친구들을 주로 만났는데, 최근에는 주차 공간이 늘어나고 차도 덜 막혀 동성로를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동성로 주차난과 교통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2023년 11월 대구역 사거리부터 중앙사거리에 이르는 0.45㎞의 대중교통전용구간을 해제한 것. 동시에 도심 주차 상한제도 해제했다. 도심 주차 상한제는 주차면 수를 법정 주차대수의 80%로 제한하는 조치다. 주차 상한 해제로 20%의 주차 공간이 늘어난 셈이다. 

젊은 층이 동성로에 모이는 이유는 또 있었다. 대구시는 동성로 인근에 '동성로 도심 캠퍼스'를 열었다. 대구권 15개 대학과 협약을 맺고 각 학교의 일부 강의를 동성로 도심 캠퍼스에 개설했다. 해당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레 동성로 인근에 모이게 된다. 도심 캠퍼스가 동성로에 젊은 유동 인구를 유입하는 플랫폼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대구시는 중구 서문로에 '동성로 도심 캠퍼스 1호관'을 연 데 이어 11월에 중구 북성로에 '도심 캠퍼스 2호관'을 열었다.

2월 25일 아침 찾아간 동성로 도심 캠퍼스 1호관은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과 광복 후 1950년대 조성된 한옥이 이어진 구조로 대구시가 자체 매입한 건물이다. 한옥 부분은 강사 대기실과 캠퍼스 사무실, 학생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고, 적산가옥 부분이 강의실이다. 동성로 도심 캠퍼스 담당자는 "도심 캠퍼스의 독특한 분위기와 동성로가 가깝다는 이점 덕분에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며 "학기 중에는 도심 캠퍼스에서 강의를 듣고, 강의가 끝나면 동성로로 향하는 학생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심 캠퍼스 2호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윤모(58·여) 씨는 "북성로는 장년층이 주로 모이는 곳이었는데 도심 캠퍼스 개관으로 젊은 층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며 "동성로의 번화한 분위기가 대구역 인근 북성로까지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대구시는 동성로 인근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청년과 관광객이 모일 수 있는 시설로 바꿔나가고 있다. 2023년 11월에는 중구 경상감영길에 청년 예술 창작인 아지트인 '무영당'을 열었다. 6·25전쟁 당시 대구에 피난 온 예술인들이 모이던 '대지바'(대구 중구 북성로)는 2024년 3월 '한국전선문화관'이 됐다. 한국전선문화관은 6·25전쟁기에 피어난 문화·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중구 북성로에 위치한 옛 경북문인협회 건물은 올해 8월까지 대구시 소상공인 지원 시설인 '라이콘타운 대구'로 바꿀 예정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동성로는 물론 그 주변부 공원(2·28 기념중앙공원) 재조성 사업, 거리 및 광장 재조성 등을 통해 대구 중구가 대구 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나도록 할 계획"이라며 "대구시민은 물론 타 지역 사람까지 대구에 놀러 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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