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멍 들게 맞고 응급실 갔다 왔는데, 당장 일하라는 사장
[고기복 기자]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던 황하가 천천히 모자를 올리고 마스크를 벗자, 잔뜩 부어오른 눈두덩이 위아래로 시커먼 멍과 함께 목과 귀, 머리 쪽에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얼굴을 드러낸 황하는 이어 발갛게 멍든 손목과 무릎, 부어오른 팔뚝을 차례로 내밀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대체 어떻게 폭력을 휘둘렀기에 온몸이 멍투성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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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면부와 목, 귓등에 폭행당한 흔적 위아래로 부은 눈 주위에 멍이 들었고, 목과 귀, 옆머리 등에 상처가 남아 있다. |
| ⓒ 고기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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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목에 생긴 멍 지게차에 밀어서 목을 조르자, 밀쳐내려고 하는 황하의 손목을 H 부장이 움켜쥐면서 생긴 멍이다. |
| ⓒ 고기복 |
직장 동료에게 안면부 가격 당하고, 목을 졸린 이후 발생한 안면부의 통증 및 부종, 경부의 찰과상 주소로 내원
그날 밤, 황하는 사장의 눈을 피해 인근 파출소에 가서 상해 피해를 호소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기에 앞서, 사장은 황하에게 이 일로 근무처 변경을 하면 이직 횟수 초과로 불법 체류가 되기 때문에 가해자와 화해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사장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의 동의가 없으면 이직할 수 없다는 규정을 악용했다. 고용주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임금체불 등 극히 제한된 사유에만 이직이 허용되고, 3년간 최대 3회까지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폭력, 착취, 차별에 노출되어도, 침묵을 강요당한다. 사장이 "이 일로 근무처를 옮기면 이직 횟수 초과로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협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하는 침묵할 생각이 없었다.
사과했다며 상해 사건을 덮으려 한 사장, 피해자 외면한 경찰
경찰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사장은 상해 가해자인 부장에게 황하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경찰은 돌아갔다. 사장은 경찰에게 양측이 화해하여 모든 일이 원만하게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황하는 부장을 처벌하기를 원했고,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사측에 대해서도 책임 묻기를 원했다. 피멍 든 부위도 문제지만, 음식을 씹을 수 없을 정도의 턱밑 통증과 부장과 같이 일해야 한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하는 경찰이 도와줄 거라 기대했지만, 사측의 말만 듣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돌아갔다며 의아해했다. 진단서가 아니더라도, 온몸의 피멍 자국들은 단순 폭행이 아닌 상해 사건임을 말하고 있었는데도, 경찰은 번역기를 돌려서 몇 가지를 묻고는 돌아갔다.
현장에 출동했던 파출소 측은 사건 현장에서 번역기를 돌려서 황하와 소통했다고 했다.
"폭행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은 맞다. 회사에 가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말에 의하면 외국인이 먼저 때려서 때렸다고 하더라. 외국인이 딱하기도 해서 먼저 때린 게 맞냐고 번역기로 물었는데 그렇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 건은 쌍방폭행이기 때문에 형사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더니, 자기한테 사과하고 각서 쓰면 용서하겠다고 하더라. 남자가 무릎 꿇고 사과하길래 돌아왔다."
이에 대해 황하는 번역기가 엉터리 번역을 했다고 주장했다.
"먼저 때린 적도 없고, 맞기만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CCTV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확인하지도 않았다. H 부장이 무슨 이유인지 나를 지게차로 밀어넣고는 얼굴, 눈,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내가 땅바닥에 넘어졌을 때는 목을 졸랐다. 구글 번역기로 왜 나를 때렸느냐고 물었는데, H부장이 막 화를 내며 장갑을 나한테 던졌다. 내가 때렸다면, H부장이 나에게 장갑을 던졌을 때, 나도 장갑을 H부장 얼굴에 던진 걸 말하는 것이다. 너무 무섭고 정신이 없어서 장갑을 되던졌을 뿐인데, H부장은 내 머리와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H부장 손아귀에서 죽을 힘을 다해 빠져나와, 사장님께 전화했다. 약 5분 후, 사모님과 사장 아들이 왔고, 경찰 신고하지 말라고 했다. 많은 말을 했다. 나를 방에 부축해 들어갔고 얼음찜질을 해줬는데, 세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사건 소식을 듣고 도움을 자청한 공익 변호사는 "폭행과 상해 사건이 다르고, 쌍방이라 해도 폭행의 경중이 다른데, 화해했다고 그냥 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경찰 대응이 합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
경찰과 대화하는 동안 황하에게 기숙사에 가 있으라던 사장은, 경찰이 떠나자 곧바로 일하라고 시켰다. 황하의 사례는 결코 특이 사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에게 법적으로 내국인과 동등한 노동권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주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닌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받고, 사업장 이동 제한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한국 정부에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와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을 수차례 권고해 왔다. 20년 넘게 아무리 "이주노동자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들의 고통에 눈감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라고 외쳐도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현장이 얼마나 이주노동자 인권에 둔감한지는 고용노동부 용인고용복지플러스센터가 보여주었다. 담당직원은 "고용주의 상해 행위가 아닌 직원의 우발적인 행위로 발생한 사건이라 고용변동 신고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이직신청을 접수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사고업체가 몇 명이 근무하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근로문화개선지도과에 가서 사내 괴롭힘을 입증 받아 오면 접수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황하의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없는 5인 미만 업체다. 엉터리 안내를 하고서도 담당자는 "우리가 사측에 고용해지를 요구할 순 없지 않느냐"며 최소한 가해자와 분리조치를 요구하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외국인고용허가제법 제5조 3항은 폭행 등의 인권침해에 대해 고용센터에서 직권 해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폭행, 상해 사건은 경찰에 고소해서 피해 사실을 확인받아야 하나, 사실관계가 분명할 때는 경찰 조사가 끝나기 전에 임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용센터는 피해자인 이주노동자에게 피해를 받아들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침묵을 강요한 셈이다.
황하는 어쩔 수 없이 용인동부경찰서에 상해 사건으로 고소장을 접수하고 사장에게 연락했다. 사장은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경찰 앞에서 둘이 잘 화해해 놓고, 뭔 고소야.... 0 기사 집안일 때문에 퇴사해서 배달할 사람이 부족해서 힘들고, 너도 일 못해 포장이 안돼서 힘들다. 0 부장한테는 너한테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고, 본인도 다시는 이런 일 없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돌아와서 같이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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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장이 황하에게 보낸 문자 직원 관리 책임이 있는 사장은 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피해자를 원망했다. |
| ⓒ 고기복 |
덧붙이는 글 | 1. 황하의 이직 신청 접수를 거부했던 용인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황하가 국민권익위 진정 후, 이틀이 지나서야 황하의 진정서를 수리하고, '임시'로 이직 신청 접수를 받았다. 2. 외고법 제5조 3항은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는 부당한 처우 등에 해당하는 사유'에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 등 사용자의 관리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 직장 동료, 사업주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으로부터 성희롱, 성폭력, 폭행, 상습적 폭언 등을 당함으로써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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