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악마" "전쟁은 광기"... 교황 자서전 판매량 10배 늘었다

송옥진 2025. 4. 2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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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공식 자서전 올해 연달아 출간
이민자 가정서 전쟁, 폭력 겪으면서
폭력에 반대하고 늘 약자의 편에 서
피자, 축구 좋아한 교황의 소탈함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0년 7월 자서전 '희망'의 원고마다 사인을 하고 있다. 가톨릭출판사 제공

"당시 아르헨티나를 탈출해야 하는 한 소년을 돕게 되었어요. 그 소년은 저와 꽤 닮았더군요. 그래서 그에게 사제복을 입힌 뒤 제 신분증을 가지고 탈출하라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0일 출간된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털어 놓은 일화다. 때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쿠데타로 시작된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 시절(1976~1983년).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일하던 30대의 프란치스코 교황(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은 목숨을 위협받던 한 소년의 아르헨티나 탈출을 도왔다. 아르헨티나는 당시 사제여도 납치해 고문,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그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군부 독재 정권은 누구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만 하면 무조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었고, 그를 포함해 빈민 운동을 하던 사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황은 "독재는 악마 같은 것입니다. 저는 제 동료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몹시 불안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폭력 반대하고 소외된 자 보듬은 교황의 면모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서점에 22일, 전날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이 진열돼 있다. 강예진 기자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올해 3, 4월 출간된 교황의 공식 자서전 '희망(가톨릭출판사)'과 '나의 인생(윌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3일 가톨릭출판사 측은 "'희망'은 교황님 선종 전과 비교해 판매량이 10배 이상 늘었다"며 "선종 이후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교황이 남긴 마지막 '영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황의 생애와 그의 철학을 담은 책을 통해 전쟁과 독재 등 폭력에 반대하며 소외된 자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모습을 되새길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해 태아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 연합뉴스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희망'의 프롤로그는 1927년 10월 11일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출발한 배 마팔다호의 침몰 사건으로 시작한다. 마팔다호는 1,0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가다가 침몰해 300여 명이 숨진 '이탈리아의 타이태닉' 사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부모도 자녀들(프란치스코의 아버지)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위해 이 배의 표를 구입했었다. 하지만 자산을 제때 처분하지 못하면서 배를 다행히 못탔다. 교황은 "이런 우연으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서전 '희망'을 위해 제공한 어린 시절 사진(왼쪽)과 교황이 사인한 책(원제 SPERA)의 표지. 사진은 교황이 1938년 어머니와 남동생 오스카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가톨릭출판사 제공

'마팔다호의 비극'을 듣고 자란 교황은 자연스럽게 이방인의 정서를 갖게 됐다. 교황이 된 후 바티칸을 벗어난 첫 여정으로 람페두사섬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책에선 "지중해의 이 작은 섬은 이주민의 비극과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해상 묘지가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는 "아버지와 조부모님은 수많은 이탈리아인처럼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모든 것을 잃으셨다"며 "저 역시 오늘날 버림받은 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기에, 제 마음속에는 늘 이런 절박한 물음이 맴돈다"고 말했다. '왜 내가 아니라 그들인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며 평생 낮은 곳에 임한 교황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책에서 교황은 "전쟁은 광기"라고 단언하며 무력과 증오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어린 시절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조부로부터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은 영향이 컸다.


"나는 뼛속까지 도시인... 야외 피자 그리워"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8년 12월 바티칸의 바오로 6세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81세 생일 축하 피자에 꽂힌 촛불을 끄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책에는 축구와 피자를 좋아했던 '파파'의 인간적인 면모도 담겼다. '희망'에는 "(피자는) 제게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며 "사실 밖에서 피자 먹는 일이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교황은 스스로를 "뼛속까지 도시인"이라고도 했다. 그는 "거리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도시의 모든 것이 좋다"며 "지상과 지하, 거리와 광장, 선술집도 좋고, 특히 야외에서 먹는 피자는 배달 피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교황은 축구 명가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축구 팬으로도 유명했다. '나의 인생'에선 아이들이 헝겊으로 만든 공으로 거리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고귀하다" "스포츠는 단순하지만 아이들을 타락에서 구할 수 있다"고 전한다. 책에는 1986년 6월 22일, 독일 유학 중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서 마라도나의 '신의 손' 경기를 지켜봤던 일과 교황이 돼서 만난 마라도나에게 "그래서, 누구 손이 유죄인가요?"라고 물었던 일화도 담겼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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