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통 그런 모습 처음" 20년 넘게 회자되는 노무현·김장하 짧은 만남

윤성효 2025. 4. 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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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 계기로 다시 회자...만남 성사시킨 김성진 전 행정관의 술회

[윤성효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 김장하 선생(오른쪽)
ⓒ 노무현재단/시네마달
"딱 한 번, 그것도 20~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던 두 분의 만남인데, 20년도 훨씬 지나서 사람들한테 좋은 느낌으로 전해지는 걸 보니 정말 놀랍기도 하고, 희한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성진(61) 전 청와대 행정관(참여정부)이 지난 22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털어놓은 말이다. 그가 거론한 두 사람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진주 김장하(81) 선생을 말한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선고한 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그에게 장학금을 주었던 김장하 선생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끌고있다. 김장하 선생 이야기는 2022년 말 MBC경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아호를 딴 남성(南星)당한약방을 1972년부터 2022년까지 50여 년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여러 시민사회와 교육에 지원을 해왔다. 1983년에는 명신고를 설립해 1991년에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그는 시민주로 만들었던 옛 <진주신문>의 최대주주이며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 경상국립대 발전후원회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지리산생명연대 공동의장 등을 지냈고, 진주오광대 복원과 진주가정법률상담소 설립 등에 나섰으며, 1995년부터 27년간 운영된 진주(신문)가을문예 기금을 출연하기도 했다.

김 선생은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내놓았는데 장학금을 받은 학생 수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2000년 설립했던 남성문화재단을 2021년에 해산하면서는 남아있던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에 기부했다.

김 선생은 장학금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사업을 하면서 한번도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고, 언론사 인터뷰도 거부해왔다. 김 선생은 1995년 첫 민선 진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이 내부 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진주시장 시민후보로 추대하려 했지만, 그가 제안하러 온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나지 않고 자리를 피해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또 시민들이 경상남도문화상, 진주시문화상, 경남교육대상에 추천하려 해도 못하게 하거나 '본인이 싫다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라며 극구 사양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김 선생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그의 삶이 조명받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선생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도 언론에서 다루어질 정도다.

노무현-김장하, 단 한번의 만남은 어떻게 성사됐을까
 김성진 전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
ⓒ 윤성효
김성진 전 행정관은 "요즘 몇몇 언론과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김 선생과 노무현 대통령 관련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이가 들어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오마이뉴스>에 밝혔다.

김 전 행정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경남 담당 보좌역이었다. 그는 "창원마산에 살다가 진주에 자주 드나들었고, 고 박노정 선생과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를 통해 김장하 선생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라며 "노통(노무현 대통령)께서 진주 방문 일정이 있어 김 선생을 만날 수 있도록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정치인을 잘 안 만나시고 오히려 자리를 피해 버리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노통께 '진주에 가서 만나야 할 분이 계신다'며 이름을 말씀 드렸더니 처음에는 '누구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한약업사이신데 지역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전혀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면서 묵묵히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명신고 기부채납 등 몇 가지 사항을 적어 드렸더니, '알겠다'고 하시더라."

그는 "김 선생께 미리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드리면 피해버리실 거 같았다. 그래서 한약방에 계신다는 사실만 확인이 되면 바로 들어가려고 했다"라며 "당시 노통이 도착하기 30여 분 전에, 옛 <진주신문> 기자를 통해 김 선생께서 한약방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노통이 도착을 해서 바로 들어갔다"라고 기억했다.

이때가 2001년 초가을이었다. 그는 "노통을 모시고 한약방 안으로 들어갔더니, 김 선생께서 자리에 앉아 계시다가 알아보시고는 일어서시면서 첫 마디가 '어쩐 일입니까'라 하셨고, 노통은 좀 쑥스러워 하는 몸짓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찾아 뵈었습니다'라고 하시더라. 그러자 김 선생께서는 '바쁜 길에, 이왕 오신 김에 차나 한 잔 하고 가시죠'라고 하시면서 서너명이 들어갔고 비좁은 응접실로 가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전했다.

"첫 대화는 건강 이야기부터 했던 것 같다. 김 선생께서 '바쁘게 다니셔야 할 건데 건강은 어떻습니까'라 하셨고, 노통은 '그냥 즐겁게 사람들 만나고 다니니까 특별히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라 하셨던 것 같다. 정치나 사회, 경제, 문화 등에 대한 거론은 없었다. 그냥 대화는 밋밋한 이야기 정도였다. 마지막에 김 선생께서 '대통령이 되시면 남북문제며 빈부격차 등 여러 난제들이 많은데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는 당부를 하셨다. 노통이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치 등 무거운 주제 없이, 그날처럼 일상적인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걸 처음 봤다."

짧은 만남을 한 뒤 김 선생은 노무현 후보를 한약방 문 앞에서 배웅했다. 노무현 후보는 타고 가야 할 차량이 도로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잠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노 후보는 김 전 행정관에게 '참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라며 감사 인사를 했다고 한다.

"노통이 횡단보도 앞에 서더니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셨다. 그러면서 '성진씨, 오늘 참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세상 일 다 아는 것처럼 가르치고 훈수 두고 온갖 잔소리를 다하는데, 저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 좋은 분인 것 같다'라고 하시면서 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셨다."

"노통이 경남에 와서 사람들 만났을 때 거의 대부분 같이 했다. 노통이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셨는데, 만나는 시간 동안 내내 경청하는 자세를 보인 사람은 김장하 선생과 창원에서 만난 한 기업인을 포함해 딱 두 분뿐이다. 노통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고, 그랬다 보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초대에는 단칼 거절... 서거 뒤에 박석으로 추모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의 박석.
ⓒ 윤성효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인수위 시절, 국무총리·장관 후보를 국민 추천으로 받았을 때, <내일신문>은 '이런 사람이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라며 김 선생의 사진을 넣어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김장하 선생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김 선생이 응하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김 전 행정관은 술회했다.

"2003년 2월 취임하고 나서 그해 5월 내지 6월로 기억된다. 그때 저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었을 때 제1부속실장한테서 전화가 와서 'VIP(대통령)께서 김장하 선생을 청와대로 모셔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신다'고 전해 왔다. 그래서 전화로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직접 찾아 뵙고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청와대는 격주 근무라 토요일에 진주로 가서 한약방으로 찾아갔다.

처음에 들어가면서 '박노정 선생-여태훈 대표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노 대통령 모시고 왔던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더니 '알겠다'고 하시더라. '어쩐 일이냐'고 하시길래 '대통령께서 청와대에 모시고 식사를 하고 싶다고 전해 달라고 해서, 편하실 시간이나 서울 오실 일이 있으면 맞춰 보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머뭇거리지 않으시고는 단칼에 '대통령께서 만날 사람도 많고 바쁠 건데 뭐한다고'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러시면서 '말씀은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평소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씀을 듣고는 덧불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와대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장하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을 생전에 만나지는 못했고, 서거 뒤 봉하마을 묘역에 조성된 박석에 참여하며 고인을 기렸다. 고 노 전 대통령 측은 '국민 참여 박석'을 조성했고, 고인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 빠지면 안 된다고 해 김 선생을 챙겼던 것이다.

봉하마을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전 지사가 당시 김 선생의 손전화 번호를 알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전했고, 문 전 대통령이 김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박석 조성 취지를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하 선생은 봉하마을 묘역 박석 2개의 기금을 내고 참여했다. 돌에는 "희망과 소신으로 이루고자 하신 일 가슴에 새겨둡니다. 김장하 두손 모음"이라고 새겨져 있다. 김 선생의 봉하마을 묘역 박석 참여는 <어른 김장하>에 담겨 있지 않다.

김성진 전 행정관은 "김장하 선생이 워낙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러웠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만나고 나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오래 남아 있다"라며 "두 사람의 짧은, 한번의 만남이 이렇게 오래 기억될 줄 몰랐다. 두 분의 삶이 주변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력으로 번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의 박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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