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한 美 국채…중국 때문일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4.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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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 관세 전쟁…금융 시장 살얼음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 상호관세 발표와 맞물려 채권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매(금리 상승) 현상이 벌어져 그 배경과 여파를 두고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미증유 관세 전쟁으로 위험 회피 심리(Risk-off)가 강하지만,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가격 하락)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이례적 현상이 빚어진 것.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 정부 재정적자부터 외국계 헤지펀드의 채권 포지션 청산까지 여러 해석이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채권 시장 ‘발작’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기업 자금 조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실물경제에 연쇄 감염을 불러올 가능성을 우려한다.

미 10년물 금리 고공행진

23년 만에 최대 상승

4월 채권 시장에서는 이례적 현상이 펼쳐진다. 지난 4월 초 연 3.8%대에서 움직이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최근 연 4.3~4.5% 구간에서 움직인 것이다.

지난 4월 7일부터 10일 사이 5거래일 주간 상승 폭은 0.5%포인트(50bp)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23년여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고 일본 닛케이는 강조했다. 미국 10년물 채권값이 폭락했다는 의미다. 채권은 분자인 현금흐름이 고정돼 있는 반면, 분모인 시장 금리는 자꾸 변한다. 이런 이유로 채권 가격과 금리는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

미 국채 10년물은 세계 금융 시장에서 무위험금리(Risk-Free Rate)의 바로미터다. 기업·국가·개인 등 경제 주체 자금 조달 금리, 주식 가치 평가, 파생상품 할인율 등이 미 10년물 금리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글로벌 안전자산의 ‘아이콘’ 같던 미 국채 가격이 단기간에 이 같은 변동성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채권 시장 관계자는 “한때 미 국채 10년물이 4.5%까지 급등했는데, 이는 주식으로 치면 말도 안 나올 수준의 투매”라며 “매도는 쏟아지는데 매수는 사라져 마치 2020년 3월 팬데믹 때처럼, 시장의 가격 형성 기능이 마비된 듯싶었다”고 돌아봤다.

배경으로는 다중 요인이 지목된다.

첫째, 미증유 관세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고착화 우려다. 미국이 무차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종국에는 수입물가가 뛴다. 경기가 좋아 물가가 오르는 게 아니라 관세 탓에 빚어진 인위적 비용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실질소득 하락으로 가계 부담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통화 정책 딜레마가 빚어진다는 데 있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높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 입장에선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는 채권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채권 시장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을 빠른 속도로 반영하면서 ‘현 금리 수준에 이런 위험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확산할 수 있다. 결국 시장에서는 ‘국채 금리가 너무 낮다’는 인식이 삽시간에 번졌고 이는 채권 시장 ‘발작(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단 분석이다.

둘째, 이 같은 우려와 맞물려 채권에 투자한 글로벌 헤지펀드의 포지션 청산이다. 채권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베이시스 트레이드’라는 이름의 낯선 전략을 편다. 베이시스는 ‘현물과 선물 간 가격 차이’를 뜻한다. 이를 이용해 차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오늘 미국 국채 현물 가격이 98달러다. 같은 국채의 3개월 선물 가격은 99달러다. 선물이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상태로 이 경우 베이시스는 -1달러(98-99)다. 이때 헤지펀드는 채권 현물을 매수하면서 동시에 선물 매도 포지션을 취한다. 또, 선물 만기일이 되면 현물과 선물 가격은 일반적으론 거의 같아진다(Convergence). 즉, 선물 매도 가격(99달러)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3개월 뒤 현물 가격이 올라 99달러에 수렴하므로 차익 1달러를 비교적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레버리지다. 1bp(0.01%) 차익을 노리므로 레버리지가 없으면 이 전략은 무의미하다. 이 탓에 채권 차익 거래 땐 수익률을 높이려 대체로 50배 안팎, 많게는 100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킨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 채권 금리가 급등(가격 급락)하면 차입 배율만큼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표면적으로는 금리 급락에 과하게 베팅하다 포지션이 청산당하면서 투매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가격 민감도가 가장 높은 30년이 가장 심각한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관세 직격탄을 맞은 중국이 미 정부를 압박하려 대규모 국채 매도에 나섰다는 추측도 나온다. 중국이 미국 채권을 팔면 장기금리 상승 압력이 거세 미 정부 이자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 미 재무부가 공개한 지난 1월 지표에 따르면, 중국은 미 국채를 7608억달러 보유해 일본(1조793억달러)에 이어 2위다. 중국은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있지만 변화 속도는 점진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채권 시장 관계자는 “중국이 협상력을 키우려 미 국채를 투매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만으로도 투자자들은 미 국채 외 다른 대안을 모색할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물경제 전염 우려

채권평가손 우려도

무엇보다 작금의 글로벌 금융 시장 불안엔 트럼프가 방아쇠를 당긴 관세 전쟁으로 기축통화로서 달러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시각이 확산한 결과로 분석된다.

미국은 수십년간 무역적자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이는 세계 경제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퍼뜨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미국 무역적자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는 무역흑자가 된다. 한국 등 세계 각국은 자유무역으로 수십년간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금융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제조업 경쟁력 후퇴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소비를 기반으로 고도 성장을 누린 배경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이 관세를 높여 무역적자를 줄이면 이런 선순환 구조는 금이 간다. 다른 국가로 달러 공급이 급감(무역흑자 축소)하고 이는 종국에는 달러 패권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단 의미다. 미국 채권 수요가 줄고 금리가 급등한 것엔 관세 전쟁이 달러 패권을 흔들 수 있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복합적인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채권 시장 ‘발작’이 실물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시장 일각에선 나온다. 통상 BBB 등급 회사채 가산금리(스프레드)는 미 10년 국채 기준 평균 1.5~2%포인트 수준으로 파악된다. 미 채권 금리가 4%에서 4.5%로 상승할 경우 회사채 금리는 6% 이상으로 뛴다. 운영자금 조달이 사실상 고금리 대출 수준으로 변질될 수 있단 의미다. 이는 설비투자 축소로 이어져 생산능력 제한 → 고용 위축 → 성장 둔화의 연쇄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단 분석이다.

채권 포지션이 많은 국내 은행권에서는 채권평가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은행권 채권평가손 확대는 자기자본비율(BIS) 악화로 이어져 기업대출 회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가중자산 등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며 “채권평가손이 확대될 경우 기존 대출 일부를 회수할 수 있고 신용이 안 좋거나 담보가 명확하지 않은 회사는 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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