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때문만이 아니었다”…지난해 사상~하단선 싱크홀, 부실 공사에 무너져 차 빠진 땅

이승륜 기자 2025. 4. 22. 10:3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감사 결과 관리 부실 드러나…“집중호우만 탓할 수 없는 사고”
토류판 설치 엉망, 차수공사 불량…배수로 연결도 부실 시공
“시공·감독 모두 실패”…부산시, 안전관리 대책 강화 약속
지난해 9월 부산 사상구 도로에서 배수 지원 차량과 5t 트럭이 싱크홀에 빠졌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부산=이승륜 기자

지난해 9월 부산 도시철도 사상~하단선 공사현장 2공구 초입에서 차량 빠짐이 발생한 싱크홀(지반침하) 사고는 집중호우뿐만 아니라 공사 과정의 관리부실도 주요 원인으로 확인됐다.

부산시 감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2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건설사업’에 대한 특별 점검을 실시하고, 22일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위는 시정이 필요한 사항 2건, 주의 조치가 필요한 사항 4건, 통보 조치 4건 등 총 10건의 행정 조치와 훈계 11건, 주의 22건 등 총 33건의 신분상 조치를 내렸다. 또 공사비 일부인 11억5900만 원을 깎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시공사와 공사 관리업체에는 잘못에 따른 벌점을 부과하라고 부산교통공사에 통보했다.

앞서 지난해 9월 21일 오전 8시 50분쯤 사상구 학장동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에 달하는 싱크홀이 생겨 소방 배수 지원 차량과 5t 트럭이 빠졌다. 감사위는 당시 사고가 379㎜나 되는 많은 비가 내리면서 발생했다고 봤다. 하지만 비뿐만 아니라, 땅속으로 물이 새지 못하게 하는 ‘차수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흙이 무너지지 않게 막아주는 ‘토류판’을 잘 고정하지 않은 점, 빗물이나 지하수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측구’의 연결 부분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은 점 등 여러 내부 문제도 사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사고는,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빗물이 흘러가는 통로인 U자 모양의 ‘측구’가 부서지면서 물이 주변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이 때문에 지하에 설치돼 있던 목재 ‘토류판’(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나무판)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점점 더 큰 범위의 땅이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를 관리하는 업체가 차수공사 품질시험을 하도급 업체가 규정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공사 작업을 진행하도록 허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땅속으로 물과 흙이 새어나가 굴착 작업이 어려워졌고, 땅이 불안정해졌다.

공사 발주처인 부산교통공사는 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공사에 공정을 빨리 맞추는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지만, 실제로 대책이 잘 만들어지고 실행됐는지는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또 새로운 공법을 쓰기 어렵고 추가 예산을 받기 힘들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공사 진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넘어갔다.

공사를 맡은 시공사와 이를 관리하는 기관은 땅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막는 ‘차수공사’의 품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세워야 할 ‘토류판’ 설치도 엉성했다. 토류판을 더 단단히 고정하거나 필요한 경우 박는 ‘엄지말뚝’도 설치하지 않았다. 공사 구간이 넓어지는 부분(‘확폭구간’)에서는 필요한 설계도면을 작성하거나 검토하지 않아, 제대로 시공하지 못했다. 또 배수로 연결 부위를 부실하게 만들어, 빗물 흐름이 막히는 문제도 있었다.

이러한 잘못들에 대해 감사위는 관련자들에게 훈계와 주의 조치를 하고, 시공사와 관리업체에는 벌점을 부과하도록 했다.

감사위는 또 차수 공사가 완료된 지 3년이나 지나면서, 원래 물을 막아야 할 차수재(물막이 자재) 성능이 떨어진 것도 문제였다고 봤다. 또 차수공사를 할 때 물이 얼마나 잘 막히는지를 재는 수치(투수계수)가 기준보다 나빴는데,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한 것도 드러났다.

공사 도중 설치한 복공판(공사 현장 위를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임시로 덮어놓은 철판) 아래 1.5m 깊이까지는 원래 물막이 설계를 반영했어야 했지만, 이런 설계가 빠져 있었고, 토류판 고정도 허술했으며 엄지말뚝도 설치되지 않았다.

폭우 때 땅꺼짐이 발생한 지점의 배수로(측구)와 금속관(파형강관) 연결 부위는 맨홀(점검구)도 만들지 않은 채 시공돼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밖에도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공사 관리 기술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공사 완료 후 환경영향조사 보고서도 부실하게 작성됐으며, 설계와 시공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량기지(전동차가 주차·수리되는 곳) 공사에서는 콘크리트 양을 부풀려 계산하거나, 방수 작업 시 재료를 중복 계산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터널 부대공사에서는 전기·기계 분야 공사비를 정할 때 총액만 대충 잡아놓고, 세부 변경 사항이 생겨도 이를 설계 변경하지 않아 부당한 돈이 지급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이 부분을 감액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또, 공사 진행이 계획보다 5% 이상 늦어지면 그 이유를 분석하고,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도 이런 절차를 소홀히 한 점 역시 지적됐다.

윤희연 부산시 감사위원장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통해 땅꺼짐 사고가 단순히 비 때문만이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시공사와 관리업체가 품질, 안전, 시공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부산교통공사의 지도·감독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이어 “이번 감사를 계기로 시가 안전 관리체계를 더욱 강화해 앞으로 비슷한 사고를 예방하는 데 힘쓸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륜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