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기 쓰레기 있어요" 하던 아이들이 변했어요
[문수아 기자]
*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기사 보기 https://omn.kr/2d1c8 ).
"날랑 바담 풍 하더라도 널랑 바담 풍 해라."
훈장님이 바람 풍을 가르치려는데 혀가 짧아 자꾸 '바담 풍'이 된다.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바람 풍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들리는 데로 계속 바담 풍이다.
옳은 것을 알고,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고 편리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교사이기에 아이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퇴근길에 카페에서 텀블러를 내미는 일조차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면서 정작 교사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훈장님의 '바담 풍'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약속을 정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100년을 쓰지 않을 물건이라면 비닐 코팅은 하지 않는다. 코팅은 편리하고 활용도가 높지만, 코팅된 종이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소각 시 다이옥신,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같은 유해 물질이 발생하고, 매립 시에는 수백 년간 분해되지 않아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아 생태계를 위협한다. 꼭 필요한 경우 재활용 가능한 클리어 파일을 사용하거나, 두꺼운 종이를 활용하여 안내판을 만든다. 놀다 버린 상자를 잘라 안내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원에서 사용하는 물품은 되도록 비닐 포장이나 과대 포장이 없는 제품을 선택한다. 교재를 주문했더니 여러 겹의 비닐포장이 됐다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닌 데도 교사들의 지탄을 받았다. 유아용 교재도 이제는 환경을 고려해 생산하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물건을 낭비하는 아이들을 위해 반에 직업을 만들었다. 비서, 외교관, 학급 공무원, 책상 관리사, 탐정, 기상캐스터 등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월급을 받아 필요한 학용품을 직접 구매한다. 스스로 돈을 벌어 물건을 사게 되니 이전보다 훨씬 아껴 쓰게 됐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처음에는 "선생님, 저기 쓰레기 있어요!"라고 알려주던 아이들이 어느새 함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냄새나는 쓰레기까지 주워 오는 아이들을 위해 산책 주머니에 작은 집게를 넣어 다니게 됐다.
재활용을 생활화한다. 전 교사가 연수를 받으러 갔을 때, 강당 한 귀퉁이에서 우리 원 교사들이 남들이 버린 빈 생수통과 도시락을 모으고 있었다. 수업에 필요한 재료들을 잔뜩 버려뒀으니 신이 난 것이다. 큰 강당 한 가득 몇 백명이 모인 틈에서 나는 좀 민망했다. 냉장고 박스나 세탁기 박스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동네에 전자제품 배송 차량이 주차하면 우리 원 식구 중 누군가가 꼭 그 앞에 서 있다. 소문이 나서 부모님들이 일부러 어린이집 마당에 박스를 놓고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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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료 주문하러 가는 길 즐거운 금요일 오후, 카페에 음료를 주문했다. |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
선물 포장을 간소화한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 가정에서 보내는 선물은 화려한 포장 대신 간단한 띠를 두르거나 끈으로 묶고 정성껏 쓴 카드를 붙인다. 포장이 소박하다고 해서 정성이 부족하거나 선물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들도 이러한 원칙을 잘 이해하고 협조해 주신다.
물오름 2반 2024년 2월 2일 공지 |
이번 주 월요일, 아이들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로 약속했어요! 우리가 남긴 음식물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코끼리 3000마리만큼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깜짝 놀라는 아이들. 지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이번 주 우리 아이들은 원에서 음식물 쓰레기 제로를 달성했답니다. 이번 주 주말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며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사진을 찍어 알림장으로 보내주세요!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격려해주도록 하겠습니다. |
부모도 함께 실천한다
원 행사 참여 시, 입장료 대신 빈 우유갑과 폐건전지를 받는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폐건전지를 모으고, 깨끗하게 씻은 우유갑을 챙기는 과정은 가정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배움터이고, 부모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선생님이다. 집에서도 아이와 함께 분리배출을 실천하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는 배운 것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환경 주간이나 지구의 날에는 특별 미션이 주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줍깅(줍다+조깅)을 하고 사진을 올려 알림장에 공유하면, 텃밭 잔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움사랑 머니'를 받는다. 평소 교사와 함께 하던 활동을 이제는 부모와 함께하며, 어스 아워(Earth Hour)를 실천하는 가족들의 사진이 알림장에 올라와 이야기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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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참여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그림책『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를 읽고 삼베행주 뜨기 |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사회학습이론에서 아이들은 단지 관찰만으로도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보보 인형 실험'에서 어른이 인형을 때리고 거칠게 다루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인형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따라 했다. 보상이나 처벌 없이도 관찰만으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부정적인 행동조차 쉽게 따라 한다는 점은 교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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