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후드티 연출이 딱했던 이유…X세대 참회록 [.txt]

한겨레 2025. 4. 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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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삐딱
1990년대 엑스(X)세대의 상징이자 문화 충격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한때 힙했던 X세대도 이미 50대
나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우라

이것은 참회록이다. 엑스(X)세대 참회록이다. 요즘 나는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 같은 쇼츠(짧은 동영상)에 중독됐다. 나도 이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알고 싶었다. 왜 젊은 친구들은 텍스트보다 영상 중심 소셜미디어를 더 좋아하는가. 나는 유튜브도 잘 보지 않는다. 글로 십분이면 이해할 수 있는 제품 사용법 따위를 삼십분 영상으로 보는 것이 시간 낭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년 이상 늙은이들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인생이 50년 남은 자와 30년 남은 자의 시간에 대한 개념은 다르다.

쇼츠는 짧다. 길어봐야 2~3분이다. 나는 그 경제성이 좋았다. 쇼츠를 만드는 건 대부분 제트(Z)세대다. 요즘은 밀레니얼(M)세대도 잘 없다. 중년이 되어가는 탓이다. 아니, 덕이다. 내가 평소에 마주할 일이 전혀 없는 제트세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으면 쇼츠만큼 좋은 소스는 없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은 고인 물 놀이터라 백날 들여다봐도 제트세대 트렌드를 빠르게 알 수는 없다. 내 페이스북 고인 물 친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니다. 같이 트렌드에 뒤처지며 늙어가는 처지에 죄송할 게 뭐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엑스세대가 쇼츠의 세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도 몇번 만들어봤다. 엑스세대가 좋아하는 노래 전주만 듣고 맞히기 같은, 당시 유행하던 쇼츠를 흉내 내 만들었다. 친구 전화가 왔다. “그거 좀 하지 마. 젊은 척하는 거 보고 있기 민망해.” 릴스에 올린 모든 쇼츠를 삭제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젊은 척한다’는 소리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 ‘젊어 보이려 애쓴다’는 말이다. 척하고 애쓰는 건 괜찮다. 척하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건 민망하다. 1992년 작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에서 당시 52살 김지미가 20대 주인공을 연기한 걸 보는 것처럼 민망하다. 그 영화는 김지미의 은퇴작이 됐다.

엑스세대 쇼츠는 요즘 소셜미디어의 대표적 웃음거리다. 엑스세대 쇼츠를 비웃는 제트세대 쇼츠가 생겨날 지경이다. 엑스세대 쇼츠 대부분은 젊음의 과시다. 대표적 쇼츠는 이렇다. ‘아무도 내 나이를 못 맞히더라고요’라는 글귀와 함께 춤을 추는 아재와 아줌마들이 등장한다. ‘30살? 아니야. 35살? 아니야. 40살? 아니야….’ 그러다가 자신이 50대라는 걸 밝힌다. ‘놀랐죠?’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누가 봐도 50대다. “아주머니 너무 50대로 보여요”라는 댓글이 이어진다. 아무리 피부 관리를 하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도 나이를 숨기기는 힘들다. 나이는 피부나 스타일로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우라다. 늙은 사람은 뭘 어떻게 해도 늙은 아우라를 숨길 수 없다. 아침에 갓 세수한 얼굴을 거울로 보며 ‘나 열살은 어려 보이는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화장실 거울은 거짓말을 잘한다. ‘백설 공주’ 속 거울처럼 솔직한 거울은 없다.

나도 내 세대 싸잡아 욕하는 건 싫다. 누구든 자기 세대를 좋아한다. 다만 내 세대가 뭐가 제일 괴상한지 잘 아는 것 역시 내 세대다. 엑스세대는 젊음이라는 판타지에 가장 깊이 현혹된 세대다. 모든 세대는 윗세대가 구리다고 생각한다. 아래 세대는 이해할 수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엑스세대의 문제는 윗세대도 구리다고 생각하고 아래 세대도 구리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몇년 전 밀레니얼 친구들과 대화하다 그들이 엑스세대 상사를 제일 껄끄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6세대 상사는 어차피 꼰대라 말이 통하지 않는다. 포기하면 된다. 엑스세대 상사는 꼰대인 주제에 끊임없이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받고 싶어 한다. 젊고 힙한 척하는 꼰대보다는 차라리 그냥 꼰대가 낫다는 것이다. 나는 반성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하며 말했다. “서태지처럼 시대를 바꾸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 말을 듣자마자 50대들 쇼츠를 보는 것처럼 민망해졌다. 나도 서태지 좋아했다. 듀스를 좀 더 좋아하긴 했지만 서태지도 좋아했다. “매일 아침 일곱시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라는 가사를 노래방에서 토하듯이 불렀다. 학생 수 구백만이던 시절이다. 지금은 오백만 남짓이다. 구백만 시절과 오백만 시절은 다르다. 유감이지만 시대는 변했다. 요즘 유권자들에게 서태지는 여전히 젊은 시절 피부를 유지한 채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두문불출하는 아재다. 젊음의 상징이 아니다. 변화의 상징도 아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인근이 쇼핑하는 시민들과 외국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각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들어선 성수동 연무장길은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년 전 한동훈 전 대표 사진 한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힙합 뮤지션 빈지노가 론칭한 브랜드 ‘아이앱스튜디오’의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난리가 났다. ‘역시 우리 동훈님 패셔니스타’라는 지지자들의 칭찬이 넘실댔다. 부끄러워졌다. 쉰 넘은 나이에 노래방에서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부르는 부장님을 보는 것 같아서다. 아이앱스튜디오는 10대와 20대에게 굉장한 인기를 누리는 브랜드다. 트렌드를 따라가려 지독하게 애쓰는 엑스세대인 나도 한동훈 전 대표가 입은 사진을 보기 전에 이미 살까 말까 고민했던 브랜드다. 홍대에 갔다 포기했다. 제트세대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 브랜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도 젊어 보이고 싶다. 젊어 보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아이앱스튜디오를 입는다면 젊어 보이는 게 아니라 젊어 보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게임은 종료다.

엑스세대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세대다. ‘있었던’ 세대다. 더는 변화의 중심이 아니다. 개혁의 중심도 아니다. 영원히 ‘난 나야’ 세대로 살 수는 없다. 대학 시절 나는 ‘태평양’에서 론칭한 남성용 화장품 ‘트윈엑스’를 썼다. 엑스세대 상징이던 가수 김원준과 배우 이병헌이 광고에 나와 말했다. “나는 거부한다, 옳지 않은 모든 것들을.” 그랬던 김원준과 이병헌은 50대 아재가 됐다. 태평양은 아모레퍼시픽이 됐다.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젊은 옷을 입고 피부 관리를 하고 서태지를 이야기해도, 피부 관리도 하지 않고 옷에 신경도 쓰지 않는 이준석보다 더 젊어 보일 수는 없다. 애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는 애를 쓰고 살아야 한다. 너무 쓰는 것처럼 보이지는 말자. 첫 문장에서 말했다시피 이건 여전히 애쓰면서 애쓰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은 엑스세대의 참회록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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