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사실의 힘 ‘몽상은나의조랑말’ [단편선과 플리들]

단편선 2025. 4.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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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부터 포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인디 뮤지션 단편선이 보물 상자처럼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플리) 속 반짝이는 노래와 빛나는 앨범을 소개합니다.

나는 음악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직업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조그마한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음악가,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만나는 일이다. 첫 작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진 이들, 자신과 음악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아직 이 신(scene)을 경험해보지 않아 막연한 기대와 오해를 함께 품고 있는 이들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소실의 첫 정규앨범 <몽상은나의조랑말>.

운이 좋게도 정식으로 발표되기 전, 소실(Sosil)의 음반을 먼저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마침 사오십 분 정도 버스를 타야 하는 길이었다. ‘잘 됐다’ 싶어 첫 트랙부터 재생을 시작했다. 첫 곡은 ‘멀어’. 스튜디오에서 정제된 방식으로 녹음된 것 같지는 않은, 어딘지 낡고 투박해 보이는 포크 기타의 스트로크가 가장 먼저 들린다. 뒤이어 등장하는 드럼도 드러머가 연주한 것 같지는 않다. 곡을 주도하는 대신, 어떤 아련한 풍경을 그려내는 것 같은 리듬이다. 소실은 연약한 목소리로 “여기선 너무 멀어”를 반복해 부른다. 이것이 곡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앨범의 다른 곡들 역시, 대체로 그랬다.

버스에서 내릴 즈음, 음반의 마지막 곡도 끝이 났다. 목적지로 걸어가며 소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들은 것 중 가장 좋네요.” 진심으로 한 이야기다.

2021년 EP 〈다 지나서〉로 데뷔했으니 완전한 신인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P의 음악적 결도 이번 앨범과는 다르다. 포크 기타와 연약한 목소리가 담겼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전작은 환각적인 잔향과 부유하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듯한 ‘이펙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EP와 첫 정규앨범 사이에 4년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소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이대봉이 그에게 어떤 용기를 주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대봉은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이랑의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는 그 앨범에서 대부분의 레코딩과 믹싱, 그리고 여러 악기 연주까지 도맡으며, 음반의 ‘소리’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랑의 앨범에서도 그랬듯, 이대봉의 관심은 소리를 ‘채우는’ 데 있지 않다. 대신 각 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소실의 이번 앨범 〈몽상은나의조랑말〉에는 ‘작은’ 또는 ‘적은’ 소리가 담겼다. 하나하나의 볼륨은 크지 않고, 정교함보다는 느슨하게 연주된 소리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펙팅은 최소화되었다. 전작이 축축한 잔향을 머금고 있었다면, 이 앨범은 건조하지만 따뜻한 질감을 지녔다. 마치 8㎜ 캠코더로 촬영된 오래된 다큐멘터리 필름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소실은 연주부터 레코딩, 믹싱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아마 기술적인 제약 때문일 테지만, 그래서 음반에 담긴 소리들은 매끈하지 않고, 흠결이 드러난 채 존재한다. 보컬의 음정이 흐릿할 때도 있고, 화성의 오류나 연주의 작은 실수들도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그것들이 흠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사실적이다.

음악평론가 김학선은 앨범 라이너노트에서 소실이 “줄곧 사라져 없어지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라고 썼다. 한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소실은 그런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통해 접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잘 세공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예술을 초과한다. 티 없이 맑은 삶이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실이 단순한 기타 스트로크에 여린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에는, 그런 ‘사실의 힘’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을 싱그러움이라 불러도 될까. 온갖 마케팅에 범벅이 된 수사가 아닌, 진실한 의미로서의. 

단편선 (음악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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