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도 응답하는 ‘부름부릉 행복 콜버스’ [기후위기 대응 마을을 가다 ④]
서울공화국이라는 말도 이제는 식상하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인프라 대부분이 초밀집된 서울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 흡입기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은 빈곤해졌다. 아니, 지역은 ‘소멸’ ‘낙후’ 라는 프레임에 갇혀 빈곤하게 인식되어졌다. 지역은 서서히 멸칭이 되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지역이라는 ‘문제’에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해답’을 써 내려 가는 선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햇빛과 바람, 자연과 공동체를 연결하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사회 실험을 하고 있다. 소비로 점철된 도시에 부재한 것들을 지역의 자원에서 찾아내 지속 가능한 삶의 모형을 만들고 있다. 〈시사IN〉은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수 기후정책을 발굴 중인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지역의 활달한 기후 대응 발자취를 좇았다. 무한하게 쏟아지는 태양과 바람은 공동체를 위한 복지 자원이 되고, 탄소를 저감하는 삶의 방식은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기반이 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씨앗이고, 어떤 곳은 열매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꽃과 향이 무르익고 있는 현장을 기록한다.

■ 전라북도 완주군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부르면 달려오는 버스가 있다. 둔중한 대형 버스는 들어갈 수 없는 산골 마을 골목길이 이 버스의 주무대다. 완주군이 운영하는 수요 응답형 교통수단(DRT) ‘부름부릉 행복 콜버스’ 이야기다.
DRT(Demand Responsive Transport)란 고정된 노선이나 운행 시간표 없이 이용객의 요청에 따라 운행 여부를 결정하는 교통수단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나쁜 교통 취약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제고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완주군의 행복 콜버스는 마을버스 노선이 닿지 않는 외딴 마을과 읍면 소재지를 오가며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다. 현재 동상·상관·소양·이서·구이 다섯 개 면에서 예비 차량을 포함한 행복 콜버스 총 11대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운행된다. 1시간~30분 전에 탑승 예약을 하면 콜센터에서 운행 계획을 정리해 기사에게 전달하고, 승객들은 지정된 정차 지점에서 타고 내린다.
구이면에서 운행하는 행복 콜버스 두 대의 기점이자 종점은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위치한 구이중학교 앞이다. ‘부름부릉’이라는 명찰을 달고 서 있는 하늘색 승합차가 바로 행복 콜버스다. 나이와 상관없이 요금은 단돈 500원. 정순례씨(79)는 전주 시내 방문을 위해 콜버스를 이용했다. 종점에서 내리면 전주로 가는 버스를 바로 갈아탈 수 있다. 그가 사는 호동마을은 가장 가까운 마을버스 정류장이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행복 콜버스가 생겨서) 다니기가 쉬워요. 전에는 직접 운전해서 다녀야 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여기다 전화하면 차가 빨리 오니까 마을 사람들도 많이 타요. 병원도 가고, 미장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얼마나 편해요.”
구이중 2학년인 채지성 군과 친구들은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위해 학교 앞 도로에 대기하고 있던 콜버스에 올라탄다. 예약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해둔 상태다. 그날그날 누가 함께 타느냐에 따라 콜버스의 경로도 조금씩 달라진다.
행복 콜버스는 누군가에게는 일터이기도 하다. 행복 콜버스는 주민 자조형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조합 소속인 운전기사 조성진 주임은 5년 전부터 행복 콜버스 기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농사도 해보고 식당도 했어요. 코로나19 때 식당을 접고 할 일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냉큼 지원한 거죠.” 조 주임은 운전석 곳곳에서 빳빳한 1000원짜리 지폐 두 장, 두유 한 팩 등을 꺼내 보여준다. “주민들이 커피 사먹으라고 돈 주고, 음료수·아이스크림 같은 거도 먹으라고 챙겨주고. 안 받겠다고 하면 막 화내시는 분들도 있어요. 꼭 그런 걸 받아서가 아니라 저분들이 ‘나 고생한다고 이렇게 챙겨주는구나’ 생각하면 일하는 보람이 있죠.”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버스 완전공영제와 DRT 운영을 결합한 완주군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우수 행정 사례로 호평을 받았다. 행안부, 국토교통부, 농림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버스 공영제와 무상교통 도입 등 교통체계 개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는 2020년부터 부분적인 버스공영제 및 6~23세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무상버스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화성시의 버스공영제는 민간업체에 맡길 시 수익성을 이유로 소외되기 쉬운 지역의 노선을 공공이 운영해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넓은 면적의 도농복합지역 성격을 띤 화성시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다.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2024년 9월1일부터 버스요금 전면 무상화 정책을 시행했다. 영암군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통계를 통해 추산한 결과, 올해 버스 이용이 2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 단위의 교통체계 개편 정책은 훌륭한 기후위기 대응법이 되기도 한다.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여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을 늘리면 탄소배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가용 사용을 10%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연간 약 51만8000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이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지자체별로 만들어진 ‘탄소중립·녹생성장 기본계획’에는 무상교통이나 DRT뿐만 아니라 교통비 환급이나 할인 등 다양한 대중교통체계 개편안이 탄소배출 저감 방안으로 포함된다.
김현명 명지대 스마트인프라공학부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지자체의 대중교통 운영에 더 많은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시내버스를 주로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토부의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는 대부분 철도에 들어간다. 그러면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 도시철도 사업을 하기 어려운 지역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은 그나마 있던 버스 노선도 사라지면서 승용차 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농어촌민이 서울 시민에 비해 4배 정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데, 이걸 가지고 그분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유류세를 4배 내면서 대중교통 혜택은 못 받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서울의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다. 지금보다 더 늘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계효용의 차원에서 같은 돈을 경북이나 전남에 투자하면 일인당 탄소배출 감소 효과는 훨씬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특별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의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은 65.3%인 반면, 전국 평균은 32.7%(국토부 통계)에 그쳤다. 교통 취약지역일수록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자가 효과적인 탄소배출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구이면의 자연은 품이 깊고 넓다. 모악산, 경각산, 오봉산, 치마산 등 낮지만 수려한 산자락 이곳저곳에 사람들은 터를 잡고 마을을 이뤄 살아왔다. 구이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조성진 주임은 행복 콜버스 기사가 되고 나서야 구이면에 얼마나 많은 마을이 있는지를 알았다고 말한다.
저녁 무렵,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대모마을로 향하는 콜버스 안에 최승춘씨(66) 한 사람만 남았다. 읍내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는 강원도 평창 친정집을 떠나 시집오던 날을 떠올린다. “대모마을이라는데 그냥 골짜기로 가도 가도 집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때는 길이라도 이렇게 좋았간디? 옛날에는 간첩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댜. 동네 있는 줄 모르고. 이 골짜기를 40년 동안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조성진 주임이 껄껄 웃으며 말참견을 한다. “에이, 형수씨가 안 벗어나는 거지.” 그러자 최승춘씨도 함께 깔깔 웃고 만다. 최승춘씨를 그의 ‘골짜기’에 내려주고, 조 주임의 콜버스는 다음 부름, 다음 골짜기를 찾아 달려간다.
완주·김수혁 기자 stardus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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