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농사로 마을 복지를 짓다” [기후위기 대응 마을을 가다 ②]

여주·김다은 기자 2025. 7. 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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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 구양리는 마을 하나가 거대한 발전소다. 마을 공동 자산에 태양광 패널을 올려 전국 최초로 주민이 재생에너지의 주인이 되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도 이제는 식상하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인프라 대부분이 초밀집된 서울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 흡입기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은 빈곤해졌다. 아니, 지역은 ‘소멸’ ‘낙후’ 라는 프레임에 갇혀 빈곤하게 인식되어졌다. 지역은 서서히 멸칭이 되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지역이라는 ‘문제’에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해답’을 써 내려 가는 선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햇빛과 바람, 자연과 공동체를 연결하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사회 실험을 하고 있다. 소비로 점철된 도시에 부재한 것들을 지역의 자원에서 찾아내 지속 가능한 삶의 모형을 만들고 있다. 〈시사IN〉은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후정책을 발굴 중인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지역의 활달한 기후대응 발자취를 좇았다. 무한하게 쏟아지는 태양과 바람은 공동체를 위한 복지 자원이 되고, 탄소를 저감하는 삶의 방식은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기반이 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씨앗이고, 어떤 곳은 열매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꽃과 향이 무르익어가는 현장을 기록한다.

6월18일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전주영 이장(왼쪽)과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이 마을 풋살장에 설치한 햇빛두레 발전소 앞에 섰다. 구양리는 마을 자산 총 6곳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한 달에 1000만원 수준의 발전 수익을 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전주영(60)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이장은 노상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구양리에 터를 잡고 살던 그의 부모는 귀한 맏아들을 중학생 때 서울로 유학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머리가 굵어진 아들은 농민운동을 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동지’들을 만났다. 전농경기도연맹 여주시농민회의 전신인 ‘농우회’를 창립할 때도, 여주시농민회가 창립되고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개방에 반대하며 ‘30만 농민 상경투쟁’을 할 때도 그 자리에 전주영 이장이 있었다.

36년간 농업과 농민이 살길을 고민하던 그에게 가장 큰 적은 농산물 수입 개방이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남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재생에너지였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는 파고다.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로 가야 하는데 발전소 지을 땅이 없으니 농지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쉽게 농부가 될 수 있다. 농지를 농사가 아니라 에너지 장사에 쓰려는 사람이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나. 소멸해가는 농촌이 더 빠른 속도로 초토화될 게 불 보듯 뻔했다.” 고령화된 농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이미 문재인 정권하에서 겪어본 일이기도 했다. 외부 투자업체들이 농민들에게 발전 수익을 약속하며 곳곳에 태양광 패널을 깔았다. 임차인들은 농사짓던 땅에서 쫓겨나고, 땅 주인들은 자기 땅이 수십 년간 남의 배를 불리는 데 저당 잡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농촌 주민들에게 태양광은 위험한 신기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주영 이장과 여주시농민회 활동부터 함께해온 30년 지기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이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최재관 위원장은 FTA 반대 운동부터 로컬푸드 운동, 생산자 직거래 장터,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까지 오랫동안 농촌·먹거리 운동을 해왔다. 그는 외부 업체나 투자자에게 기대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팔아보자고 했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건 기름이 나는 것과 같다. 도시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농촌에서는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농촌이 가진 자원을 외부에 빼앗겨왔지만 우리가 가진 것들을 모아서 개미처럼 연대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봤다. 마을을 하나의 발전소로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마을 모두를 위해 쓰는 새로운 판이 필요했다(최재관).” 2021년 두 사람은 절박한 마음으로 마을자치회 임원들과 주민들을 설득해 ‘구양리 햇빛두레발전소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가장 먼저 아랫마을인 ‘작은말’ 창고 지붕에 76㎾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구양리는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정미소를 기준으로 윗마을은 ‘큰말’, 아랫마을은 ‘작은말’로 불린다. 70여 가구, 주민 120여 명이 살고 있다. 구양리는 상수원 관리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돼 있어 정부로부터 한강수계 관리기금을 받는다. 마을 주민자치회는 수계기금으로 마을 자산을 하나씩 장만해두곤 했다. 작은말 창고도 그렇게 마련한 마을 소유 건물이다. 그곳에 1호 발전소를 세운 뒤 ‘큰말’ 창고 위(35㎾), 운동장 부지(131㎾), 풋살장 주차장 지붕 위(72㎾)에도 차례차례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하지만 마을 기금만으로는 발전소를 설치할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한 ‘2022 햇빛두레발전소 참여마을’에 선정돼 발전소 설치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저리 융자로 대출받을 기회가 생겼다. 나라에서 돈을 빌려주는 줄 알고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담보를 갖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정부가 대출금리의 차액을 지원해주는 거였다. 담보 없이는 돈을 빌릴 수 없는데 마을 자산은 법적 지위가 없어서 담보로 쓸 수가 없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그러다 경기도에 ‘사회적경제 금융지원 사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회적경제 조직에 5억원까지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제도였다. 그 돈을 빌려서 겨우 발전소 설치비 일부를 마련했다(최재관).”

여전히 돈이 부족했지만, SK발전소 송수관이 마을을 거쳐 조성되면서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그 돈으로 논 2필지를 사고, 그 땅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려서 684㎾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세웠다. 최재관 위원장은 발전소 설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고비였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고성동부농협 사례를 언급했다. “경남 고성동부농협은 지난해에만 300억~400억원에 이르는 상업용 태양광 설비 자금을 대출했는데 연체율이 제로다. 한전이 전기를 무조건 구입해주기 때문에 채무자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 대출금 상환이 보장되는 것이다. 한전과 전력 계약을 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수익권 담보대출’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많은 마을이 자금을 조성해 스스로 태양광발전소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정부 예산이나 외부 투자자 없이 마을 단위로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 위원장의 제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발전소 6곳에서 약 1㎿(1000㎾)에 이르는 전기가 만들어진다. 2인 가구 약 3000세대가 약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전기사업법 시행령상 1㎿ 이하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규모 발전소들은 하나의 발전소처럼 묶어서 관리할 수 있다. 2024년, 구양리는 발전소 6곳을 하나로 연결해 ‘구양리햇빛두레 발전소’라는 이름으로 한국전력(한전)에 전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전에 전기를 팔아 발생하는 발전 순수익은 한 달에 약 1000만원 수준. 매월 대출금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고, 발전소 보험료와 발전소 관리비 등을 지불하고 통장에 남는 금액이다. 구양리는 전통적으로 청장년회가 조성한 기금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을 돕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발전 수익은 마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6월18일 심연화 조리장이 구양리 마을회관 식당에서 주민들이 먹을 잔치국수에 육수를 담고 있다. 마을 식당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시사IN 이명익

마을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발전소 준공 이후부터 마을회관에 식당을 만들어 매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조리장 두 명과 주방 보조를 해줄 어르신 두 명의 일자리가 생겼다. 취재진이 구양리를 방문한 6월18일 점심 메뉴는 직접 담근 김치가 올라간 잔치국수였다. 오전에 비를 맞으며 들깨 밭을 다녀온 80대 농민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수 그릇을 앞에 두고 마을 주민들과 말을 이어갔다. 깨는 심었는지, 마늘 수확은 했는지, 앞산에 나물은 언제 캐러 갈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한 인사말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주말 동안 밭에서 캔 하지감자를 나눠줬고 누군가는 후식으로 과일을 꺼내 깎았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모이는 시간이 늘어나니 이웃의 일상에 자신의 일상이 자꾸만 겹쳐졌다. 같이 할 도락이 매일 늘었다. 지난해 열린 마을 노래자랑대회에도, 추석 윷놀이에도 주민들은 햇빛 농사로 지은 든든한 밥상을 나눠 먹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마을버스도 장만했다. 매일 아침 9시30분 마을회관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는 주로 노인대학과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이 이용한다. 다른 시간에도 두 명 이상 주민이 이동해야 할 때면 언제든 마을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읍내에서 열리는 마을 잔치를 갈 때도, 장례식장에 다녀올 때도 주민들의 유용한 발이 됐다.

한 달에 1000만원씩 발생하는 마을 공동의 수익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지 계획하는 일은 구양리 마을의 중요한 과제다. 구양리햇빛두레발전소 협동조합은 주민 개인에게 발전 수익을 나눠주기보다 “자산이 있든 없든, 땅이 있든 없든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모두가 공평하게 혜택을 보는 길을 찾고 있다(전주영).”

재생에너지가 주민들에게 ‘돈’으로만 인식되는 것도 경계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햇빛과 바람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강조했다. 대선후보 시절이던 5월17일, 전남 나주시 유세 현장에서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판매하면 농사짓는 것보다 몇 배 수익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양리 주민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과 농촌이 직면한 문제를 돈이 전부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본다. “돈을 받으면 그걸로 관심도 끝난다. 하지만 주민들이 발전소의 주인이 되면 오늘 날씨는 어떤지, 기후위기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력 판매를 넘어서서 전력 자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발전 수익으로 공동체가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고민하게 된다.” 전주영 이장은 재생에너지가 돈벌이에 그치지 않고 지역 인프라와 주거·돌봄·의료·교통·문화 같은 사회서비스를 바꾸는 자산이 될 때 비로소 농촌의 살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재관 위원장은 정부가 비축 농지를 현재 1%에서 5% 수준으로 늘리고, 그것을 마을 공동체가 임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송배전 문제가 심각한 만큼, 공공성 높은 지역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곳에 흐를 수 있도록 한전이 관련 정보를 제공해서 에너지 고속도로가 정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는 구양리가 운 좋은 특별한 사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주 북내면에 보상금이 생겼는데 마을에서 ‘우리도 구양리처럼 태양광발전소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더라. 여주 강천면에도 쓰레기 매립장 피해지원금을 받았던 돈이 있는데, 처음에는 건물을 지어 임대소득을 나눠 가질까 하다가 우리 마을처럼 태양광발전소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현실이 된 상상을 ‘미래’라고 불렀다.

보금산 자락에 위치한 구양리는 주봉인 고양이 바위에서 아홉 가지(九·구) 무지개 햇빛(陽·양)이 마을을 비춘 뒤 그 땅이 번성했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여지껏 구양리 주민들은 무한히 쏟아지는 햇빛으로 쌀농사를 지어 삶을 일궈왔다. 그리고 이제,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또 한번 빚을 져 더불어 먹을 밥을 지으려 한다. 큰말과 작은말 주민들은 오늘도 햇빛 농사로 곳간을 채우고 있다.

여주·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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