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 이용자 74% 교통사고 위험… “장애인 보행 환경 개선을”
서울 노원구서 20여 명 모여 수강… 경사로부터 ‘ㄷ자’ 코스까지 다양
승강기-열악한 인도 환경도 재현… 수강생 “사용법 처음 제대로 배워”
국내 전동보장구 이용자 14만 명… 76% “불가피하게 차도로 다녀”
교육-보험 지원 법적 근거 미흡… “정부 차원에서의 사업 추진 필요”
전동 휠체어 등 ‘전동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늘고 있다. 하지만 도심과 길거리는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녹록지 않은 곳이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의 전동 보장구 운전연습장을 찾아 이용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향숙 씨(67)가 긴장한 기색으로 조심스레 조종간을 움직여 경사를 오르자 옆에 서 있던 강사 권은수 씨(48)는 “오르막길에서 조종간을 세게 밀거나 당기면 속도가 확 붙을 수 있으니 천천히 올라가 보세요”라고 반복했다. 이 씨가 천천히 조종간을 조정해 경사로를 무사히 벗어나자 권 씨는 “잘했어요. 운전을 정말 잘하는 편이세요”라며 무한 격려를 쏟아냈다.
이 씨가 탄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전동스쿠터다. 지난해 11월 서울 노원구엔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전동보장구란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처럼 걷는 것이 어려운 장애인 및 고령층의 활동을 돕는 보조 기기다. 기자가 운전연습장을 찾아간 15일 전동보장구를 탄 수강생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 경사로부터 원형 코스, 승강기 모형까지
수강생들은 권 씨의 안내에 따라 차례차례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연습했다. 권 씨는 “자전거나 자동차와 달리 전동휠체어는 한 손으로 운전해야 해서 수강생들이 후진이나 방향 전환을 할 때 특히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굴곡이 있는 도로나 장애물이 있는 곳을 지나갈 때 사고 나기 쉽기 때문에 집중 교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전동보장구를 운전하며 각 단계 미션을 해결하듯 코스를 헤쳐 나갔다. ㄷ자 경사로를 돌 땐 여러 번 좌회전을 해야 해 속도를 낮췄다. 승강기에 들어갈 땐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며 폭을 맞추고 조심스레 진입했다. 바닥에 표시된 정지선에 맞춰 멈추는 연습을 할 땐 속도를 늦추고 조종간에서 손을 뗐다. 각 단계를 무사히 마칠 때마다 지켜보던 권 씨는 “운전을 너무 잘하신다”며 격려했다.
뇌 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경복 씨(62)는 교육이 끝난 뒤 “전동휠체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배워서 혼자 외출을 하려면 미숙하고 불안했다”며 “특히 언덕을 오르는 게 어려웠는데 이곳에서 두 번 넘게 수업을 받으니 차차 적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향숙 씨도 “엘리베이터를 나오고 나서 방향을 트는 게 어려워서 외출을 자제했는데 반복해서 연습하니 자신감이 붙는다”며 웃어 보였다.
● 전동보장구 이용자 14만 명, 곳곳에 장애물
문제는 전동보장구 사용자는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이 마주하는 보행 환경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모두 차가 아닌 ‘보행자’로 분류된다. 즉 차도로 다니면 안 되고 인도로만 다녀야 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잇따른다. 전동보장구를 타고 다니기엔 인도 폭이 좁거나 장애물이 있는 곳이 많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2023년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 이용 장애인 4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약 73.8%가 최근 5년 이내 교통사고 위험 상황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해당 장소로는 차도와 횡단보도가 각각 22.5%(130명), 21.8%(126명)로 가장 많았고, 보도(17.3%), 아파트 단지 내 도로(13.8%), 이면도로(9.9%) 순이었다.
응답자의 76.3%(326명)는 불가피하게 차도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배경으론 “장애물, 경사로, 불법 주정차 차량, 공사 구조물, 간판 등으로 보도 이용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61.2%(234명)로 가장 많았다. 공단 관계자는 “전동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분들은 보행자 도로를 이용해야 하지만 불법 점유물과 불량한 도로 환경, 높이가 있는 연석 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5년째 전동휠체어를 타는 우하숙 씨(67)는 “인도를 가로막은 킥보드 때문에 돌아간 적이 많다”며 “인도가 차도보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미흡한 안전교육, 법적 근거 없는 배상 책임
2019년 2월엔 부산 영도구에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무릎에 앉혀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던 중 좌회전하던 택시와 정면으로 부딪쳐 어머니는 숨지고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보행로가 있었지만, 전동휠체어가 다니기엔 폭이 좁아 차도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보장구 사용과 관련해 안전교육이 부족한 점도 사고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동보장구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구입 후 운전할 때 면허를 따거나 별도의 교통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우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다 보면 속도감 때문에 보행자를 칠 뻔한 적도 있고 차도로 가는 경우도 많다. 이건 운전면허 시험이 없기 때문에 연습장에서 교육이라도 받아서 스스로 안전하게 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 연습 등 안전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현재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은 전국에서 서울 관악구와 노원구 등 2곳에 불과하다. 노원구 관계자는 “노원구에서 자체적으로 ‘장애인 이동기기 수리 등의 지원에 관한 구의 조례’를 개정해 운전연습장을 지을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중앙정부 차원 법제화 필요성”
한국도로교통공단 정미숙 박사는 “지자체별로 알아서 하다 보니 각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전동보장구 장애인의 이동권이 천차만별이고, 또 지자체 예산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어 해당 사업의 유지가 가능한지도 불투명하다”며 “지속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법제화 및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단 소속 강민수 교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사업을 추진해 운전연습장을 확대하고, 이와 더불어 인도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동보장구 |
장애인들의 신체 활동 및 이동을 도와주는 기기 중 전기 동력으로 작동되는 것들. 대표적으로 전동스쿠터와 전동휠체어가 있다. |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탄핵 2주 지나도록, ‘尹의 수렁’ 못 벗어난 국힘
- 이재명 “당선땐 용산 갔다 靑으로”… 김경수-김동연 “집권초부터 세종 근무”
- 美 “中선박에 입항료”… 관세 이어 ‘해운전쟁’
- 이른 ‘벚꽃 엔딩’에 매출 뚝… 상인들 “올 4월은 잔인한 달”
- 소상공인 311만명에 50만원 지원… 소비자 카드 결제 늘면 환급
- 강남서 “초등생 유괴 의심”… 잇단 신고에 불안감 확산
- 전동휠체어 이용자 74% 교통사고 위험… “장애인 보행 환경 개선을”
- 트럼프, ‘진보 아성’ 美 명문대들 전례없는 공격… 보수층 결집 노려[글로벌 포커스]
- “어르신 숨 잘 쉬는지 코밑에 손 대야 아나요”… 노인 돌봄 AI로 대체[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 “순간 방심에 잘린 손가락, 5시간 만에 접합해 되살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