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이용한 거짓말, 숫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돼"[인터뷰]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단순 질문 후 자의적 해석
원하는 결과로 유도 '악용'
신뢰성 평가 지표 개발 등 검토를
편집자주
의심은 가는데 확신은 할 수 없다. 수상한 여론조사 얘기다. 민심의 바로미터라던 여론조사는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미심쩍은 결과물로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과연 여론조사는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 여론조사 시장의 실태를 파헤치며 정치권과 조사기관의 불법 편법 공생 관계를 확인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확정된 지금,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금 경계하고 조사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때다.
조기대선을 겨냥한 선거여론조사가 누가 이길지에 집착한다면 정보로서 가치는 크지 않다. 승자 맞히기식 보도 경쟁에 매몰되고, 더 자극적인 설문 문항을 만들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여론조사가 신뢰를 잃고 있다. 단 1,000명(전국 기준)을 대상으로, 길어야 이틀 정도 진행된 조사 결과에, 자기 진영에 유리하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반대면 편향됐다고 날을 세운다. 또 선거 때만 되면 여론조사를 활용하려는 정치권과 여론조사기관 간 거래가 은밀히 이뤄진다.
지난달 13일 본보와 만난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론조사를 불신한다지만, 그 신뢰도 역시 결국 여론조사로 측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못 믿을 여론조사라지만, 그 역할 또한 마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평가, 여론조사 무용론에 대한 경계를 얘기한 것이다.
이 교수는 그러나 "여론조사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무분별한 규제 강화는 오히려 빈틈을 만들고, 편법 조사를 더욱 음성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도 전했다. 이 교수는 한국선거학회 회장을 지냈고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명태균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게 얼마 전인데 조기대선을 계기로 선거여론조사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언론과 조사기관이 '왜'라는 질문에 집중하길 바란다. 단순히 지지율 1위를 가려내기보다, 국민이 왜 그를 지지하는지를 주관식으로 물어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자동응답(ARS)으로는 어렵겠지만,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전화 면접을 통해서라도 시민의 정확한 목소리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론조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일부는 이를 과신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보도량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고 비중도 훨씬 크다. 아주 이례적이다. 외국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자제해 다룬다. 영국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기사 헤드라인으로 쓰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컨대 '오차 범위 내에서 (지지율의) 차이가 난다'는 말은 애초 성립이 안 되는 표현이다. 독자에게 혼돈만 주는 해석인데, 심각한 문제다."
-선거 출마자의 공표용 여론조사를 언론사 의뢰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한다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해답이 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선거 관련 규제가 세다. 후보들이 자기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현직자나 기존에 어떤 공식적인 일을 했던 사람은 사정이 낫지만, 도전자는 자기를 알릴 기회가 제한적이다.
편법 조사를 막자고 공표용 여론조사 기준을 대폭 높이면 어떻게 될까. 결국 기득권을 가진 현직자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도전자는 오히려 이름을 알릴 기회가 봉쇄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정당 지지도 조사가 매주 발표가 된다.
"외국에서는 우리처럼 매주 정당 지지도를 기사로 다루는 경우가 드물다. 정확성 문제도 있고 정당 지지도가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변할 가능성도 크지 않지 않나. 또한 현상 파악뿐, 원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올라갔는데, 정작 결과에서는 왜 올라갔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민주당 지지도가 40%에서 45%로 오르면, 실제로 지지도가 올라간 것인지, 아니면 기존 지지자 중 일부가 빠지고 새로운 지지자가 10% 증가하면서 5%의 차이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패널 조사가 아닌 무작위 전화 조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평론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결과에 맞춘 해석을 덧붙인다. 여론조사는 특정 정책이나 정치인 행위에 대한 반응을 측정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오직 선거 판세를 결정짓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다. 주객이 바뀐 셈이다."
-거대 양당이 최근 3년 동안 선거여론조사에 270억 원을 썼다.
"정당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 자체적으로 여론조사 지지율 기준을 설정해 컷오프를 실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일정 기준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자에게 방송토론 참여 기회를 부여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론조사에 얼마나 성의 있게 답변하는지 의문이다. 학술적인 조사에서도 불성실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은 이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최근 직장인들에게 주 4일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찬성 비율이 58%였다고 한다. 만약 근무일수가 줄어드는 만큼 월급도 줄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우려되는 문제들은 전혀 알려주지 않고, 단편적인 질문만 던지는 경우가 많다. 여론조사가 국민의 진짜 의사를 파악하는 수단이 아니라, 질문자가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점이 우려스럽다."
-여론조사기관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일부 조사기관이 과도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는데,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에 세 종류가 있다. 착한 거짓말, 나쁜 거짓말, 통계를 이용한 거짓말. 누군가 소수점까지 거론하며 얘기하면 전문성이 있는 것처럼, 그런 부분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어준씨가 선거여론조사기관 '꽃'을 선보였을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편향성 문제가 지속되면서 그 사회적 영향력은 점차 감소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완화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양당 지지층이 과도하게 높고 중도층이 없는 조사 결과도 눈에 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선거여론조사 자체에 한계가 많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대답이 부정확할 수 있고, 조사기관이 선정한 표본이 전체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자동응답(ARS) 조사는 응답률(미국 기준)이 5% 미만이다. 100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5명만 응답한다는 이야기다. 그 5명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을까? 일부 조사기관에서는 중도층을 6% 수준으로 잡고 있지만,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1만 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에선 중도층 비율은 40% 이상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숫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여론조사 무용론으로 흐르는 건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여론조사 없이 단순하게 추정하는 것보단 여론조사에 근거한 선택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흐름이 제한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회사도 육성해야 한다. 신뢰성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조사기관에 정부 인증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선진국과 달리 정부 기관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여론조사 관련 규제를 전담한다.
"여심위가 지금처럼 선거여론조사기관들의 위반 여부만 살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론조사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필요한 아웃소싱이나 연구 실적을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 지금처럼 심판자 역할에만 머문다면,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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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화 검은 커넥션
-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6040002864) - • 여심위, 불법 실태 파악 못한 채..."심증만으론 조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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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6240000592) - • ARS 기관 대부분 연 매출 1억 남짓..."선거 물량 잡아야 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0400004131)
-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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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화 '꾼'들이 있다
- • 태양광 비리 쫓던 檢, '여론조사 조작' 꼬리를 찾았다...무더기로 발견된 휴대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719090000568) - • '꾼'에게도 급이 있다...누가 당원 명부 최신판을 쥐고 있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918310004424) - • 정치인 위 '상왕' 노릇 여론조작 브로커...고발해도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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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광 비리 쫓던 檢, '여론조사 조작' 꼬리를 찾았다...무더기로 발견된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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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화 불신의 책임자
- • 여론조사 공천 OECD 중 한국이 유일한데…'어디 맡기고' '어떻게 조사하고' 죄다 깜깜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112250000457) - • "돈 주고 후보 선출 떠넘긴 꼴" "사실상 주사위 던지기"...불만 쌓이는 여론조사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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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4회 이유 있는 외면
- •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①이재명 ②김문수...편향 질문 판쳐도 "심의 대상 아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211020000040) - • "2030은 전화 안 받아요"...저조한 응답률 대안은 웹조사?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410450003919) - • 수십 통 전화벨에 여론조사 포비아...작년에만 2700만대 울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318340005565) - • 의심은 커지는데 제재 건수는 줄었다?...여심위 조사 인력 달랑 4명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809540000246) - • 1등 후보가 사라졌다...여론조사 조작의 충격 실체 [영상]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1612560001997)
- •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①이재명 ②김문수...편향 질문 판쳐도 "심의 대상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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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5화 어떻게 읽어야 하나
- • 민주시민을 위한 여론조사 안내서...이 정도는 알아두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212230002365) - • "통계 이용한 거짓말, 숫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돼"[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811060005541)
- • 민주시민을 위한 여론조사 안내서...이 정도는 알아두자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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