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곁, 그 앞에 삶의 곁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르신은 처음 전화통화를 했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80대 후반 말기암 환자인데, 응급 상황으로 응급실을 몇 번 찾은 뒤 보호자인 딸이 연락해왔다.
상태에 대해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세 분이 나름의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먼저 연락을 해왔던 딸이 아버지 곁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 땡큐!]
어르신은 처음 전화통화를 했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80대 후반 말기암 환자인데, 응급 상황으로 응급실을 몇 번 찾은 뒤 보호자인 딸이 연락해왔다. 식사를 못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찾아뵙고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정을 잡고 어르신 댁을 찾았다. 어르신은 예상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의사소통은 전혀 안 되고 의식이 희미했다. 장기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지 소변이 나오지 않아 온몸이 붓고 누렇게 변했다. 상태에 대해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상태를 살피고 보호자 요청에 따라 소변을 볼 수 있도록 약을 드렸다. 환자를 살핀 뒤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조심스레 계획을 여쭈었다. 다시 입원을 고려하는지 치료 계획은 있는지.
오로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하셨어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르신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동안 가족과 깊은 시간을 보내세요.”
다른 방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남았다. 집에 모인 자녀분들은 투병 과정을 겪으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며 생의 작별을 앞둔 이 시간은 분명히 선물이니 못다 한 이야기를 잘 나누시라고 덧붙였다.
며칠 지나고 전화로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마지막 전화가 왔다. 연락을 받고 서둘러 찾아뵀다. 어르신은 평온했다. 상태를 확인하고 자녀분들을 아버지 곁으로 모이게 했다. 한 분씩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라고 안내했다. 세 분이 나름의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먼저 연락을 해왔던 딸이 아버지 곁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임종 선언을 하려는데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지막 인사를 쉽사리 멈추지 못했다. 모두 그 자리에 서서 함께했다. 30분 가까이 홀로 오열한 딸이 겨우 진정돼 보호자들께 아버지가 가족들 품에서 돌아가셨음을 안내했다.
안내가 끝나고 자리를 나서야 하는데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차갑게 안내 말씀을 드리는 내가 너무 정이 없는 건 아닌지. 며칠 지나고 보호자가 문자로 마지막 인사를 보내왔다.
“선생님 덕분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승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문자를 보고 마무리를 잘하신 거 같아 안심했다. 내 역할도 적당히 해낸 거 같아 다행이라 안도하면서도 위로의 말 건네기를 어려워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짧은 인연이라 모든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가족들이 좋은 관계로 잘 살아오셨음이 분명해 보였다.
좋은 관계로 살아온 가족의 작별 모습
우리의 죽음 곁엔 누가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좋겠지만 홀로 죽음을 선택하는 분,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 어쨌든 지금 삶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음이 어디서, 누구와 있을 때 다가올지 걱정하기보다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아닐까.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